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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 Apr 17. 2024

8개월간 남편이 놀다...

Entj 결혼생활

결혼 후 3년 뒤, 대출금 갚기를  완료한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이제 회사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아."


속으로는 다른 회사를 구하고 옮기길 원했지만, 남편 회사가 매일 같이 야근에 주말에도 나가고, 연차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걸 알기에 차마 말을 못 했다. 3년간 여름휴가는 광복절 전날 딱 하루만, 그 외 연차 한 번 쓰지 않고, 결혼 전날에도 밤 10시까지 일했던 남편.. 그래, 그만둘 때 됐지.


"응 언제든 그만둬. 이참에 푹 쉬어~!"


그렇게 남편은 백수가 됐다.


난 남편이 쉬는 게 좋았고 혼자 버는 것도 상관없었는데, 친정과 시댁은 난리가 났다. 경기도 어려운데 이렇게 무턱대고 그만두면 어떡하냐고. 안 그래도 시댁은 내 눈치를 많이 보셨는데,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서 더욱 내 눈치를 보게 되신 것 같다. 스미마셍..;;


물론, 내가 괜찮은 것과 별개로 월급은 괜찮지가 않았다. 둘이 벌다가 하나만 버니, 월급이 절반이 됐고, 나가는 돈은 동일하니, 두 사람이 먹고살기는 문제없었지만 매달 저축하는 금액은 턱없이 작아졌다. 


그래서 난 이직을 결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이직하며 몸값을 올리게 된 것의 첫 시작은 남편 덕이다.


남편을 책임(?) 져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편안한 삶보다 돈을 택하게 됐다고나 할까? 그때 처음 가장의 무게가 뭔지 느껴본 것 같다. 여기서 나까지 무너지면, 내가 회사에서 갑자기 잘리면 안 되니까 몸가짐도 좀 조심하게 되는 것이.. 진짜 우리나라 외벌이 가장들(여자든 남자든) 존경스럽다!


한편, 남편은 오전 10시 느지막이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하고, 집 근처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친구 회사를 방문해 점심을 같이하고, 주위를 산책하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해서 나와 같이 먹고, 대화를 하고, 노닥거리다 잠이 드는 일과를 보낸다고 했다. 남편은 쉬면서 점차 얼굴색이 밝아지고, 살이 빠지고, 회사를 다니며 쌓인 독을 빼는 듯 보였다. 8개월간 남편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나도 남편이 청소, 빨래, 요리까지 다해주니,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가 있어 심적으로 편했다. 그래서 내가 벌고, 남편이 집안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었는데, 6개월이 지나니 남편이 일하러 가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흠 이제 이 삶에 적응이 됐는데, 기쁘면서도 섭섭한, 묘한 기분이었다.


6개월 동안 쉰 남편은 재취업하는데 2개월이나 걸렸지만, 결국 다시 회사에 입사했고, 그전보다는 일과 삶의 밸런스를 지키며 일하고 있다. 


남편은 지금도 말한다. 목동 키즈라 어릴 때부터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고 성인이 되어서도 단 한 번도 쉬지를 못했는데,        그 8개월이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다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나 역시 인생에 한 번쯤은 쉬고 싶은 순간이 있을 텐데 그땐 나도 오빠에게 매달려 갈 테니깐.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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