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FT: In Sync with the Earth>
우리 삶에 예술이 왜 필요한지 궁금하다면, DRIFT의 전시를 경험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얼마 전 신형철 작가의 <인생의 역사> 속 저자 소개란을 읽고 그가 예술의 윤리적 역량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형철 작가가 말하는 예술의 윤리적 역량이란 예술이 가진 일종의 질문을 함의한다. 예술은 질문을 던지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DRIFT가 선보이는 작품 세계 또한 예술적 경험을 넘어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기술, 이 둘 사이의 공존을 생각해 보도록 유도한다. 그 방식이 어떤 컨템퍼러리 아트보다도 실험적이고 참신하게 다가와 전시장을 떠난 이후로도 여운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DRIFT는 자연의 원리를 관찰하면서 구조적인 규칙을 발견하고, 이를 재해석해 인공적인 기술에 응용한다. 자연미와 인공미 사이의 구조적 유사성에 집중하는 그들의 시선은 지구의 근원적인 메커니즘을 경험하게 하고 작품을 통해 관람자와의 연결을 시도한다. - 현대카드 스토리지 소개문 발췌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Materialism>은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사물을 물질의 개념으로 치환해 보여준다. 새롭게 재해석한 사물을 매개로 이 모든 것의 공급자인 지구에 대해 사유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주로 휴대폰, 시계 등과 같이 우리 일상의 일부이자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오브제를 다루는데, DRIFT는 이를 구성하는 재료의 단위로 사물을 해체한다. 정확한 양의 블록 형태로 전환해 각 사물의 원료를 면밀히 감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수학적이고 건축적인 접근이 색다롭게 다가왔고, 물질의 규모를 반영한 1:1:2 비율의 모형에서 특유의 리듬감과 구조미가 느껴졌다. DRIFT는 아시아 최초로 진행된 이번 전시를 위해 신라면을 작업화했다.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를 대표하는 오브제로써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DRIFT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Shylight>는 흰 천에 둘러싸인 조명이 천장에서 연주곡에 맞춰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이다. 춤을 추는 듯 섬세하고 유려한 움직임이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어딘가 모르게 마르셀 반더스가 디자인한 플로스사의 COCOON ZEPPELIN 펜던트 조명이 연상되기도 했다. 꽃의 수면운동(밤낮의 길이와 온도, 습도에 반응해 잎과 봉우리를 스스로 움직이는 개폐 활동)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으로, 공학적 설계를 통해 자연의 원리를 재현했다.
DRIFT는 환경에 맞춰 변화하고 적응해 나가는 자연의 모습이 마치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 가는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을 포착했다. 100번 이상의 레이저 커팅과 40시간 이상의 손바느질을 거쳐 다듬어진 실크 꽃잎, 밀리미터 단위까지 조정해 만든 꽃대 기계의 메커니즘은 매번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기술과 예술의 융합으로 빚어낸 황홀경을 한참 바라보았는데,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볼 때는 또 다른 신비로움을 안겨 주었다.
민들레 조명으로 이루어진 빛 조각 <Fragile Future>도 자연과 기술의 공존을 보여준다. 봄 시즌 암스테르담 전역에서 채취한 약 15,000여 개의 민들레를 건조한 후, 씨앗을 하나하나 핀셋으로 떼어 LED전구에 붙여서 완성했다. 한 점의 민들레 조명이 모듈화 되어 군락을 이루는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치밀한 설계와 노동집약적인 과정 끝에 탄생한 작품은 실로 자연과 기술 사이의 연결감을 선사한다. 다양한 자연을 관찰한 끝에 DRIFT가 내린 결론도 모든 작품의 주제와 통한다고 본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자연은 그 무엇보다 복잡하고, 훌륭하며 매우 논리적이다. 자연이 이 세계의 최첨단 기술이다.
어떠한 예술도 자연보다는 위대할 수 없고, 인간은 그저 실재하는 자연과 모방의 예술을 향유하는 존재라는 것. 예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처럼 예술은 우리의 내면에 질문하고, 당연시 여겼던 것을 새롭게 바라 보게 만들며 나아가 삶을 사유하게 만든다.
기간
~2023년 4월 16일
장소
현대카드 스토리지(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48)
시간
화요일~토요일 오후 12시-9시
일요일ᆞ공휴일 오후 12시-6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