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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n Aug 12. 2019

빙구방구

_ 네게 1등을 주고 싶어.

교탁 바로 앞. 1열.

빙구는 항상 그 자리다.

내 수업 시간 빙구는 늘 그 교실의  그 자리.


어디 그 뿐인가.

기실 남학생들에게 필기 도구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글자라는 어려운 것을 쓰게 한다는 건 몹시 버겁고도 답답한 일이다. 별별 맵고 쓴 약을 귀로 와장창 흘려보내준 후에야 겨우 쓰는 시늉을 하면, ‘기특하다.’는 찬사를 무한으로 줘야할 만큼 국어 수업은 힘들고 때론 우스운 시간이니 말이다.


그런 학생들 사이 군계일학이 바로 빙구방구.

수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얼마나 열심히 선생님의 판서를 제 책에 필기하고, 선생님의 설명을 귀담아 듣는지...자못 긴장이 될 정도.

- 네!네!네!!

대답도 잘해 시간마다 선생님의 흥을 돋우는 귀한 놈이 되어버렸다. 기대가 된다.

거기다 인성은 또 얼마나 짱인지 교과부장도 아닌 것이 잔심부름을 다해내고, 시키지도 않은 일까지 덤덤히 도와줘 감동을 선사한다.


중간고사가 끝이 나고, 여지없이 우리의 기대주...빙구방구의 점수부터 확인한다.

- ?

- ?

105점?이 아닌, 10.5점.

이성과 감성의 아노미 상태에서 헤어나오는데 상당의 시간이 필요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성적보다는 인성이 먼저니까요.

하지만 내 마음 속의 빙구는 인성도 100점, 성적도 100점이었는데...

‘실망’이라는 흔하고 속된 표현으로 내 감정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안타까울 뿐.

.


너는 어째서 졸지도 않고 그토록 열심히,

늘 그 자리에 앉아 필기를 했더란 말이냐.

.

그렇게 중간고사가 폭풍처럼(여러 의미로) 지났다.

.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

스승의 날 출근한 내 책상의 빨간 편지는 그 답을 알려주었다.

.

‘선생님, 저는 공부를 너무 못해서 선생님 수업 내용이 거의 이해가 안돼요. 그래서 좀 힘들지만 그래도 선생님 수업을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빨간 편지지 한 장을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하게 채우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

눈물이 찔끔 난다.

하아..가슴이 아린다.

.

그래, 어쨌든 쌤은 빙구에게 100점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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