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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yuHyang Lim Dec 11. 2023

갤러리스트도 무명시절이 있다

나는 아끼는 작가가 생기면 , 특히 그 작가가 우리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아니라면  마치 물가에 내놓은 자식처럼 모든 게 신경 쓰인다.  밖에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는지,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만나 고생스럽고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겨 작업에 방해되지는 않을지.

내 마음의 크기만큼 다른 사람들도 우리 작가의 작품을 아껴주었으면 좋겠는데, 이왕이면 좋은 조건으로 전시 기회를 잡고 좋은 컬렉터가 그림을 소장하였으면 좋겠다. 여러 갤러리와 일하는 작가라면 이름난 타 갤러리에서 좋은 대접을 받는 게 우리에게도 좋다. 차라리 그 갤러리와 우리 갤러리가 손잡고 서로 윈윈 하여 함께 이 작가를 키워도 좋다는 마음이다.


순수한 영혼의 작가들과 일하는 나는 늘 걱정투성이다. 하지만 내 말이 누군가를 비난하게 되거나 재단할까 봐서

나는 빤히 다 들여다 보이는 어떤 일 앞에서 100프로 터놓고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기원한다. 우리 작가님이 이번 기회로 무엇이 작가에게 좋은 일인지 아닌지 알게 되시기를 말이다. 뭐든지 스스로 체감하기 전에 말부터 들으면 더 부정적인 적대심이 생기는 것을 안다. 또 내 말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기에 함부로 입을 뗄 수 없다.


최근 우리 갤러리와의 전시 직후 다른 곳에서도 전시기회를 잡은 작가님이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 갤러리에서는요 이렇게 이렇게 해주시고요, 이런 걸 요구하셨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니, 일에도 순서가 있는데? 전해 들은 황당무계한 태도와 말들, 말투만 들어도 그 갤러리의 상황과 오고 갔을 대화들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작가님 눈에는 아직은 그게 보이시지 않는 것 같다.


"작가님, 일단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마시고 전시를 한 번은 해보시고 신중하게 결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게 끝난 후 나에게 오셔서 후기를 털어놓으셨다.


"대표님은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잘 아세요? 마치 예언이라도 한 듯 대표님의 말이 다 맞았어요. 아니 잠깐만요 그런데 갤러리 일을 하신 지가,,?


"저요? 10년이 넘었네요 벌써"


10년이라니 , 말하는 나도 놀랐고 작가님도 꿈에도 몰랐다며  놀라셨다. 그래 어느덧 10년이나 되었다.

나는 학부 졸업하기도 전에 큐레이터 일을 시작했고 졸업 후 2년 뒤 내 갤러리를 차렸다. 나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당연히 이 사실을 모른다. 대표가 되기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이기에 신진 갤러리스트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솔직히 10년 차 갤러리스트라고 해서 특별한 스킬이 있다거나 대단하단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데이터로 축척된 사람관계와 유형을 잘 알고 상황판단능력과 촉이 발달한 것뿐이다.

이 일 자체가 워낙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지라 인복이 많은 것이 중요한데 그 인복이라는 게 결국 나 자신의 안목에서 비롯되는 것이더라.

 

나는 10년 중에 6년을 무명 갤러리스트로 살았고 열정은 지금보다 크면 더 컸으며 그 무모함은 말로도 못한다. 작가만 무명이 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무명이 아닌 지점은 흑자전환을 기준으로 삼겠다)

한국에 갤러리스트가 직업으로서의 인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다. 미술품에 대한 인식 또한 지금과 천지차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근 4년 전부터 의 내 행보를 알고 있을 텐데 그때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훨씬 그 이전부터 서툴렀던 나의 시작과  함께 해주었던 국 내 외 작가들과 함께했던 시절이 존재했다. 캔버스 왁구 뜯으며 울고 불고 잠 못 잤던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고 졸업하고 적금통장 탈탈 털어 나갔던 투자금은 날리기 일쑤였고 5년 이상 적자가 계속되었다. 운송하다 파손된 해외작가의 작품값 커버해 주느라 아무리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곳간이 채워지기는커녕 영혼마저 빠져나가는 기분이 지속되었다. 운송비 때문에 공항에서 한국인 승객에게 짐좀 받아달라며 절박한마음으로  빌었던 용기 하며 어째서인지 죽을 만큼 열심히 일해도 결과가 좋지 못할 때는 평가가 냉혹했고 결과가 좋으면 내덕 보단 그림이 좋아서가 되었다. 나는 다시 20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격렬하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 덕분에 지금의 관록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돌아가기는 싫지만 죽기 살기로 살아서 얻은 안목과 경험이 있으니 그것을 토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말, 피해야 할 사람, 매 순간 발휘해야 할 센스와 배려 등 많은 것들을 얻었고  지금까지 갤러리를 운영할 수 있게 해주는 코어힘이 되었다.  


가끔 내 눈에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보여서 괴로울 때가 있지만 그것들을 재단하여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내 말을 고마운 조언으로 받아들일 거란건 착각이다. 하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이 다른 곳에서 고난을 겪고서 돌아와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대표님 말이 맞았아요” 하는 걸 들으면 그것만큼 속이 시원한 일이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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