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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Apr 07. 2021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기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를 읽고

나는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를 버리고 이 지구를 다른 생명과 공유하며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공생인, 즉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자고 호소했다. 그러자면 나는 무엇보다 우리 인류가 '생태적 전환ecological turn'을 이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  최재천,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의 에필로그 중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인은 위태롭다. 미세먼지의 습격, 팬데믹의 장기화,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까지. 열거하고자 하면 끝도 없는 재앙적 위기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불안한 나날에 찬란한 봄꽃이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몽매한 인간의 기대였다. 봄꽃의 상징인 벚꽃이 때 아닌 3월에 만개하고 말았다. 이 또한 온난화의 결과다. 관측 이래 100년 만에 17일이나 일찍 개화했다고 한다. 그저 기뻐하며 보낼 수 없는 시절이다.


앞서 언급한 전 지구적 재난은 '기후위기'로 수렴한다. 더 이상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구를 헤아려 보는 일은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의 의무가 되었다. 우리가 함께 연대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우리 각자가 지금보다는 조금 불편한 삶을 살아야 한다. 시대의 요구에 따라 환경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해야 할 때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제로 웨이스트 실천'과 '비건 지향'이다. 일상 속 나의 행동과 식습관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며, 기후위기에 대처하고자 한다. 지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수시로 떠올려 보려고 한다. 오늘 갑자기 철저한 환경주의자가 될 수는 없지만, '조금씩'이 곧 미래를 바꾼다고 믿는다. 큰 변화에는 언제나 작은 계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지구를 위한 행동을 공부하기 위해 여러 현인(賢人)의 책도 찾아 읽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등의 고전서를 포함해 최재천의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 호프 자런의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 등 격파(?) 해야 할 도서들이 많다.



오늘 소개할 책은 21세기 생활철학으로서 생태학을 다룬 최재천 교수의 책,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이다. 최재천 교수의 최신간(2021.03 출간)으로, 환경 재앙의 역사와 더불어 현 인류가 직면한 팬데믹과 기후위기 그리고 생물다양성 고갈의 문제를 설명한다. 슬기로운 지구인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가장 먼저 이 책부터 손에 쥐어주고 싶어 골랐다.


사실 문과 출신으로서 과학 분야의 책을 읽을 때는 부담감부터 들기 마련인데, 이 책은 이해하기 쉽고 간결하게 환경 문제를 다룬다. 특히 일상이 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진실과 대응책에 관해 속 시원하게 알려 준다. 놀라운 점은 글 안에 자연과학뿐 아니라 인문학이 살아 숨 쉰다는 점이다. 최재천 교수의 문장을 읽다 보면 시적 표현과 문학의 인용을 자주 발견한다. 정보 전달 그 이상으로 감정을 건드리기에, 그의 글에 매료됐는지도 모른다.


인상 깊었던 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먼저 서문에는 최재천 교수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보내는 서간문이 담겨 있었다.


"저는 우리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의 자만에서 깨어나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배하려는 우리의 오만한 사고방식, 경제성장 제일주의의 근시안적 정책, 나만 살고 보자 식의 이기주의적 도덕관 등에 획기전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지구의 미래는 그야말로 불 보듯 뻔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의식의 대전환이 절실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재앙의 역사가 바로 다음 장에 나오는데,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무지한 행동들이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지 설명한다. 생태계의 순환 원리에 따라 우리가 자연의 균형을 파괴한다면 결국 우리 스스로의 파멸을 불러온다고 말한다. 살충/살균제 남용, 화학물질 유출 사건, 대기 오염, 원자력발전소 사고 등 역사의 각 지점마다 발생했던 끔찍한 환경 문제를 직시하니 더 이상 이전처럼 살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2장의 주제인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인간의 무지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야생동물을 함부로 다뤄 어처구니없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박쥐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개미핥기의 일종인 천산갑이 중간 숙주였다는 사실은 몰랐었다.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동식물을 무분별하게 해친 결과가 지금의 팬데믹 상황이란 말인가.


"중국 화난 농업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박쥐에서 천산갑을 거쳐 인간으로 전파됐을 것이란다. 다양한 야생동물에서 추출한 시료들을 검사한 결과 천산갑에서 나온 바이러스의 유전체 염기 서열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서열과 99퍼센트 일치한다고 밝혔다.
...(생략)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천산갑의 비늘을 갈아먹으면 종기가 가라앉고 혈액 순환에 좋다 하여 한약재로 사용해왔다. 이 때문에 천산갑은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어 있는데도 대량으로 포획해 중국으로 밀반입되고 있다.
...(생략) 비싼 돈 주고 어렵게 구한 천산갑 비늘은 화학적으로 볼 때 가끔씩 깎아 버리는 우리 손톱이나 발톱과 진배없다. 아무리 뜯어봐도 딱히 약재로 쓸 만한 게 없어 보이는데 언제부턴가 뜬금없게도 정력에 좋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중국에서는 밀수하다 적발된 천산갑 비늘이 때로 수십 톤에 달한다고 한다."



최재천 교수는 집단 면역(herd immunity)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집단 면역에 대한 오해가 도를 넘고 있다. 사회적 집단 면역은 다분히 진화론적 발상이다. 야생동물 집단에서는 늘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생명은 소중한 것이며 내 생명은 더욱 소중하다. 국가가 집단 면역 정책을 채택할 경우 사망하는 사람 중에 내가 포함될 수 있다. 진화는 낭비를 선택했다. 엄청나게 많이 태어나 대부분이 죽고 극히 일부만 살아남아 번식에 이르는 게 냉혹한 진화의 현장이다. 그 어느 정부도 함부로 진화적 정책을 추진해 국민의 목숨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


3장 '기후변화의 위기'에서는 감염성 질병과 팬데믹에 대한 투쟁이 궁극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일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에 발생하는 각종 환경 재앙이 빈번해지고,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은 곧 '불편한 진실'이다.


"불편한 진실에 대응하는 가장 현명한 길은 우리 각자가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불편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우리가 저지른 죄의 그림자가 이미 너무나 길게 드리워 있어 지금 당장 우리가 대오각성한다 하더라고 적어도 수십 년은 그 죗값을 치야 한다.
...(생략)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갉아먹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지속 가능성 개념이다. "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최재천 교수는 이기심과 욕망을 버리고 지구의 생명체들과 손을 맞잡자고, 공생하자고 외친다. 그의 처절한 목소리를 차마 외면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버겁고 미래가 두렵다. 내가 기꺼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을까.


사실 누군가에게 '환경을 생각해 행동을 바꿔라-예를 들어 비건을 지향하라-'고 권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환경을 위한 행동을 찾아 나가는 것과 그리고 이와 관련된 좋은 경험을 넌지시 공유하는 일이다. 이번에 발견한 최재천 교수도 이러한 맥락에서 기록하게 되었다. 슬기로운 지구인이 되고 싶은 나에게 너무나 좋은 독서 경험이었기에.




나의 선택이 내일의 지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 용기를 더해준 글이 하나 더 있다. 얼마 전에 읽은 이슬아 작가의 '식습관이 날씨를 바꾼다'는 제목의 기사이다. 그 일부를 아래 남겨 두겠다. 선택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지만, 함께할 동지가 곁에 생긴다면 나는 더없이 환영할 것이다.    


"오늘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행동이 기업과 과학과 정치를 움직인다. 동물성 식품 소비를 줄이는 건 개인이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몹시 효과적인 행동이다. 자신의 선택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자아도취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나쁜 건 자신의 선택이 아무한테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믿는 자아도취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얼마나 굉장한 개인인지를 가르친다. 동물을 얼마만큼 먹느냐에 따라 직접적으로 기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식습관이 미래의 날씨를 바꾼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말대로 ‘우리가 날씨다’. 전 지구인의 총동원이 필요한 이 시대에 당신은 어떤 습관을 바꾸며 자신을 동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에게 없는 지혜가 당신에게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고기를 먹지 않는 동지로서 당신을 기다리겠다." - 21.03.22 경향신문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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