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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Feb 17. 2024

결혼하고, 가난해졌다

Entj 결혼생활

결혼식은 찬란했고, 신혼여행은 즐거웠고, 현실은 가난했다.

남편과 나 둘 다 사회초년생이니 월급은 빤했고, 대출까지 있으니..


신혼의 단꿈에 빠지기도 전에 난 매우 빨리 현실로 돌아왔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잘 살겠다고 큰소리치며 한 결혼이었기에, 난 무조건 잘 살아야 했고, 행복해져야만 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돈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돈이 있어야, 부모님께도 내 능력을, 내 결정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 1차 목표는 1억 원의 대출을 빨리 갚는 거였다. 월급쟁이이기에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무조건 저축을 많이 하는 거였다. 그래서 남편에게 얼마나 저축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200만 원은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했다. 4년을 만났지만 그동안은 부모님 돈을 주로 써왔고, 일을 해서 돈을 모아보는 것 자체가 처음인 사람이라, 그의 돈 씀씀이, 돈 관리 스타일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나 자신이 말을 하면 어떻게든 지키는 사람이라 믿었던 거 같다.


"그래, 그럼 오빠는 200만, 나 250만 해서 월 450만 원씩 저축하는 거야!! 1년이면 5,400만 원이니 딱 2년 이 집을 떠날 때는 대출 청산하는 걸로~!"


그렇게 모으기 시작하고 4개월이 흘렀을까~ 문뜩 남편이 제대로 모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4개월이니 800만 원이 있어야 하는데, 넘 열심히 모아서 한 1,000만 원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가지며, 얼마 모았는지 물어보았다. 남편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300만 원인가 밖에 없었고, 난 놀라서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남편 왈 "돈을 모으려고 했는데 이벤트가 많았어~얼마 전에 우리 만난 지 5주년이었지, 너 생일 있지, 그리고 가끔 너 회사 일 잘 안 풀리면 우울할 때 맛난 거 사줘야지.."


하지만 가만히 보니, 그런 이벤트는 핑계요, 남편은 과거 부자였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20세 이후로 차를 끌고 다녀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적이 없던 그는, 회사 출퇴근을 거의 택시로 하고 있었다. 월 70만 원 정도...;;;


그리고 100만 원 이상되어야 돈을 쓰는 거라 생각하지, 1,000원 2,000원은 그에게 돈이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 편의점에서 자잘 자잘하게 이것저것 사서 한 100만 원 정도 쓰는 거 같았다. 쩐지 편의점 사장님이 남편만 보면 버선발로 나와 환영해 주는 이유가 있었다...


그 외에도,

운동화는 빨아서 다시 신는다는 개념이 없지(3개월 신고 똑같은 신발을 다시 삼)

옷이 맘에 안 들어도 환불한다는 생각조차 없지(환불이 뭔지도 모르는)

신용카드는 돈이 무조건 나오는 마법 카드로 생각하지,

빨래는 팬티 하나 넣고 돌리지(미국은 무제한이라나 머라나),

샤워는 30분 동안 거품 목욕하듯이 하지(어쩐지 바디샴푸가 2주 만에 다 쓰더라),

요리를 해주면 랍스터 파스타를 만들어 사 먹는 거보다 비싸게 만들지(맛있긴 하다...),

향수는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비 오는 날 쓰는 향수, 맑은 날 쓰는 향수, 가을 향, 여름 향, 겨울 향... 악!!!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인드 자체가 "티클모아 티끌"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에게 100~200만 원씩 모아서 1억을 모으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에 절약하느라 스트레스받느니, 차라리 신나게 쓰고 즐겁게 사는 게 낫다는 마인드라고나 할까?


이렇게 집 안에서 한 명이 신나게 쓰니, 집 안 다른 구성원인 나는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 나도 결혼 전에는 명품은 아니더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나를 위해 쓰는 비용을 줄여야지만 1억이 됐든, 5천만 원이 됐든 조금이라도 모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결혼하고, 가난해졌다.


- 매주 밑반찬을 만들고

- 친구들과의 모임도 줄이고

-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 옷은 안 사는 것이 정답

- 문화생활? 일단 돈부터 모으고...


그리고 30년 이상을 부자로 산 남편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의 마인드를 바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우리는 방배 빌라에서 인생이 끝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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