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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Feb 15. 2024

Entj의 프로포즈

Entj 결혼생활

나도 어릴 때는 막연히 남자가 프러포즈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자 쪽이 프러포즈하는 결혼은 이뤄지기 쉽지 않다, 남자가 원해야 결혼이 이뤄지는 거다, 여자 쪽이 안달 난 느낌을 주면 남자가 도망간다 등등의 얘기도 실제로 많이 듣기도 했고. 그래서 프러포즈는 남자 쪽에서 해주길 바랐는데, "아무것도 가진 건 없지만, 나랑 결혼해 줄래?"라는 대사는 내 입에서 먼저 나가고야 말았다.


당시 남자 친구(현 남편)는 30 평생을 부유하게 살다가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정말 최악의 기업에 32살의 늦은 나이, 사원으로 입사해 누가 봐도 정말 암울한 삶을 살고 있었다. 매일매일 밤 10시까지 야근에 주말 근무는 기본, 본인보다 서너 살은 어린 선임의 무시까지 견뎌가면서.


난 그런 그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구해주고 싶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남자를 믿지 못하고, 연애를 해도 언제든 도망갈 수 있도록 한 발만 걸치고 나머지 한 발은 빼놓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특히 4~5번의 연애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상처받은 적 없고 전부 내 인생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쓰레기였던 나, 반성합니다ㅜㅜ), 다 단 칼에 잘라냈었던 나였다.


그런 내가 남자를 구해주고 싶다니?!! 헬로~~?!!


그만큼 그는 내게 특별했다.

4년 연애를 했다는 것 자체가 그가 얼마나 특별한지를 대변한다. 한 달만 지나도 모든 게 시들해지는 내겐.


4년을 만나면서 결혼 얘기를 종종 했지만, 그의 집안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더 이상 결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과거에 그는 인터컨티넨탈 호텔이나 하얏트에서 결혼하고, 목동 집이 있으니 거기서 신혼 생활을 하고, 혼수도 본인이 할 테니 몸만 오면 된다고 했었는데, 이제 와서 그게 다 사라졌고, 가진 게 쥐뿔도 없는데 결혼하자는 말이 나올 리 만무했다.


난 부모님 반대는 물론, 친한 친구들조차 남편을 버리라고 했다. 맘은 아프겠지만, 결혼은 현실이라며. 당시 남자 친구도 언제든지 말만 하면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오로지 나만 결정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독립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ENTJ 여성 아닌가! 단 한 사람도 내 편은 없었지만, 6개월 동안 부모님을 설득했고(설득이라기보다는 반협박), 결혼 승낙을 받았고, 그에게 청혼했다.


"오빠가 돈이 있든 없든, 오빠 부모님이 돈이 있든 없든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아.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아무것도 가진 건 없지만, 나랑 결혼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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