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만 Apr 25. 2020

10 of 185, 육아의 불안감, 차에서 즐기는 여유

2020/03/23, 10 of 185

육아를 하는 시간이 어느새 일주일이 되었고, 어느 정도는 패턴이 손에 익기 시작한다. 일에 비해 육아가 우월하다거나 떨어진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맞겠지만, 역시나 사회에서 무언가를 이루어 갈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는 ‘일’을 하는 것과, 아이들을 키운다는 과거부터 그저 당연하게 집에서 이루어져 온 일을 하는,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성장에 따라 그 역할이 작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육아’의 차이는, 아무래도 뭔가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불안감과 아쉬움, 조급함을 안겨주는 것 같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침에 일어나 날 보고 웃고는 침대로 다시 뛰어들어가며 ‘숨어야지!’ 하는 첫째의 웃는 얼굴, 꼬물거리는 집게와 엄지 손가락으로 심혈을 기울여 쌀 튀밥을 하나 주워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크기로 입을 벌려 조심스레 넣다가 날 보고 온 얼굴을 다 화사하게 바꾸며 활짝 웃는 둘째의 표정 등, 절대로 일을 하면서는 얻지 못할 색깔과 크기의 행복을 가슴 벅차게 느끼는 순간들 또한 선사해 준다. 하긴 사회에서의 성공이라는 것도, 제한된 수만 가능한 것이니 결국 나중에는 역할이 작아지는 것이나 마찬가지겠구나. 게다가 아주 높은 확률로 나는 거기에 탈만한 사람은 아니고 말이다. 결정하고 하기로 한 일, 지금은 아이들이 내 고객이고 심지어 그들은 사실 평생 고객이다. 최선을 다하자.


하지만 우리 첫째… 잠을 너무나도 싫어하고 요즘 들어 정말 얄미운 말과 표정을 잘하기 시작한 우리 첫째. 참 예쁘지만 참 힘들다. 첫째는 열 시 넘어 자고 여덟 시에 일어나고, 둘째는 여덟 시에서 아홉 시 반 사이에 자고 여섯 시면 일어나니, 우리 부부가 육아에 써야 하는 시간은 도대체 얼마나 긴 것인가. 너무너무 힘들다. ’ 아빠가 로보 옷~ 카봇! 해!’ 하는 말과 자동차가 되어 바닥을 기어 내게 오며 ‘오늘은 무슨 일이니?’ 하는 말을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이 들어서 시작만 해도 토할 것 같은데, 지치지도 않고 재밌어하고 같은 답이라도 계속해 주길 바라는 걸 보면 역시나, ‘언제 또 아들이 나를 진심으로 원하고 좋아해 주는 이런 시간이 내게 찾아오겠나, 어린 시절이 지나가면 아예 사라질 것, 열심히 함께 어울리자’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만, 참 힘들다. 똑같은 반응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해 주는 게 너무나 힘들다. 다른 거라도 좀 하지…… 아니면 나에게 물어서 진행하지 말고 자기가 답하는 것으로 주도해 줬으면… ㅜㅠㅠㅠㅠㅠ


콜레스테롤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 와이프가 재택근무로, 오전에 출근했다 와서 아이들을 보기로 했다. 이런 날은 아무래도 긴장이 풀리고, 대신해 줄 거란 기대에 나태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어젯밤에 먹은 순대볶음이 (연애 시절 와이프가 사는 동네인데도 어찌어찌 딱 한 번만 가 봤던 신림동 백순대를 주문 해 먹었는데 아우 그 어마어마한 양이란!) 너무 많이 먹어서였는지 영 좋지 않았던 건지, 일기를 쓴 후에 맥/아이패드용 사진 편집 프로그램 어떤 게 좋을지 찾아보며 한 시가 넘은 늦은 시간까지 시간을 보낸 후 잤는데도 통 소화가 안되어 잠을 설친지라, 컨디션도 아주 별로였다. 병원 갈 생각에 두려웠던걸까. 검사는 금방 끝났고, 동맥경화가 좀 더 진행되어 큰 혈관에도 좀 생겼다고 했다. 예전에는 차트? 에 나오는 그림에 안 나오는 곳에만 있었는데 더 올라왔다고. 에잉... 하지만 콜레스테롤이 너무 높아 몇 년째 강한 약을 먹고 있고 동맥경화도 이미 3년 전에 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임에도 유혹을 견뎌내지 못하고 스벅에서 크로크 무슈를 먹으며 행복해하다, 예상했던 와이프의 도움 요청에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왔다.


저녁이 되어 와이프와 첫째와 나가 공원에서 한참 뛰어놀고 들어와, 얼마 남지 않은 나의 휴식 시간을 그래도 어떻게든 써야겠는데 어쩌는 게 좋을까 생각하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갔다. 차가 있으니까 이런 게 가능하구나. 커피 한 잔 가격을 다 내고 한 시간만 카페에 앉았다 오기는 아깝달까 좀 부담이었는데, 이렇게 활용이 되네. 게다가 지금은 무려 22,000 키로가 넘도록 바꾸지 않은 에어컨 필터를 바꿔야 하는 일도 있으니, 일석이조. 잘못 배달된 필터를 가지러 오전에 갔던 맞은편 동 큰 평수는, 복도식도 아니고 현관 앞 공간도 넓고 방향도 공원을 바라보는 남동향, 정말 최고의 조건이다. 미래에 얼마가 오를 것 같고 하는 돈 문제를 다 떠나서 위치와 상징적인 의미 같은걸 생각한다면 (+ 높은 관리비 감수), 나는 와이프 출퇴근 편하고 바로 앞에 공원이 있는 이 곳 저 자리에 딱 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9 of 185, 일요일인데 출근 걱정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