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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May 06. 2021

달걀책방(EggBook Shop)

연희동

What 달걀책방(Egg Book Shop)

Where 서울시 서대문구 성산로9길 43-35 1층

Detail 수 14:00-18:00, 목/금 13:00-18:00, 토 13:00-19:00

Mood 궁동산 아래 비밀스럽게 자리한 '모두를 위한 책방'





출판계에서 첫 커리어를 쌓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책이라는 존재가 내게 주는 영향은 그 무엇보다 컸으므로, 늘 삶의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어떤 문장으로부터 빌린 지혜와 위로와 깨달음과 용기가 한 겹씩 더해갈 때마다 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매일 새로운 '나'가 되어 살아가지 않으면 인생의 불가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읽으며 배웠다.


출판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잘 모르는 영역의 책도 흡수해야 했다. 대부분의 책을 읽기보다는 빠르게 '훑는' 것에 가까웠다.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신간을 파악하고, 누군가에게 그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해야 했기에 속도가 중요했다. 막상 완독하는 도서의 수가 감소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책의 디자인이나 물성적 특성도 고려하게 되면서, 독자로서의 담백한 마음이 점차 훼손되는 것만 같았다. 그럴싸한 말들로 포장하다 보면 나를 일깨웠던 책들이 더욱 그리워졌다.


그럴 때면 책방으로 향했다. 좋은 책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베스트셀러 위주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광고의 힘으로 책을 진열한 대형서점보다는 저마다의 주제로 큐레이션한 소규모의 책방으로. 한남동의 스틸북스나 통의동의 보안책방 그리고 합정동의 땡스북스 등 서울에는 안목이 대단한 북 큐레이션을 선보이는 곳들이 많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골목길에 고요히 숨을 쉬고 있는 책방이 동네마다 있어 방문하는 것 자체로 재미가 있다.


연희동의 달걀책방(Egg Book Shop)도 쉽사리 발길이 닿지 않는 산자락에 위치한다. 이 동네에 오랜 기간 거주하면서 궁동산만큼 아름다운 산책로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달걀책방은 궁동산의 끄트머리에 차분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연희동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임이 분명했다. 특히 신록이 눈부신 계절에 방문한다면 더없이 충만한 운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달걀책방이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모두를 위한 서점'이라는 점이다. 그림책과 일러스트레이션, 아동청소년 서적을 소개하는 곳으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기 좋은 책들을 주로 다룬다. 실제 진열된 서적을 둘러보니 어린이와 성인 도서의 비율이 각각 7:3 정도 되었다. 서울에는 수많은 독립서점이 있지만 의외로 아이와 함께 방문해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책방은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달걀책방의 존재가 유달리 반가웠다.   


달걀책방에서는 작은 전시와 책과 연관된 소규모 모임, 프로그램도 주기적으로 연다. 현재 안난초 작가의 전시 '풀의 앞에서'와 궁동산 식물지도 제작 프로젝트인 '궁동산 식물탐정'이 진행 중이다. 이밖에도 북토크나 북클럽, 각종 워크숍 등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활동 위주로 기획한 프로그램들이 돋보였다. 무언가를 만들고, 쓰고, 그리고, 키우고, 꿈꾸는. 학교에 가는 날이 줄어든 아이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소식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세상의 모든 달걀 책을 모아 놓은 듯한, '달걀 책' 큐레이션이었다. 책방의 이름에 맞게 각국에서 출간된 달걀 책을 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egg book>은 모양부터 달걀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쯤 되면 왜 '달걀'책방이라고 이름 짓게 되었는지 궁금할 터. 바로 이 책을 만들게 된 과정과 닮은 점이 있었다. 달걀처럼 친근하고, 늘 곁에 있고,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고, 가정적이고 따듯한 느낌의 책이 그림책과 아동-청소년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달걀책방은 어린이들을 위한 섬세하고 현명한 시선을 담아 책을 진열해 두었다. '돌봄의 책' '숲의 책' '모험과 탐험의 책' 등의 이름 아래 큐레이션 된 서적들을 보고 있으니, 이 공간이 만약 사람이라면 언제나 다정한 이웃의 인상을 지녔을 것만 같다. 때마침 창밖으로 햇빛 아래 반짝이는 이름 모를 꽃과 풀들이 아른거린다. 연희동의 숨은 보석과 같은 궁동산 아래, 달걀을 품고 있는 책방이 궁금하다면. @egg.book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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