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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만 Apr 06. 2020

4 of 185, 183+2일의 휴직, 그 2+2일째.

2020/03/17, 4 of 185

183+2일의 휴직, 그 2+2일째. 4 of 185


딱 하루 지나고, 예상대로 둘째 날이 엄청나게 힘든 날이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애 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머리로만, 말로만 알(고있다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겪으면서야 비로소 느끼고 있는 것이겠다만, 애초에 어린아이를 좋아하지 않던 나라는 사람으로선 정말이지 ‘세상에나 이렇게 힘들 줄이야…’ 하는 생각만 들뿐.


정신없이 여기서 저기서 울고 소리 지르고 보채고 따라와 다리와 가랑이 사이까지 (안돼!) 붙잡고 늘어지며 온갖 난리를 하는 아들들. 이것저것 닥쳐오는 일들을 쳐내는데만 급급해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면서 지내고 있자니, 아이를 낮잠 재우겠다며 쉬~ 쉬~ 소리를 내며 옆에 누워있는 내 모습에서 문득, 수많은 부모들이 하고 있는 이 ‘쉬~ 쉬~’ 소리 내기가 과연 일종의 화이트 노이즈로 애를 재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기에 그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 키우면서 겪는 씻는 시간의 부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입냄새가 아직 약한 아이의 정신을 잃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뭐 그렇다고 해도, ‘원래 계획했던 건 이렇게 힘든 게 아니었어’ 하고 핑계를 대 본들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럼 이 상황은 예상치 못했던 거니까 잘 못하고 부족해도 괜찮다는 건가? 그것도 남도 아니고 적당히 거리가 있는 친척도 아니고 당장 1촌인 아빠가? 아빠가 애를 못본다면 말이 안되지. 핑계 댈 게 아니다.


진짜 대박 사건은 저녁에 찾아왔다. 하루 종일 수시로 (= TV가 틀어져있지 않은 시간 중 대략 1회/30분 의 빈도로) 엄마 보고 싶다며 난리 하고 우는 첫째를 달래지 못하고 한숨 쉬고 힘들어하던 게 몇 번, 결국 나가서 와이프 회사 로비에 가 놀았는데, 짐 챙기러 간 와이프가 늦어지면서 또 문제가 됐다. 20개월 아이에게 엄마를 ‘기다려야 한다’고 해도 이해가 될 리가 있나. 1분에 한 번 씩 소리를 지르고 울어대는 통에 결국 들쳐 메고 집까지 왔는데, 아마도 계단 아래에 서서 뭔가를 하고 있느라 우리가 올라갈 때부터 나갈 때까지 쭉 봤던, 날아간 첫째 신발 주워준 한 여자분 말고는 다들 내가 애 납치 해 가는 줄 알았을 거다. 얼마나 울고 난리를 치는지. 집에 와서는 거실에서 숨 넘어가듯 울며 손을 하늘로 뻗어가며 내 엄마 내 엄마 엄마 보고 싶어 하고 울어대는데, 문득 무서웠다. 내가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내 기준대로 강하게 아이를 대해서 오히려 관계를 망치고 아이에게도 정서적인 문제를 가져오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래서야 되겠나… 결국 와이프가 온 후에야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화나는 동시에 비참한 기분으로 카페에 간다고 나오는 길에 코트 주머니에 들어있던 약과와 젤리가 손에 잡힌 후에야, 이런 거라도 줘 가며 달래면서 기다릴걸, 잡기 놀이라도 하고 있을걸 (하루 종일 크고 작은 일로 나와 대립했어서 요건 어차피 불가능했겠지만), 애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엄마를 보고 싶을 뿐인데, 내가 생각을 잘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회사에는 아예 가지 않았어야 했는데, 등등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늦게 머리를 채웠다. 내가 너무 준비가 부족하다. 돌아보면 육아에 대한 생각은 그저 ‘해야지! 하면 되지!’ 외에 무엇도 진지하게, 자세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마치 남의 애들을 두세 시간 맡아주듯이 그저, ‘애들 다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뭐’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너무 안일했다. 회사 일 보다 스트레스 발생기의 절대적인 수는 적지만, 그 영향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쪽이 훨~~~ 씬 더 높으신 분들이니 더 잘해야만 하고 그분들의 미래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절~~~ 대 실수하면 안 되는 일이다. 더 고민하고 더 좋은 아빠가 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힘내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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