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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Feb 02. 2024

거친 수제품 같은 글을 쓰는 것



작년 이맘때 만년필에 취해서 고주망태로 필기구를 사재꼈다. 그러고 몇 달을 종이에 썼다. 온라인에 올릴 글도 먼저 종이에 쓰고 다시 폰이나 컴퓨터로 고쳐 썼다.


이제는 열 자루쯤 되는 만년필과 아직 채우지 못한 열 권쯤 되는 노트를 보면 돈 생각부터 난다. 저게 뭐라고 그 많은 돈을 썼나. 다 합해서 두 달치 용돈은 썼을 것이다.


지금은 다시 처음부터 디지털로 쓰는 생활로 돌아왔다. 종이에 쓰면 불편하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어차피 나는 한 문장 한 문장 공들여 초고를 작성하지 않고 다 뜯어고칠 각오로 일단 써내려가기 때문에 다시 디지털화할 글을 종이에 쓰는 게 더더욱 시간 낭비로 느껴졌다.


지난달에 이연실 편집자의 <에세이 만드는 법>​에서 김훈 작가는 아직도 원고지에 써서 퇴고도 그 위에 한 후 그대로 보낸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수정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글을 쓴다는 말인데 왼손엔 존경, 오른손엔 동경을 담아 박수를 보냈다.


이번에 김민정 시인의 <읽을, 거리>에서 또 손으로 쓰기의 거칠지만 자기다움이 사는 매력을 강조하는 김화영 선생의 말을 읽고 나니 그렇게 처음부터 공들이는 글쓰기, 싹 갈아엎지 않는 글쓰기를 나도 한번 해보고 싶어 볼펜을 들고 노트를 펼친다.


인용문 출처: 김민정, <읽을, 거리>, 난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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