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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해 보이면 뭐하나? 인식이 전혀 힙하지 않은데.

W 코리아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by 이문연

시작은 박재범이었다. 박재범이 W 코리아에서 주최한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 Love your W]에서 '몸매'라는 노래를 부른 것이다. 어떤 암이든 발병할 경우 치료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에 큰 후유증을 남긴다. 그 중 유방암의 경우 유방절제술(유방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몸매라는 노래를 부른 것이다. 박재범은 바로 사과문을 게시했다. 상처를 드렸다면 죄송하고 좋은 취지와 의미로 본인도 무페이로 공연한 것이라고 말이다. 박재범의 사과문을 보면서 억울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사는 주최 측에서 공연까지 관리한다. 특히 암환자들을 위한 기부금 모금 관련 행사라면 어떤 노래를 부를지까지 박재범과 협의했어야 했다.


자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 우리는 비판과 논란의 뉴스 기사 속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본질을 찾아야 한다. W코리아는 2006년부터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 Love your W]을 진행해왔다. (오래된 자료는 찾기가 어려웠는데 어떤 블로거가 2015년에 열린 [10회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 : Love your W] 현장 사진을 포스팅해 놓은 것을 보았다.) 10년 전에도 셀럽들은 각자 자기에게 어울리는 다양한 패션으로 참석했고, 공간(그 때도 포시즌스 호텔) 역시 화려한 조명과 인테리어로 패션 매거진이 주최하는 바자회 느낌은 물씬 풍겼으나 유방암과 관련된 그 어떤 상징성도 찾아보긴 어려웠다.


유방암 캠페인 하면 핑크리본이 떠오른다. 우리 나라에선 아모레 퍼시픽이 2000년에 <재단법인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설립해 2001년부터 20회 넘게 *핑크런(1회 이름은 핑크리본 사랑마라톤)을 개최해오고 있다. 핑크리본과 핑크색이라는 상징성을 활용해 누가봐도 유방암을 위한 자선 행사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기에 W 코리아의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이 그 의도를 담았다면, 행사장 어디에서나 그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셀럽들은 예쁘고 멋지게 사진을 찍을 줄만 알았고, 패션 브랜드는 셀럽이 착용한 자신의 아이템들이 카메라에 잘 담기기만 하면 됐고, W코리아는 '유방암 인식 향상'이라는 *핑크 워싱을 달고 이슈화만 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주최측이라는 W 코리아에서 셀럽을 섭외할 때 당연히 이 행사의 목적이나 주의할 점, 드레스 코드를 명시했을까? 셀럽이 와주면 고맙고, 박재범이 무료 공연을 해주니 더 좋고, 협찬된 패션 브랜드를 입고 샴페인 잔을 든 셀럽들이 기사에 사진만 잘 나오면 성공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몸매라는 곡이 논란이 되고 바로 다음 날 사과문을 올린 박재범(빨리 사과하는 건 칭찬받을 만하다)과는 달리 W 코리아의 사과문은 4일이나 지난 19일에 올라왔다. 아마도 그들은 매년 아무렇지 않게 해왔던 그들의 행사가 이렇게 논란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지점이 사람들의 공분을 샀고, 어떻게 사과해야 뒤탈이 없을지를 4일이나 고민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4일 간의 시간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랑과 인생만 타이밍이 아니다. 사과도 타이밍이다.


유방 절제술을 한 가슴을 본 적이 있다. 온탕에서였는데 40대의 그녀는 손으로 가슴을 살짝 가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얼마나 용기를 내어 온탕에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한쪽 가슴에 유두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곧 그녀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에 참여한 셀럽들이 유방 절제술을 한 사람의 가슴을 한 번이라도 봤다면, 그렇게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할 수 있었을까? 비율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남자 역시 유방암에 걸릴 수 있다. 허나, 역지사지는 좀 더 확실한 걸로 들어야 공감이 가니까 낭심은 어떨까. 한쪽 낭심을 절제한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면, 그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포즈를 취할 수 있었을까? W코리아의 잘못된 기획과 진행도 문제지만, 참여한 셀럽들의 태도도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패션계는 힙함을 유지했다. 화려하고, 옷 잘 입고, 패셔너블하고. 유행이나 트렌드를 선도함에 있어 패션은 중요한 요소이다. 늘 그렇듯 논란 전의 몇몇 기사는 이 캠페인에 참여한 셀럽의 패션을 칭찬하기 바빴다. 드레스 코드는 증발했고, '상황과 사람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옷차림'이 없는 자리에 유방암 환자들은 어떤 존중감도 느끼지 못했다. 핑크리본 캠페인으로 유명한 에스티로더는 지금까지 1550억원 이상을 유방암 연구에 지원했다고 한다. W코리아는 20년 동안 11억원을 기부했다. 유방암 수술비가 평균 500만원 정도라고 했을 때 총 22명에게 지원할 수 있다. 20년 동안 22명을 지원한 금액이니 1년마다 1.1명이 수술비(만이다. 항암치료 제외)를 지원받은 셈이다.


W코리아는 다소 늦었지만 사과했다.(그래도 마지막 지푸라기는 잡았다) 앞으로의 캠페인에는 존중과 진심을 담아야 할 것이다. 참가했던 셀럽들 역시 어떤 생각으로 샴페인을 들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특정 대상이 있는 행사와 캠페인에서는 당연히 주최측이 의도와 목적을 설명하지만,(셀럽들 초청을 위해 W 코리아는 이 캠페인을 과연 어떻게 설명했을까?) 초청되었다고 그냥 참여하는 것도 힙하지 않다. 참가자들이 '유방암 인식 향상'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 유방암 환자들은 이 캠페인을 어떻게 생각할지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어땠을런지. 이번 캠페인의 참가자 명단을 보니 평소 좋아했던 배우도 있었다. 배우는 좋은 취지로 캠페인에 참여했고,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그 배우를 내 마음 속에서 떠나보낼 결심을.


* 핑크런 : 유방암 인식 향상과 예방을 위한 국내 최대 규모의 행사로, 참가비 전액이 유방암 환우 지원, 유방암 예방 교육으로 기부되는 뜻깊은 펀드레이징 이벤트 - 한국유방건강재단


* 핑크워싱 : 기업이 유방암 연구나 인식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 없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마케팅하기 위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핑크 리본 상징이나 상징색을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2002년, Breast Cancer Action이라는 단체에 의해 이 용어가 만들어졌다.


참고기사 : https://www.goodhousekeeping.com/life/money/a39027557/what-is-pinkwashing-breast-cancer/


글쓴이 : 이문연

옷경영 변화 연구소 쥔장

<스타일, 인문학을 입다>, <주말엔 옷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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