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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l Dec 05. 2020

논픽션, 글은 발로 쓴다

경험적 글쓰기 관하여





N O N F I C T I O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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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S S A Y



이지유를 만난 것은 서울북인스티튜트(SBI) 주관하는 재직자직무향상과정  <어린이논픽션 기획에서 마케팅까지> 강의 4  [어린이 논픽션 작가와 편집]에서였다. 강의는 논픽션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 디자인까지 두루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 내가 속한 마케팅 분야 말고도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볼  있을  같아 신청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강의진이 출판사 실무진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반면, 이지유는 어린이책 작가라는 점에서 남다른 시선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지유의 강의에는 유머가 자주 담겼다. 청중을 휘어잡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그래서일까. 두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하지만 여운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속에 남아 새싹처럼 자라나고 있다. 그녀의 인생관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이지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했다. 이제부터 메모장에 가득히 적은 이지유의 강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그녀는 유쾌하고 호탕한 말로 수업의 포문을 열었다. 논픽션 작가로서, 'non-fiction'이라는 단어에 불만을 품고 있다고 했다. 픽션이 우선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픽션 아닌 것이 곧 논픽션이라는 단순한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녀에게 논픽션의 정의는 곧 '경험'과 '현장'이었다. 작가가 몸소 경험하며 지식을 체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논픽션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술, 철학, 역사, 경제, 과학 등 여러 분야 중에서도 과학 논픽션 작가인 이지유는 '글은 발로 쓴다'라고 말했다.


학문 분야마다 지식을 도출하는 방법이 다른데, 과학의 경우 실험과 증명이 그 방법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현장에 가서 직접 실험하고 결과를 도출한 것을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산'을 주제로 썼을 때는 하와이의 킬라우에아 화산 옆에서 2년 동안 살았고, '사막' 이야기를 쓸 땐 서호주 사막에서 살았고, '우주' 이야기는 프랑스의 망원경 공장 옆에 살며 천문학을 공부하고 책을 썼다고.


그렇게 논픽션을 쓰는 이유는, 독자가 '발견의 기쁨'과 '재미'를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논픽션은 지식을 얻거나 외우려고 보는 참고서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독자가 멈추지 않고 다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여행기나 역사처럼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하고, 과학 이야기가 나올 때는 용어와 이론 지식을 담으면서도 최대한 시처럼 정제해 양을 줄이는 식이다. 이 전략은 그녀의 강의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PPT를 넘기며 과학 논픽션에 대해 설명하다가도 조금 지루해지는 분위기면, 자신이 여행하며 글을 썼던 아프리카, 하와이, 프랑스 등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수업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단순히 원고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물성과, 그 안에 담기는 그림도 고려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작가라고 한다면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디자인적인 요소는 출판사에 맡기거나 덜 신경 쓸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올해 출간한 <나의 과학자들>을 위해서 8개월 동안 실크 스크린 기법을 배워, 본인이 직접 자신이 동경한 과학자들의 얼굴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했다. 이밖에도 종이를 펼치면 공간 감각이 생기는 팝업북을 만들기 위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책 안에는 아이들이 본다는 사실을 중요히 여겨 반드시 '양성동수'의 이미지를 추구한다고 했다. 교실을 묘사하는 그림에 교사와 학생의 성과 수가 골고루 표현되도록 하고,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성별 설정도 신경을 썼다. 특히 과학 논픽션에서 좋지 않은 요소는 과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 박사나 삼촌인 경우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자연히 자리 잡은 편견과 선입견을 주의해야 한다. 순간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에서 과학 실험실에서 뿅! 하고 나타나는 것은 머리가 꼬불한 늙은 할아버지 박사였다는 점이 떠오르기도 했다. 주인공과 악당이 대부분 남자였다는 것도.


마지막으로 이지유가 전한 메시지는 명료했다. "내 책이 30년 후에도 살아남게 하려면 젠더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 세상은 앞으로도 양성평등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어린이 세대가 제대로 학습을 받아야, 우리 사회는 변화할 수 있다. 나는 1960년대생의 여성 과학자로서 그녀가 헤쳐온 무수한 과정을 듣고, 그 환경에 기죽지 않고 혹은 물들지 않고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있구나' 하며 감탄했다. 나의 부모님 세대와 그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을 만났던 경험을 떠올려 볼 때, 그녀의 단단한 젠더 의식이 유달리 멋지게 느껴졌다.


아래 이지유의 칼럼과 인터뷰 글을 덧붙이며, 작가 노토의 첫 주제인 '픽션과 논픽션의 세계'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작가는 인생 최후의 직업이다. 해보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처럼, 경험의 세계를 부지런히 넓혀 가며 작가적 마인드를 갖추고 싶다. 앞으로도 좋은 작가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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