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우 Feb 16. 2024

결혼 준비 a부터 z

Entj 결혼생활

요즘도 결혼 공식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8년 전만 해도 보통 남자가 집, 여자가 혼수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때 주변 친구들이 한 절반 정도 결혼을 한 시점이었는데, 다들 남자 쪽에서 집을 해와서(전세 or 자가), 나도 아무 생각 없이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막상 내가 결혼을 결정한 상대는 집안이 기울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입장이었고, 부모님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 쪽 지원하는 것과 동일하게 지원을 하겠다고 결혼 초기부터 선포를 하셨다. 남자 1억이면 1억, 5억이면 5억. 매우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긴 했지만, 내겐 그림의 떡.


그냥 없이 하는 결혼, 둘만의 힘으로 해보겠다 결정하니 맘이 편해졌다.


다들 결혼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결혼 준비 기간이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난 아직도 이렇게까지 길게 소요되는지 이유를 찾지 못했다. 한 번뿐인 결혼이라 이것저것 비교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고자 해서 오래 걸리는 걸까? 가진 게 별로 없을 때의 장점은 선택의 폭이 크지 않아 매우 속전속결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둘만의 힘이라고 했지만, 결혼준비를 하면 할수록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내가 가진 인프라가 얼마나 좋은지를 깨닫게 되었다. 마치 전 우주가 내 결혼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처럼 적재적소에 지인들이 포진해 있음에 놀람과 감탄, 경이로움을 느낄 정도로...


1. 예식장 : 공교롭게도 아빠 테니스 친구가 호텔 총지배인으로 근무 중이라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계약했다. 친척들이 대부분 반포와 대구에 포진해 있어 편하게 오기 좋은 9호선 라인에 위치한 호텔이라 더욱 만족! 예식장 다른 곳은 알아볼 것도 없이 하루 만에 결정했고, 계약금은 150만 원인가 지불하고 끝.


2. 예단 / 예물 :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


3. 혼수가전 : 친오빠 절친이 한샘 대표 / LG전자에 있어 최저 가격으로 지원을 해주어 아무 고민 없이 가구는 한샘 / 가전은 LG에서 골랐다. 전체 고르는데 하루 만에 끝.


4. 결혼반지 : 남자 친구가 가지고 있는 돈 전체로 반지 하나만큼은 해주고 싶다 하여, 다미아니라는 브랜드에서 웨딩밴드를 같이 골랐다. 이것도 하루 만에 끝.


5. 상견례 : 당시 과천에 거주 중이라 과천에 위치한 소박한 한식당으로 결정. 누가 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많은 비용이 아니어서 휘리릭 넘어간 듯~


6. 스드메 : 스튜디오 촬영은 남자 친구와 나 모두 인위적인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안 하기로 하고, 드레스와 메이크업만 진행. 드레스는 내가 키가 큰 관계로 수입드레스 / 메이크업은 단아한 느낌의 김청경으로 하루 만에 결정했고, 스튜디오 촬영을 안 하니 본식 드레스 대여와 본식 메이크업 비용만 지불해 150만 원(?) 정도 들었던 것 같다.


7. 데이트스냅 : 내 고등학교 절친의 남편분이 취미로 홍대 사진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 시범 삼아 찍어보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주었다. 평소 좋아하던 이촌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데이트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것도 무료로.


8. 예식장 사회자 : 소개팅 주선자가 사회를 봐주는 걸로 결정. 남자 친구를 처음 만날 때 아나운서 준비할 당시로 소개팅 주선자가 남자 친구의 절친이자, 아나운서 스터디를 함께하는 내 동기이자, 당시 모 신문사 앵커 겸 기자였기에 고민 없이 처음부터 사회는 그분이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어있었다.


9. 예식장 영상 : 남자 친구 미국 후배가 pd여서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영상을 무료로 편집해 주셨다ㅜㅜ


10. 모바일 청첩장 : 친척들 모두 구식이라 안 함. 종이 청첩장만 진행

 

11. 가장 중요한 집 : 남자 친구의 배려로 내 회사가 위치한 곳과 20분 거리에 집을 찾기로 결정. 사당 / 내방 / 방배 3군데로 의견을 좁힌 후, 부동산을 방문했다. 예산은 2억으로 하고 전액 대출을 받는 조건으로 알아보았다. 처음 사당동 빌라들을 봤을 땐, 솔직히 충격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특히나 남자 친구 182cm, 나 174cm로 둘 다 키가 큰데 어떤 곳은 점프하면 머리가 닿을 것 같은 곳도 있었고, 손 한 번 피면 여기저기 닿아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곳도 있었다.  그래서 집은 역시 쉽지 않구나 하며, 하루 사당 쪽 / 하루 내방 쪽 / 하루 방배 쪽 이렇게 발품을 팔며 돌아다녔다. 그래도 마지막날 방배동 빌라를 발견했고, 구축이라 18평에도 넓게 빠진 집, 깨끗한 주변, 방배역 3분 거리, 집주인 분이 새도배까지 해준다고 하는 그런 집이었다.


서른이나 먹었음에도 집 계약은 첨인지라 엄마 도움을 받았고, 엄마는 한숨 반, 기대 반 느낌으로 계약에 도움을 주었다. 원래는 전체 대출하려고 했으나, 부모님이 내가 불쌍했는지 전세 2.2억의 절반을 대주셨고, 나머지는 둘이 열심히 갚아나가며 살라고 해주셨다. 이렇게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결혼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정리해 보면,

- 내가 낸 결혼 비용 : 예식장 계약금 150만, 드레스&메이크업 150만, 혼수가전 800만

- 남자 친구가 낸 결혼 비용 : 웨딩반지 500만

- 내 부모님 : 1억 1천


예식장 비용은 오시는 분들 축의금으로 충당하고도 많은 돈이 남았고, 얼마가 남았는지 모르지만 집 비용을 내주신 부모님께 다 드렸다. 신혼여행 비용들도 주변 지인분들이 용돈을 챙겨주어 따로 들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없이 결혼한 것치곤, 호텔에서 500명의 하객을 모시고(양가 250명씩), 원하는 것은 다한 full로 채운 결혼식을 해버린 것 같다.


1년 동안 내 주변 모든 지인들의 반대에 홀로 싸우며, 홀로 결혼을 준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결혼식 당일 500명의 하객들을 보며, 내가 이렇게 자라서 독립적으로 하나의 가정을 꾸리기까지 아주 작은 또는 큰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들이 모여, 그래도 내가 결혼하겠다고 하니 하나둘씩 도움을 주시는 모습을 보며, 주례부터 사회, 영상, 축가 등 무료로 도움을 주었던 지인, 친구들을 보며.


내가 흔들리면 남자 친구도 흔들리고, 주위도 흔들릴 거라 생각하며 독불장군처럼 그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강인하게 버텼었는데, 결혼식 당일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맘이 따스해졌다. 행복하게 살아야지 다짐하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