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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Jan 02. 2024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한 마음가짐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를 읽고


무서우면 진다

우리가 창작을 못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무섭기 때문이다. 결과물이 성에 차지 않을까 무섭다. 그래서 오늘 쓰고 그리고 만들 것을 내일로, 다시 모레로 미룬다.


내가 뭐 대단한 창작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의 저자 이연이 지적하는 문제다. 짧게 소개하자면 이연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구독자 90만 유튜버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의 분석이 옳다. 나는 결과물이 무서워서 자꾸 쓰기를 미룬다. 이 글만 해도 보름을 미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구성이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다면 형편없는 글이 나올 것 같았다.


그건 삽질이다. 못난 것을 만들어내는 것. 기껏 고민하고 애썼는데 시답잖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 우리는 그렇게 허탕을 치는 게 두려워서 창작을 미룬다.


그러면 삽질을 안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연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삽질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삽질을 시간 낭비로 보지 말고 내 개미굴을 파는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달랜다.



개미굴을 파는 일

개미굴이라니? 우리가 이 분야와 저 분야를 판 흔적이 서로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삶의 이력이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열 살이 조금 넘어서부터 취미로 온라인(당시는 PC통신)에 글을 썼다. 그때부터 중간에 쉬는 기간이 있긴 했어도 근 30년간 글쓰기라는 분야를 팠다. 마흔이 조금 넘은 지금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글을 쓰며 팠던 길이 그림을 그리며 파는 길과 만나 나만의 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다양한 분야에 공을 들이면서 자연스럽게 그 노력의 결과가 이어지는 것이 바로 개미굴이다. 그러니까 개미굴은 나의 개성이고 남들에게는 다 보이지 않는 나의 포트폴리오다. 거기서 언젠가 나만의 보물이 발굴될지 모른다.


이 굴을 파려면 삽을 들어야 한다. 멍하니 손 놓고 있으면 땅이 저절로 파이지 않는다. 꾸준히 삽질을 해야 한다. 허탕 같은 결과물이 나올지언정 계속 창작해야 한다.



당신의 숙명

물론 창작을 안 하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아니다. 창작욕이 없다면 애초에 창작을 미루는 습관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전작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에서 말했다. 그리기를 두려워할 시간에 뭐라도 그리는 게 이득이라고. 이번 책에서는 주제를 더 넓혀 창작을, 더 나아가 삶을 말한다.


시작을 두려워할 시간에 차라리 시작하라는 기조는 그대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필요한 마음가짐에 더해 혼자 하는 일과 함께 하는 일의 균형을 잡는 법, 특별해지는 법,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법 등에 대한 현실적 조언을 전한다.



삽질을 버티는 주문

내 그림은 삽질의 연속이다. 매번 나오는 결과물은 이제 간신히 발그림을 벗어난 수준이다. 부족한 실력으로 끝까지 그려낸 것이 기특하지만 늘 그리다 만 것 같은 미진함이 남는다. 그 감각은 글쓰기를 마쳤을 때와 다르다.


글을 쓸 때는 완벽하진 않아도 “이 정도면 됐어”라고 적당한 만족감을 느끼며 끝을 낸다. 그림을 그릴 때는 “이 정도로 어쩔 수 없잖아”라고 체념한다. 매번 한계를 절감한다.


그래도 계속 그린다. 내가 애플펜슬로 벌이는 이 삽질이 그간 글쓰기를 포함해 이런저런 분야에서 잡다하게 남긴 삽질의 흔적과 맞물려 언젠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게 어떤 기회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믿는 말이 있다. 소설가 김중혁의 에세이집 제목이기도 한, <뭐라도 되겠지>​. 혹은 노홍철의 아이스크림가게 이름인, <너 커서 뭐가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


뭐라도 되겠지. 당신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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