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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우 Apr 01. 2020

상하이 클라쓰

내가 오늘 투표를 하지 못한 황당한 이유

올해로 중국 생활 15년 차... 정치가 내 삶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나에게 이번 21대 총선은 세 번째 재외선거였다. 작년 11월 즈음해서 교민지에 실린 재외선거 신청 광고를 보았고 당일 신청 완료 후 SNS에 인증 사진까지 올릴 만큼 난 이번 선거에 특별한 기대감이 있었다. 수개월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엄청난 정치 이슈들이 넘쳐났고 난 올바른 선택을 위해 날마다 인터넷 뉴스 등을 찾아보며 나의 소중한 한 표를 어떻게 행사할지에 대한 거룩한 고민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늘부터 재외선거 일정이 시작되어 무려 두 시간을 달려 대한민국 상하이 총영사관을 찾았다. 본인 확인 및 체온검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투표소로 입장했다. 안내직원 분께 여권을 드리고 내가 속한 지역구의 투표용지를 인쇄받기 위해 잠시 대기하고 있는데 내 이름이 신청 명단에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스러워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는데 선관위 직원 분이 오셔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셨다. 확실히 접수한 게 맞냐? 이메일을 받았냐? 자초 지경을 설명하다 다행히 신청 당일 SNS에 인증사진을 올렸던 일이 떠올라 캡처했던 사진을 찾아 보여드리니 내가 신청한 것은 재외선거인 신청이고 오늘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부재자신고를 했어야 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받았다. 그럼 재외선거인 신청과 부재자 신고가 어떻게 다르냐 물었더니 재외선거인은 국내에서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해명인가? 교민지에 대문짝 만하게 실린 재외선거 홍보 광고에는 이와 관련된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세계 속의 한국인 나는 대한민국 유권자입니다. 투표하려면 신고, 신청을 해야 합니다. 2020.2.15까지” 이 문구를 보고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조차 없는 재외선거 신청과 부재자 신고의 개념을 일반 국민들이 구분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고 선관위 직원분께 되물었다. 선관위 직원분은 광고 나간 내용은 확실히 혼선을 준 게 맞고 이 기간 등록한 교민들에 대해서는 별도로 전화 또는 메일을 통해 신청 내용을 반려시키고 재등록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한다. 난 이와 같은 내용으로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니 그럼 메일을 보냈을 거라고 한다. 다른 직원 한분이 얼른 내 메일 주소를 적어서 확인하러 달려간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대한민국의 공무원 마인드인가? 마땅히 행사해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국민의 문제 해결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인가 보다. 5분 후 돌아온 그 직원은 나에게 메일을 발송한 시간까지 노트에 적어와 보고를 한다. 메일함을 아무리 뒤져봐도 스팸메일함까지 열어봤지만 어디에서도 그들이 보냈다는 메일을 찾을 수 없었다. 요즘 같은 시대 누가 날마다 메일을 확인한단 말인가? 내가 메일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전화라도 한 번 해줘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더 이상 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애써 화를 가라앉히고 앞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로 국민의 소중한 권리 행사가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오늘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느꼈던 것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드렸고 이러한 시스템 상의 허점이 시정될 수 있도록 반드시 조치를 취해 주신다는 답변 또한 받았다. 비록 오늘 난 역사를 만들지 못했지만 나의 이 작은 외침이 세상을 바꾸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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