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물들>을 읽고
인연이다. 내게로 흘러와서 머물고 있는 고요한 인연이다. 지극한 인연이다. 살면서 많은 인연들이 스쳐가고 맺어진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어떤 인연은 내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 희고 가느다란 손목을 에워싸고 물끄러미 파동 친다. 함께 나눈 하늘과 바람과 비의 이야기들이 그 작은 고리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웃는다. 그러니 나는 즐겁게 그 구속을 향유한다. - <당신의 사물들> 중 팔찌(함순례)
출판사(이제는 전 직장이 되었지만, 아무튼) 동기들과 술자리에서 나눈 이야기가 있다. 시인이 쓴 에세이가 좋다고. 각기 다른 시인의 산문집을 읽고 감명을 받은 우리 셋이었지만,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시인의 산문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그때는 내가 <당신의 사물들>을 접하고 깨달은 사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20대 초반에 나에게 큰 감명을 준 책 또한 '시인의 에세이'였다는 것을 상기했다.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최영미 시인의 유럽 일기, <시대의 우울>은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발견해 읽게 되었다. 이후 절판본을 구해 가장 애정하는 도서만을 모아 놓은 책장에 꽂아 두었다. 종종 꺼내어 읽을 때마다 그 당시 느꼈던 매혹적인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긴밀한 아름다움, 언어의 위대함은 그대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최영미라는 한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대학생인 내게 너무나도 우아하고 대담했다. 당시 그 누구도 들려주지 않았던 어른의 세계였다.
막상 시집을 읽을 때는 자주 어려움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 시를 느껴보려고 할지라도, 깰 수 없는 어떤 벽에 가로막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이채로운 시어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시구는 여전히 감탄스럽지만 말이다. 최근에 친구가 건네준 <당신의 사물들>을 만나면서, 우선 시인들의 시선을 배워보고 조금 가까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어떤 감각을 세우고 생활하는지 살펴보며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볼 심산이었다.
<당신의 사물들>은 사물을 대하는 네 가지 감각(느끼다, 보다, 듣다, 만지다)을 다룬다. 현재 활발히 활동 중인 여성 시인 49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각자가 편애하는 '사물'의 안과 밖을 서성이며 그 안에 고여 있는 말을 꺼내어 사물과 마주했던 사소하지만 각별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출처: 교보문고)
실로 책 속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물을 굽어보고, 귀 기울이고, 함께 살아가며 마주한 여러 감정들이 존재했다. 때로 공기처럼 가벼워 웃음이 나거나, 예상치 못한 무게감에 가슴이 먹먹했다. 그 속에 녹아든 삶의 편린이란. 인생의 불가해(不可解)라는 신비를 명민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각각의 이야기는 더없이 특별하다. 그저 참으로 아름답다는 말로 밖에 표현을 못 하겠다. 개인의 사적인 기억이면서 우리 모두의 한때이기도 한. 잊고 싶지 않은 몇 문장들을 아래에 기록해 둔다.
손삽_ 허수경
흙에는 인간의 기억은 물론 지구의 모든 기억이 들어 있다.
삽의 기능이야 흙을 뜨는 것이겠지만 흙을 뜨는 일 자체는 많은 함의를 지닌다. 씨앗을 심을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삽은 한 생명을 흙 안에 넣어두는 도구다. 새를 묻는 것은 생명을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다. 삽은 그 두 역할을 하는 잠재태이다. 인간이 쓰는 도구들은 모두 인간의 몸의 연장이다. 삽은 그런 의미에서 손의 연장이다. 인간의 죽음과 탄생을 돕는 일을 손 대신 삽이 한다.
사과_ 이수명
시장 귀퉁이에서 초록빛 아오리를 보면 해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바로 한 봉지 사 와서 한 해의 첫 사과를 음미한다. 한 줄기 새벽 여명의 맛이다.
오븐_ 이혜미
오븐은 수많은 세계를 한 몸에 눌러 담은 이계의 건축물이다 오븐은 대체 불가능하며, 완연하고, 농염하다. 뜨겁고 우묵한 오븐의 배 속에 깊숙이 손을 넣고 다른 질감과 온도를 꺼낼 때, 얼굴에 훅 끼쳐오는 그 열기, 그 밀도 높은 공기의 촉감. 제 속에 담겼던 것들의 정수를 머금은 그 뜨거운 숨을 사랑한다.
온갖 가능성을 함축한 미지의 창문을 닫고 시간을 맞춘다. 새로이 도래하는 낯선 세계를 만나러. 오븐은 먼 세계를 향해 출발하는 뜨거운 방이다.
등잔_ 신현림
불이 켜지면 마음은 더 이상 먼 데로 가지 않고 내 안으로 향한다. 홀로 있을 때의 외로움은 자아 감각을 더욱 날카롭게 해주고, 사람들이 모이면 등잔불은 가장 아름다운 빛을 뿜어낸다. 손의 감촉은 더 예민해지고, 사랑하는 자들의 손길은 더 부드러워진다. 까무잡잡한 얼굴은 빛나는 구릿빛으로 바뀌고, 흰빛의 얼굴은 은은하게 달빛으로 끌어당긴다.
등불을 보면 '생을 마감한 뒤에 남는 것은 그가 쌓아놓은 것이 아니라 나눠줬던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등잔의 철학이 바로 생명이 다할 때까지 사람에게 빛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던가. 이 오래된 물건이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하게 다가온다. 그 사소한 것의 위대함을 기억하고 싶다.
커튼_ 안미옥
빛을 가두지 않고, 가만히 온몸으로 품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투과시켜주는 것. 그것이 커튼이 하는 가장 멋진 일이다. 벽이 될 수도 있지만, 벽으로 존재하기를 거부하는 몸짓. 그것은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겠다는 의지다. 경계를 허무는 방식이 아니라, 포용하는 방식. 그런 커튼의 성질은 내가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성품과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특별한 제스처 없이도 어떤 공간을 포근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침낭_ 안희연
하루는 전쟁 통을 방불케 하는 인도의 기차역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있는데 한 외국인 여행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얘, 너의 슬리핑백이 저기 떨어져 있다. 간수 잘해!" 배낭에 연결해두었던 버클이 풀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침낭을 잃어버릴 뻔했던 것이다. 가슴팍에 침낭을 끌어안고 기차에 올라 곰곰 생각했다. '슬리핑백'이라는 이 낯설고도 아름다운 단어에 대해서. 그때 나는 밤마다 나를 사로잡았던 두려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침낭은 '잠'을 담은 가방이구나. 그간 하루도 빠짐없이 침낭 안에서 잠들었으니 저곳엔 내 모든 밤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겠구나.
매일 죽고 매일 태어나고, 매일 떠나고 매일 돌아오고, 매일 만나고 매일 헤어지는 모든 일들이 이 작은 가방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구나. 갑자기 내 침낭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침낭은 우리의 삶과 죽음이 상연되고 축적되는 장소였다. 매일 밤 죽음을 연습하는 장소였다.
나는 늘 바라 왔다. 백지 앞에선 시로 멀리 가고, 실제 삶에선 비행기를 타든 기차를 타든 멀리멀리 가서 더 멀리 가기를 늘 꿈꾸며 살아가기를. 내게 또 한 번의 아침이 허락되었다면, 그건 더 멀고 막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