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What 와이드커피스탠드(wyd coffeestand)
Where 전남 여수시 고소3길 64
Detail 월~금 12:00-21:00, 주말 11:00-21:00
Mood 너른 바다를 보며 한 템포 쉬어 가고 싶다면
여행이 그리워질 때면 바다 사진을 꺼내어 본다.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는, 각기 다른 계절의 바다들이다. 바다만큼 선명하고 새파란 해방감을 주는 존재는 몇 안되므로. 순수하게 행복했던 그때를 종종 떠올린다. 마치 사진에서 영상이 재생되는 것처럼 파도소리가 들리고 어떤 촉감이 느껴지는 듯하다. 바다에게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아마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일 테다.
동해와 남해 그리고 지중해와 흑해를 눈으로 훑다 보면 어서 바다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육지에서 벗어나 바다에 가까워지는 순간, 그 찰나의 떨림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오랜 여행 메이트인 G와 제주와 부산 그리고 몇몇 해양도시를 후보로 두고 대화를 하다가 둘 다 여수는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므로 이번엔 여수로 떠나기로!
기차를 타고 도착한 여수의 첫 느낌은, 예상과 많이 달랐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회색빛 하늘에 거센 해풍이 불었다. 우선 점심을 먹기 위해 유명한 게장집에 갔는데, 대기 인원이 20팀 가까이 되었다. 아쉬운 대로 근처의 다른 게장집에서 식사를 마쳤고, 날씨는 그때까지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으므로 무슬목 해변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공영 자전거인 '여수랑'을 타고 여수에서 가장 유명한 길인 '낭만포차 거리'를 지나던 중이었다. 왼쪽으로는 바다가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식당과 술집이 즐비해있었다. 항구와 면한 바다라 잔잔했기에 우리는 주로 오른쪽을 구경하며 달렸다. 그러다 웬 언덕배기에 눈에 띄는 건물들이 보였다. 루프탑 카페 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집 같기도 한 예쁜 건물들이었다.
그곳에 무언가 있으리라는 직감을 믿고 자전거를 세웠다. 그 언덕을 향해 오르는데 '천사 벽화마을'이라는는 이정표가 있었다. 사람 한 명이 팔도 못 벌릴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굽이굽이 올라갈 때마다 작은 화살표가 길을 알려 주었다. 여기 확실히 뭔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신나게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기적적으로 날이 개면서 해가 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곳은 '고소동 1004벽화 마을 거리'로, 예쁜 식당과 카페가 있는 보석 같은 지역이었다. 여기서 '1004'는 길의 시작점과 끝점의 거리를 의미한다. 길의 양쪽으로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 가게들이 꽤나 많았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가장 궁금했던 와이드커피스탠드(WYD coffeestand)로 향했다. 외관부터 심상치 않다 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이곳과 운명적으로 '잘' 만났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카페의 통유리창 너머로 여수의 이순신대교와 돌산대교가 파노라마 뷰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밑으로는 남해와 해안마을이 장관을 이뤘다. 시원스레 뻗은 풍경과 함께 즐기는 커피타임이라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우리는 아이스 라떼와 에티오피아 수케 쿠토 아이스 핸드드립 그리고 레몬 파운드 케이크를 주문했다.
와이드 커피스탠드의 내부를 둘러보는데 사실은 좀 충격적이었다. 서울의 힙한 카페라면 지닌 몇몇의 요소를, 이곳이 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명, 가구, 매거진, 음반, 오브제 등 뭐 하나 대충 꾸민 것이 하나 없었다. 플로스나 루이스폴센의 조명이 공간의 조도를 편안하게 만들었고, 각기 다른 디자인 테이블과 의자가 특색을 더했다. 특히 북유럽 감성의 가구가 상당히 세련되고 품위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소위 요즘 각광받는 브랜드의 상품들이 이 공간 안에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었다. 벽면마다 붙은 포스터나 패브릭도 굉장히 멋스러웠다. 감도가 뛰어나고 디자인에 밝은 사람이 이 공간을 꾸민 게 아닐까 싶다. 끝도 없이 감탄을 하던 중에 음료와 디저트를 맛보았는데 웬걸, 성공적이었다. 핸드드립 커피는 꽃향과 산미가 풍성해 레몬 파운드케이크와 잘 어울렸다. 산미를 잘 표현하는 듁스커피답게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이었다. 카페라떼는 진하고 고소한 맛보다는, 적당히 부드럽고 씁쓸한 맛이었다.
게눈 감추듯 커피와 디저트를 흡입하고, 2층의 테라스와 루프탑을 구경했다. 어느 면에서 바라 보아도 여수의 바다가 반짝였다. 서서히 저무는 해의 여남은 온기와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며 시간을 보냈다. 생각보다 각 층마다 규모가 커서, 지하 1층은 굳이 살펴보지 않았다. 그런데 화장실이 지하에 위치했기에 나가는 길에 잠깐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화장실에 다녀온 친구는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지하 1층에 있다고. 달라야 뭐 얼마나 다르겠나 싶은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는데, 끝까지 이곳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DJ 턴테이블과 모던한 인테리어, 세 개의 선반에 나란히 늘어선 LP판까지. 족히 30개는 되는 형형색색의 앨범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서 디제잉 공연을 한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전반적으로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공간 구성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화장실마저 범상치 않은 힙스러움을 지니고 있었기에 연신 사진을 찍었다.
우연히 만난 와이드 커피스탠드가 남긴 인상은 매우 선명하고도 깊었다. 너른 바다의 풍경을 보며, 한 템포 쉬어 가고 싶은 이들에게 권하는 곳. @wyd_coffeestand
+추가 정보
고소동 벽화마을 거리에는 평점이 우수한 카페가 다수 위치한다. '모카힐'이나 '환기', '카페몬당'도 추천한다. 무슬목 해변에 간다면 여수에서 제일 유명한 카페 '모이핀'에 들려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