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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진 Sep 06. 2017

영화로 보는 성공하는 창업의 조건

맥도날드 성공기 <파운더> 리뷰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지만 영화의 스포가 약간 있습니다.



한 달 반 전, 책 출판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JFK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내 영화 목록을 훑어보다가 절친한 후배가 극찬하며 추천해준 <파운더>가 눈에 띄었다. 바로 영화를 틀었고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분명 기업의 성공기 같은 것을 보여주는 평범한 영화일 거라 생각하였는데 강렬한 누아르 영화를 보고 난듯한 여운을 주었고 감히 2016년 주토피아에 이어서 2017년 최고의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보통 성공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이 역경과 경쟁을 이겨내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성장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1차원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비록 나는 사업가는 아니지만 벤처 사업가이신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면서 지켜본 20년을 보면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가혹하다는 것을 느낀다. <파운더>는 마이클 키튼의 탁월한 연기로 이를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거기에 어떤 기업이 성공하는지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맹목적인 자본주의적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엇이 진정한 성공일까 하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던진다. 건조하게 이어지는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선과 악에 대해 논하게 되고 맥도날드를 더 이상 먹지 않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맥도날드를 지키려 했던 맥도날드 형제와 이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고  '창업자'라고 새기는 레이 크록에 대한 생각은 독자에게 맡기겠다.



맥도날드 형제의 샌버나디노 1호점, 그리고 레이 크록의 시카고 데스플레인 1호점



레이 크록과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쏟아낼 수도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파운더>에서 보여주는 성공하는 창업의 조건을 살펴보자.






1. 설립자의 세일즈 능력


<파운더>는 세일즈맨 레이 크록이 다중 쉐이크 믹서기를 방문 판매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수십 년간 다양한 물건을 팔아온 세일즈계의 베테랑이다. 화려한 말솜씨로 고객을 설득해보지만 쉽지 않은 것이 세일즈계의 일이다.



창업가에게 세일즈 능력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일즈는 단순히 물건을 팔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일즈의 가장 기본은 '설득'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짧은 시간 내에 정리하여 핵심을 말할 수 있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을 세일즈라고 지칭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무 능력만을 믿고 창업에 뛰어들었다가 이러한 세일즈 능력의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한다. 이 장면에서 레이 크록은 수많은 실패와 콜드 콜링으로 이미 세일즈 능력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세일즈 능력의 두 번째로 중요한 부분은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점이다. 수많은 설득을 시도하다 보면 당연히 거절당하는 일도 많아진다. 그러나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다른 방식을 모색해보게 된다. 당연히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레이 크록의 편집증 같은 신념이 담겨있는 레코드 내용이 이를 보여준다.



'세일즈'라는 과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고등 교육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상당히 많이 녹아들어 있다. 서로 토론을 하고 질문을 한 뒤에 설득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짧은 시간 내에 정리해서 발표를 하는 등의 교육을 한다. 창업가로 성장을 하고 싶다면 도메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부분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2. 기존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간파, 혁신


<파운더>를 본 많은 분들이 꼽는 최고의 명장면은 바로 패스트푸드 시스템을 개발하는 장면이다. 1940년대 미국에선 대개 차 안에서 대기를 하면 웨이트리스들이 직접 나와서 주문을 받는 시스템이었고, 짧게는 15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까지 기다려야 겨우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주문이 바쁠 때에는 메뉴가 바뀌거나 음식이 제대로 조리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 웨이트리스 수도 부족해서 놓치는 차도 많았고 순서도 지켜지지 않아서 불만이 폭주하던 상황이었다. 거기다 접시와 그릇도 반납해야 하니 식당 자체가 아수라장이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이를 철저히 분석해서 동선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최적화를 시킨다. 30분 걸리는 식사를 30초 만에 만들게 하기 위해 움직임 하나하나까지도 매뉴얼화시켰고, 이러한 시스템이 세계 최초의 패스트푸드 시스템으로 발전하게 된다. 맥도널드가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도 이렇게까지 혁신적인 발명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주 팔리는 메뉴와 함께 팔리는 음료들을 수치화해서 이러한 제품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리는 집중 전략도 사용하였는데, 마치 식당 김 사장이 데이터 과학자가 된 사연은 글과 같은 혁신적인 접근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판할 점도 많지만 레이 크록이 밀크 쉐이크의 냉동 비용이나 효율성을 고민하다가 가루로 바꾸는 것 또한 비효율성을 찾아내서 혁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몇 개의 점포를 운영할 때와 거대한 프랜차이즈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개선 사항들을 끊임없이 찾아서 유연하게 실행해야 한다. 특히나 맥도날드 형제는 기존의 성공한 전략을 고수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기업이 성장하는 단계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맥도날드 형제와 레이 크록이 결별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인 가루 밀크쉐이크




3. 기업을 관통하는 분명한 철학


맥도날드 형제는 최고의 햄버거를 빠른 시간에 제공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맥도날드를 시작하였다. 거기다가 분석을 통한 메뉴 간략화와 집중 전략도 유효했다. 그러나 이는 맥도날드 형제의 가게인 '샌 버나디노 맥도날드'의 철학이었다. 반면 거대 기업 '맥도날드 컴퍼니'는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레이 크록은 이 점에서 확고했다. 그는 맥도날드 컴퍼니의 철학으로 두 가지를 보여준다. 하나는 어디서나 같은 맛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이었다. 맥도날드라는 브랜드를 보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맛과 메뉴가 있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철학은 좀 더 강력하다. 레이 크록은 미국 어디서든 십자가를 보면 교회를 떠올리고 교회에서는 기도를 하러 사람들이 모이듯이, 아치 모양의 맥도날드 로고를 보면 식사를 떠올리고 가족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식계의 교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맥도날드'라는 너무도 미국스럽고 평범한 이름이 이를 가능케 해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M자 로고에 집착하고 건물 디자인 하나하나를 신경 쓰며 설계한 것도 이러한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아무리 설계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그는 노란색 M을 버리지 않았다. 그가 맥도날드 매장 조감도를 보면서 눈망울을 반짝이는 모습에서 그의 야망과 철학을 함께 볼 수 있다.



4. 아무리 분업화시켰어도 창업자가 신경 쓰지 않으면 무너진다



레이 크록은 굉장히 신중하게 자신과 함께할 동업자들을 찾는다. 직원들을 눈여겨보기도 하고 자신과 같은 세일즈맨 출신 중에서 절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찾기도 한다. 창업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오너가 아니다. 자신의 철학을 끝까지 고집하고 신경 쓸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창업자 자신밖에 없다.



영화에서도 점점 늘어나는 매장으로 승승장구하지만 점점 어떤 매장에서는 독자적인 메뉴를 개발하기도 하고, 시스템을 변형해서 자신들의 철학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기도 한다. 위생이 엉망으로 움직이는 가게도 있었고, 치킨이 잘 팔린다고 치킨을 추가한 가게도 있었다.


치킨을 마음대로 추가한 매장


결국 레이 크록은 자신의 철학을 교육시키는데 모든 힘을 쏟고 30가지에 불과한 맥도날드 형제의 매뉴얼을 약 10배 많은 조항을 넣어 어느 매장이나 같은 매뉴얼로 일하도록 하였다. 직원들도 좀 더 맥도날드 철학에 맞게 일하도록 햄버거 대학을 설립하였다. 거기에 수시로 직접 방문을 하여 체크를 하면서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경을 썼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창업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이다. 아무리 전문가를 뽑고 좋은 직원을 뽑았다 하더라도 결국 오너도 공부를 해야 하고 세세하게 신경을 써주어야만 기업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관리만 하면서 직원들이 저절로 일을 하고 사업이 돌아가기를 기대하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5. 결국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플랫폼 비즈니스다


플랫폼 비즈니스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전 글인 오버워치보다 포켓몬고가 더 무서운 이유에서 언급하였다. 맥도날드는 초창기 프랜차이즈 계약 방식을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는 점주의 수익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의 행태처럼 본사의 횡포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레이 크록은 맥도날드를 부동산 파이낸싱 회사로 바꾸면서 플랫폼 비즈니스로 눈을 돌렸다. 그는 전국의 도로와 영지를 직접 보러 다니면서 맥도날드가 들어서기 좋은 위치를 찾아서 매수하였다. 그리고 난 뒤에 누구든 프랜차이즈 계약을 하면 교육과 동시에 1% 정도의 수수료로 매장 임대를 해주었다. 다만 사업자는 20년 계약으로 임대를 해야 했다. 이렇게 하면 맥도날드 회사는 안정적으로 20년간 이자 부담을 줄이면서 임대 수익과 수수료를 얻었고 사업체는 안정적으로 영업에 매진하면 됐다. 여기에 맥도날드와 그 주변 상권이 크게 성장하면서 땅값이 오르고 이로 인해 자본 수익을 얻게 되는 굉장한 방식이었다. 물론 현대적인 IT 플랫폼 비즈니스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결국 컨텐츠보다 그 바탕에 투자를 하여서 수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그의 혜안이 보이는 부분이다.




6. 구두 계약은 절대 금지


신뢰의 나라 미국이라고 하지만 계약과 사업은 언제나 서류화를 시켜서 해야 한다. 맥도날드 형제는 결국 크록을 쉽게 믿는 바람에 헐값에 맥도날드를 넘겨주게 되었고, 미국은 맥도날드 제국이 되었다. 비슷한 장르의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류로 남아있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실제 레이 크록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쁘띠거니라는 영화 리뷰어는 영화 <파운더>가 거대한 블랙 코미디라고 하였다. 가장 가족적인 이름을 가진 기업은 가족을 파괴시켰고, 밀크셰이크에는 우유가 없으며, 맥도날드에는 맥도날드 형제가 없다면서, "창업자가 아님에도 명함에 'Founder'를 새긴 레이 크록은 아메리칸드림의 어두운 그림자 그 자체"라고 평하였다.


불편한 부분도 많고 도덕적인 문제점도 많았지만 레이 크록이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미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업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 너무나 당연하고 평범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실제 사례와 현실적인 묘사로 보는 것은 차원이 다르게 와 닿을 것이다. 재밌게도 이 글에서 성공한 창업에 대해 다루지만 이 영화를 보면 '과연 이렇게까지 성공을 해야하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콜럼버스는 미국을 발견했고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을 건국했고 레이 크록은 미국을 맥도널드화했다. -에스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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