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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Feb 08. 2024

눈물의 굽은 등과 삶이란 숙제에 대해

<읽을, 거리>를 읽고


새해는 설렘의 외투를 입고 온다. 그 옷을 벗어 걸면 툭 하고 떨어지는 울적함. 해가 바뀔수록 우리 몸은 녹슬고 언제일지 모를 죽음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그래서 김민정 시인의 《읽을, 거리》는 1월의 각 날짜에 읽을 시, 에세이, 편지, 인터뷰를 펼쳐 놓았음에도 신년의 들썩임이 무색하게 병고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곳곳에 박혀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정서가 스산하고 차가운 황야의 겨울처럼 다가오지 않고 창밖의 추위를 보며 누군가와 따스한 차를 홀짝이듯 느껴지는 것은 아프고 죽는 것, 나이 들며 서서히 스러지는 것을 마냥 처량하게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많은 분량을 할애해 박지선, 허수경, 황현산, 황병기 등 이제는 세상을 떠난 예술가와 문인을 추억한다. 그들의 말과 글에 자신의 소회를 더해 우리가 어디선가 다가오는 죽음을, 이미 와버린 죽음을, 죽음이 부르는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담담함의 미학을 체현하고 담담을 넘어 농담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있다. 책장 사이사이로 늘어진 줄을 팽팽히 당기는 조율사처럼 등장하는 저자의 아버지다.


그는 불은 떡국은 입에도 대지 않았으나 이제 침대와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몸으로 불은 떡국 밖에 못 먹는 처지다. 하지만 살아서 불은 떡국이라도 먹을 수 있음에 경쾌하게 “감사합니다, 아멘” 기도하고 수시로 딸에게 농담 따먹기를 시도한다.


그가 말한다. 스포츠 선수들은 나이를 안 먹고 멈춰 있는 것 같다고, 우리가 환호했던 데서.


우리 삶은 환호의 대상이던 젊음에 멈춰 있지 않다. 세월은 야속하게 노화와 죽음으로 굴러간다. 그 길 여기저기 도사린 슬픔을 바퀴에 덕지덕지 붙이며.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우리는 기쁠 수 있다.


책에 실린 황병기 선생의 말처럼 “기쁨은 슬픔을 삼키고 나오는 것”이라면 말이다. 동의하고 싶진 않다. 내 삶에는 슬픔이 토하지 않은, 순전한 기쁨만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젊음과 늙음 사이에 놓인 마흔 얼마의 삶을 돌아보면 슬픈 일은 내 바람이나 노력으로 다 막아낼 수 없다.


그런 불가항력을 인정하고 인내하며 사는 게 우리의 숙제다. 기왕에 풀 숙제라면 담담하게, 기왕이면 저자의 아버지처럼 유쾌하게 풀고 싶다. 혹은 훌라후프를 돌리며 선 채로 자기도 모르게 마른 김 한 움큼 다 먹어버린 저자처럼 지금 이 순간에 취해서.


황병기 선생은 슬픔이 예술의 근원이라고 했다. 예술은 마냥 슬프지 않다. 슬픔과 기쁨 혹은 감탄의 교차점에서 예술은 탄생한다. 혹은 그 교차점을 만든다. 이런 문장처럼.


검은 롱스커트 위로 떨어진 눈물이 치마를 타고 또르르 검은 롱부츠 앞코 위에 가 하나씩 앉기 시작하는데 웅크려 앉은 눈물의 굽은 등이 참도 동그랬다.


우리의 등도 점점 눈물을 닮아 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쓰다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게 우리의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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