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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외계인 Jun 14. 2022

프렌치 프레스와 시어머니

1.

커피를 마실 때 생각나는 사람들을 주제로 일주일에 거의 한 편씩 연재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오래 걸렸다. 우리 집 부엌 찬장에 애물단지처럼 자리 잡은 프렌치 프레스에 대해 한번 써봐야지 했더니 도무지 적당한 사람이 생각이 안 나는 거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갑작스레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서 무거운 몸으로 다섯 살 아이와 함께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남편의 출장 기간 동안 안부 겸 위로차 방문하신 시부모님과 세 번의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 집 찬장의 프렌치 프레스 생각이 났다. 바로 우리 시어머니 말이다.


2.

핸드드립에서 브루잉 머신으로 넘어가기 전 아이키아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프렌치 프레스는 사실 한 두 번 써보고 실패한 이력이 있다. 커피 원두를 갈아 넣고 뜨거운 물을 부은 뒤 몇 분 두었다가 아주 천천히 눌러 커피를 내려봐도 뭐가 잘못된 건지 커피가루가 서걱서걱 씹히는 게 꼭 흙탕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몇 번의 쓴 실패 후, 프렌치 프레스는 손이 잘 닫지 않는 부엌 찬장 가장 안쪽 신세가 되어 어쩌다 손님이 오면 겨우 차를 우리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아마도 이건 우리 집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다른 집에서 손님 대접을 받을 때도 프렌치 프레스에 티백을 두세 개 넣고 빠르게 우려내는 것은 봤어도 정작 커피를 내려주는 경우는 거의 못 봤으니까.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놀랍게도 프렌치 프레스는 스타벅스가 가장 추천하는 추출 방식이라고 한다. 프렌치 프레스는 저온 저압에서 천천히 추출되어 커피 원두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고, 바리스타의 실력을 타지 않으며, 커피 추출이 쉽고 빠르다. 또한 기기가 작고 가볍고 저렴하고, 캡슐이나 종이필터 같은 일회용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다만 추출 방식의 특성상 몇 가지를 유의하면 좋은데 커피 원두를 굵게 갈고 (나는 가늘게 갈아서 흙탕물이 되었다), 오래 내리지 않으며 (나는 정성껏 오래도 내렸다), 마지막 한 두 모금은 남기는 것이다. (나는 바닥에 가라앉은 원두 찌꺼기까지 원샷을 하였다) 프렌치 프레스를 잘만 사용하면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가 말한 '인류에게 알려진 최상의 커피'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집 찬장에서 원망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3.

이제 시어머니 이야기를 해볼까. 우리 시어머니는 1980년대 초 해외지사로 발령받은 남편을 따라 캐나다에 왔다가 이민까지 오게 된, 해외 거주만 30년 만렙을 찍은 분이다.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오랜 해외 생활 탓에 버터 발음을 하시려나 살짝 긴장하기도 했었지만 유창하게 구사하시는 진한 전라도 사투리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었다. 전라도 출신답게 요리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고 손도 무척 크시다. 시부모님 댁에 처음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나는 다른 손님 여러 명이 더 오는가 싶을 정도로 푸짐한 상차림에 또 한 번 당황했다. 모든 요리는 대접에 수북이 담는 것이 기본이고 종류도 육해공군이 한꺼번에 출동한다. 대식가 남편에 연년생 아들만 둘을 키워서 그런 것도 같다. 숫자에도 상당히 밝으신 편인데 한인 마트에서 과일 한 박스에 $23.99인지 $24.99인지 젊은 나보다 항상 더 잘 꾀고 계신다. 똑같은 $24.99도 어디 마트는 10개 들었고 어디 마트는 12개 들었는지까지 다 아신다.


사실 해외 생활이라는 게 한국에서 흔히들 상상하는 것만큼 그리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특히 말(영어)이 안되고 운전이 안되면 한인 사회나 집안에서 고립 아닌 고립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야 어디 나가고 싶으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그만이지만 캐나다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운전을 못하면 늘 누군가에게 라이드를 부탁해야 하고 나가도 말이 안 되면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부부가 함께 이민을 와서 한쪽이 경제 활동을 도맡아 하게 되면 당사자는 좋든 싫든 어떻게든 현지 사회와 부딪히며 배우는 스킬들이 늘어나게 마련인데 시간이 흐르면 반대쪽과 점점 격차가 벌어진다. 처음엔 둘 다 몰랐던 것을 점점 안 하니까 못하다가 나중엔 못 해서 못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거기다 우리 시아버지처럼 본인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야 하고 아내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걱정하고 보호하는 남편을 둔 경우라면 결국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인 듯하다. 결론적으로 우리 시어머니는 마트도, 은행도, 병원도, 교회도 혼자 못 가신다. 예전처럼 주택에서 살고 싶어 하시지만 쓰레기를 직접 버려본 적도 없고 잔디를 깎아본 적도 없어서 시아버지가 반대하시니 어쩔 수가 없다. 한 번은 나에게 '너그 아버지는 나한테 잔디 한~ 번을 못 깎게 한다'라고 푸념인 듯 자랑인 듯 말씀하셔서 나는 '애처가라서 그러시지요' 하였지만 정말 애처가라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4.

그렇다고 우리 시어머니가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남편이 어렸을 때 시어머니가 가족들을 다 태우고 운전 연습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꽤 큰 사고가 나서 온 가족의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로 시아버지는 운전 연수를 해 주는 대신 앞장서서 라이드를 해 주기로 하셨고, 그 순간 기억이 생생하다는 우리 남편은 아직도 '우리 엄마는 운전하면 안 돼'라고 말한다. (이제는 나이 제한에 걸려서 운전을 배울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보는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쉽게 과소평가될 사람이 아니다. 영어는 시아버지보다 잘 못하셔도 듣는 귀가 약해지신 아버지보다 소리도 훨씬 잘 듣고 어쩔 땐 우리가 못 알아듣는 영어도 눈치코치 백 단으로 알아들으신다. 머리 좋은 사람이 요리도 잘한다고 특이한 올리브 피클이나 (김치도 여러 종류가 있듯 올리브도 종류가 수십 가지다) 캐비어 같은 생소한 재료도 잘 사용하시고, 서양 요리도 텔레비전 요리 프로에서 본 것을 따라서 만드셨다는데 수준급이다. 또 요즘은 유튜브에서 경제 관련 채널을 즐겨 보시는지 투자 시장이나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해서도 줄줄 꾀고 계신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도 아니다. 예전에는 영주권자를 대상으로 한 무료 영어 교실도 열심히 참여하셔서 영어로 발표도 하고 인도, 스리랑카, 중국 등 다른 나라 젊은 친구들도 사귀셨단다. 점심시간에는 만두나 김밥 같은 어머니의 한국 도시락이 인기가 좋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마저도 시민권을 딴 후에는 자격이 안 되어 갈 수가 없다고 아쉬워하셨다. 내가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시어머니는 지나가는 말로 영어도 처음 왔을 때 남들 배울 때 배워야지 오래 산다고 느는 게 아니더라, 오래 살았는데도 영어가 안 되니까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서 더 안 하게 된다고 덕담인 듯 하소연인 듯 말씀하셨던 게 내 영어공부에 큰 동력이 됐다.


5.

생각해보면 남편을 따라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나도 시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시아버지 성격을 똑 닮은 우리 남편도 남한테 일을 잘 못 맡기고 사사건건 본인이 다 직접 해야 하는 성격이다.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나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나 전구를 가는 일, 청소기 돌리는 일이나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일을 스스로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남들은 그런 남편을 애처가라고, 자상하다고, 많이 도와준다고 말했고 나 또한 이런 사소하고 귀찮은 일들을 해 본 적 없는 나의 무능함이 자랑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 10년 차 이민 생활에, 육아에, 사는 게 바쁘고 팍팍해지다 보니 본인도 자기가 다 하려니까 힘에 부치나 보더라. 가끔은 왜 너는 이런 것도 못하냐는 원망의 눈초리가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 그러면 나는 그저 해보지 않았으니까, 못 하게 했으니까,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라고 응수한다.


이번에 남편이 집을 비운   동안 임산부라서 더더욱  하던 자질구레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도맡아 하다 보니 묘한 성취감이 차올랐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나도   있었는데, 아니 내가  잘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새로운 능력의 발견과 함께 자유 독립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서툴러서,  몰라서, 자신이 없어서 계속  하다 보면 결국   있는 것만 하게 된다. 실패할  있는 기회, 실패해도 계속 시도할  있는 기회, 그러면서 스스로 느끼고 배울  있는 기회는 누군가에 의해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이제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최대 능력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안전하게 길들여지고  테니까. 그건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우리집 부엌 찬장의 프렌치 프레스처럼 말이다.


다음에 시부모님이 오시면 프렌치 프레스로 차 말고 꼭 커피를 대접할 생각이다. 그깟 흙탕물 커피 좀 한두번 마신다한들 뭐가 그리 두려운가. 언젠가 우리는 어쩌면 하워드 슐츠가 말한 '인류에게 알려진 최상의 커피'를 다함께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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