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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만물리뷰

현상의 절반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제10회 대구사진비엔날레 리뷰

by 김콤마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진행 중인 제10회 대구사진비엔날레에 다녀왔다. 내게 영감을 준 것들을 정리해 본다. 관람한 순서대로 나열했다.


1.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절반만 본다. 나머지 절반은 우리 안에 있다.”

타하르 벤 젤룬(Tahar Ben Jelloun)의 말이라고 한다. 어떤 현상을 해석하는 것은 그 현상을 경험한 후 내 안에 형성된 생각과 감정을 탐색하는 일인 것 같다. 그 생각과 감정을 발견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해석을 건너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지금 이 글은 그런 유혹을 뿌리쳤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 저 문장이 내게 울림을 줬지만 구체적으로 왜 울림을 줬는지는 얼른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반응을 명료한 생각으로 바꾸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노력의 수단 중 하나가 글쓰기다. 글은 생각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지 않고는 쓰는 게 불가능하므로.


2. 위리아 촛파냐위숫의 백조 궁뎅이 사진들

백조가 먹이를 잡느라 물 속에 고개를 박고 꽁지만 보이는 사진이 한 장만 있었다면 감흥이 없었겠지만 여러 장을 모아놓으니 매일 그런 장면을 찍으려고 물가로 나가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가 왠지 꽁지 사진 전문가인 것처럼 느껴졌다. 뭔가를 꾸준히 행하고 그 기록을 남기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에 내가 등장하는 구체적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사람들은 막연한 것보다 구체적인 것에 더 관심과 애정을 느낀다. 나는 요즘 매주 유유출판사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이것으로 사람들에게 내가 더 구체적인 이미지로 다가가게 될 것이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길 기대한다.


3. 한정식의 나무 사진

사람이나 동물의 얼굴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흑백 나무 사진이다. 사진 자체로도 인상적이지만 촬영 연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197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다! 세월이 흘러도 바로 어제 찍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흑백의 힘을 느꼈다. 색이 없기에 세월을 이기는.


4. 브니 브라하의 단면 사진

양귀비와 키위 같은 식물을 썰어서 그 단면을 접사로 촬영했다. 설명이 없으면 무엇을 찍었는지 짐작조차 어려울 만큼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뻔한 것도 남다른 관점으로 보면 달라 보인다. 중요한 것은 그런 관점을 찾는 것! 일단 찾으면 나만의 개성으로 오래 유지될 수 있다.


5. A4 용지에 인쇄한 흑백 사진

작가가 누구인지는 기록하는 것을 깜빡했다. 흑백이라 인쇄 품질의 영향을 덜 받는 것일까. 그냥 A4 용지에 인쇄했는데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색이 없어 힘을 발휘하는 흑백의 매력을 느꼈다.


6. 스완지 잭 기념 개 수영 대회 이야기

70년 전의 사건을 기념해서 개 수영 대회를 연 작가가 마치 70년간 이어져온 대회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이야기.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마치 항상 존재했던 것처럼 계속 이어” 하는 것. 요즘 나에겐 손으로 글을 쓰는 게 그렇다. 오랜만에 하는 것이지만 마치 꾸준히 해왔던 것처럼 익숙하다. 하지만 컴퓨터로 쓸 때와 달리 고개를 꼿꼿이 세울 수 없어서 목에 무리가 가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말 오랫동안 이렇게 글을 써온 것처럼 몸이 망가질까 걱정된다.


7. 완링 창의 그림책

손바닥 만한 종이를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만든 조그만 책. 왼쪽 페이지에는 동물 사진, 오른쪽 페이지에는 그것을 보고 그린 그림이 인쇄돼 있다. 단순하지만 그래서 개성적이다. 무엇보다 그것을 조그만 판형의 단순한 책으로 엮어서 판매한다는 발상이 좋았다. 언젠가 내 그림도 이렇게 단순하고 작은 책으로 만들어 일종의 기념품으로 배포하면 좋을 것 같다.


8. 신티아 토르토사 산티스테반의 스크린샷 책

작가가 아파트 5층에서 꾸준히 촬영한 영상 속 장면들을 인쇄해 만든 역시 조그만 책이다. 사진은 뭉개졌다는 표현의 완벽한 사례라고 할 만큼 화질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런 사진들도 한데 모아놓으니 작품이 된다. 백조의 엉덩이 사진을 모으자 작품이 된 것처럼.


최근 코닥에서 출시한 차메라라는 초소형 카메라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화제다. 키링에 달 수 있을 만큼 작다. 나도 하나 살까 했지만 샘플 사진을 보고 관뒀다. 화질이 안 좋아서. 뭉개져 있어서. 하지만 산티스테반의 스크린샷 책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차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작은 책으로 만들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9. 가와우치 린코의 빛내림 사진

언제고 이런 아이들 사진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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