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지옥철의 감상
결혼하고 집을 분당으로 옮기고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하면 고민의 여지없이 '출퇴근 통근'을 말할 수 있다. 결혼 전 혼자 살 때는 잠실에서 봉은사역까지만 가면 됐기 때문에 다른 직장인들의 통근 시간과는 무관하게 여유 있는 출퇴근을 하곤 했다. 사회 초년생 때 1시간가량 지하철 출퇴근을 해본 이력이 있기 때문에 사실 분당으로 이사 오고 나서도 그냥 할만하겠다 싶은 마음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신분당선의 혼잡도는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열차가 왔는데도 한 번에 타지 못하고 2번, 심하면 3번을 그냥 보내고 타야 하는 경험은 생전 처음이었다.
1. 부정 - 설마 항상 이렇진 않을 거야. 오늘 이 시간이 유난히 붐비는 거겠지.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2. 분노 - 아니 주 4~5일을 그냥 이렇게 출퇴근을 해야 한다고? 그냥 하루에 2~3시간을 지하철에 서서? 그것도 이 직장을 다니는 내내?
3. 타협 - 아니야 나만 이렇게 사는 것도 아니고, 이 칸만 해도 나보다 훨씬 연차도 높아 보이는 사람들도 다 이렇게 출퇴근하고 있는 걸. 나만 짜증나는거 아냐.
4. 우울 - 그냥 재택근무 안 시켜주는 회사 다니고, 회사 근처 집에서 살 여력이 없는 내 잘못이지 누구를 탓하겠어.
5. 수용 - 내일 출퇴근할 땐 이 웹툰/유튜브/이북(E-book)을 보면 시간이 잘 가겠지?
물론 진짜 로스-죽음이론이 이런 단순한 상태는 아니겠지만.. 코로나가 끝나고 세계 각지의 기업들이 다시 오피스 근무를 선포하면서 직원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걸 보면 재택근무의 편안함과 출퇴근 시간의 공허함을 깨달아버린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이미 자리가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빠르게 환승하려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 칸으로 꾸물꾸물 이동하는 사람들. 뒤에 뻔히 공간이 있는데 딱 버티고 서 있는 사람들. 아침부터 짜증이 몰려오게 하는 상황만 가득한 지하철이지만, 다들 새로운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는 나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나는 이번 주도 이 지하철을 탈주하지 않고 버텨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