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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자 글쓰기] 204. 베토벤이 되었다.

by 이문연

오랜만에 미용실에 다녀왔다. 직모가 지겨워서 펌을 했는데 왜 머리는 늘 내 생각과 다르게 구현되는 걸까. 분명히 선생님이랑 이야기 나눈 이미지 속의 머리는 이 머리가 아니었는데. 내 얼굴이라 그렇다는 말을 들을까봐 내 얼굴 대신 다른 이의 얼굴도 넣어본다. 다르지 않다. 그래도 이 디자이너 선생님께 머리를 한지 3-4년은 된 것 같은데 이번 같은(마음에 안 든) 적은 처음이다. 하지만 난 지성인이니까 미용실에서 차마 '선생님이 봐도 이 머리가 예쁘다고 생각하시나요?'라던가, '이 머리가 시술 하기 전의 머리보다 더 나아 보이나요?'라던가, '선생님이라면 이 돈을 주고 제 머리를 하실 건가요?'라고 묻지 않았다. 그저 집에 가서 며칠 좀 보고 연락드린다고 했다.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는 '중세시대 백작'이 되었다고 말했다. 좀 더 디테일한 묘사를 하고 싶다. 모짜르트인 줄 알고 검색해봤는데 모짜르트는 귀 옆에 구르마 두 개를 붙여 놓은 헤어였고, 내가 생각한 사람은 베토벤이었다. (베토벤, 모짜르트 쏴리. 내가 이렇게 클래식에 무식합니다) 그렇게 베토벤이 된 머리를 부여잡고, 가르마를 이랬다 저랬다, 귀 뒤로 넘겨봤다 하다가 결국 묶었다. 원래 일주일에 7일은 묶고 다니긴 할 거지만, 그래도 베토벤이 된 내가 적응이 되지 않아 묶는 걸 원한 건 아니었다고!! (BGM - 베토벤의 운명) 슬프다. 진짜 오랜만에 기분 전환(산뜻한 내가 되고 싶어)하려 미용실에 방문했는데, 큰 돈 쓰고 베토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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