난 한국 사회에 별로 없다는 entj 여자다. 최근에는 주위에 entj가 많아서 별로 없는 거 같지는 않은데, 내 성격만 생각해 봐도 소수인이 맞는 거 같긴 하다. 이런 성격이 많으면 사회 조화와 화합적인 측면에서 악영향이...ㅎㅎ
암튼, 오늘은 내 결혼 스토리를 써보고자 한다. 나의 결혼 스토리는 매우 극적이다. '극적이다'의 사전적인 의미는 '극을 보는 것처럼 큰 긴장이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이란다.
내 결혼이 딱 그랬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딱 요맘때, 새해 아침이 밝았을 때였다. 갑자기 문득 올해는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남자친구와 4년째 만나던 시기였고, 남자 친구가 유학생이라 3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으니, 사계절을 본 건 딱 1년째 되는 해였다.
당시 남자 친구는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간신히 미국 대학을 졸업했으나, 취직에 대한 준비조차 한 게 없어(원래는 아버지 회사에 들어갈 예정) 1년간 백수생활을 하다 모 중견기업 미주사업팀에 갓 취직한 상태였고, 나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늦은 나이에 모 중소기업에 갓 취직한 상태였다. 즉, 모아둔 돈도 없고(둘 다), 가진 것도 없고, 둘 다 사회생활 갓 시작한 늦깎이 사회초년생으로 요즘 같으면 결혼한다고 하면 모두가 뜯어말릴 수준(?)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난 묘하게 확신이 있었다. 내가 부모님께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 여차해도 내가 남편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어디서부터 이런 자신감과 믿음이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당시 정말 새해 아침이 밝자마자 잠에서 깼을 때 든 생각이다.
"나, 올해, 결혼한다."
구정에 큰 집에 친척들이 모였다. 그때도 모이면 늘 하는 질문 "oo은 언제 결혼하니? 남자친구 있니?" 으레 하는 인사치레 질문인데, 난 거기서 폭탄선언을 했다. "네 저 올해 결혼해요~ 결혼식에 와주실 거죠?"
지금도 부모님의 놀라던 모습이 선하다. 쟤가 미쳤나 하는 제스처로 "얘가 아무 상의도 없이 뭔 결혼이냐"며 더 이상 내가 말을 못 하게 손사래를 치며 적극적으로 방어하셨다.
부모님은 다 생각이 있으셨던지, 내가 그 얘기를 하고 일주일이 지났으려나. 어디서 남자 친구 집주소를 알아내 등기부등본을 떼봤는지, 남자 친구 아버지 사업이 파산이라고 당장 헤어지라고, 담주에 압구정 성형외과 의사와 맞선을 잡았으니 거기나 나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새벽에 나를 깨우더니 한 달 동안 예약이 꽉 찬 점쟁인데 오늘 운 좋게 시간이 났다며 당장 신림동인지 어딘지 점을 보러 가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끌려간 곳에서 점쟁이 왈 "이 남자와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 이유는 첫째 효자다. 집안이 망해도 나 몰라라 하면 모르는데 그게 안 되는 사람이다. 둘째 일이 1순위다. 나를 외롭게 만들 거다." 셋째도 말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그럼 내가 궁금한 거 묻겠다 하고 이렇게 질문했던 거 같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돈을 잘 못 버냐, 가난할 사주냐? 왜냐면 여기온 게 그쪽 집안이 망해서 돈이 없어서 온 거다. 효자든 1순위든 중요하지 않다 돈 잘 버는지 그게 중요한 거다. 그리고 난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데, 지금 이 남자 친구는 4년간 검증했는데,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또 2~3년이 지날 거고, 근데 나랑 안 맞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냐"
점쟁이가 그래도 솔직하게 남편이 돈이 없는 사주는 아니라고 하긴 했으나, 다음에 만나는 사람은 본인에게 사주를 보여주고 만나면 검증하느라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거다. ㅎㅎ "전 말씀하시는 분도 못 믿는대요? 그리고 그렇게 선택해서 잘된다 한들 그건 점쟁이가 선택한 인생이지 내 인생은 아니지 않나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가 선택한 인생을 사는 게 맞는 거 같네요~ 호호"
그렇게 점쟁이 사건이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아빠는 매일 같이 술에 취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놈한테.. 를 퍼부었고(?) 나도 그때는 초강수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내 인생 망치려고 하는 사람, 내가 가는 앞길 막는 사람은 부모라도 용서 못해. 지금 내 인생 내 뜻대로 못살게 방어하는 거로밖에 안 보이니까 당장 oo!! 하고 막말을 했다..(나는야, 불효녀..ㅜ)
그렇게 장장 6개월 만에 결혼 승낙을 받았다. 결혼 승낙을 받고, 난 모든 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크나큰 착오였다. 세상물정 모르는 사회초년생이었으니...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