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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Mar 02. 2022

01 혼자 삽니다, 서른이구요.

매주 수요일 연재



집을 나왔다.


누가 독립했다는 걸 그렇게 표현하냐고 묻겠지만 사실이다.

말 그대로 집을 나왔다.


내 나이 방년 31세, 만으로는 서른(일부러 한글로 써본다), 설도 지나고 생일도 지나서 빼도 박도 못하게 꽉 찬 계란 한 판이 되자마자 본가에서 분리되어 본격적인 1인 가구가 되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서른 살 독립이라면 아주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아니라지만 하여간 정말, 그렇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독립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당시 나는 1년 가까이 집(본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의 원룸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작은 공간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800권에 달하는 책과 책장, 책상과 의자뿐이었지만 그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집(본가)에서 출퇴근하긴 했지만 마감이 코앞까지 닥치거나 일이 몰릴 때, 혹은 단순히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이유로 며칠 간 그곳에서 생활할 때도 있었고, 하여간 당분간은 이 정도로 괜찮지 않을까, 라고 여겼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그저 ‘독립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결코 싸지않은) 월세도 내고 있었고, 공과금도 내고 전입신고도 하고 확정일자도 받았었지만 작업실을 오고 갔던 그 기간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온전한 독립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아무리 작업실에서 있는 시간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을 월등히 앞지르더라도 거기는 나의 일터일 뿐이니까. 아무리 회사가 편해도 집이라고 부르지는 않잖아. 어쨌거나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을 먹고, 부모님이 빨아주신 옷을 입고, 부모님의 집에 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그곳에 계시니까.  


그러던 내가 어떻게 3주(중간에 설 연휴가 끼어서 체감 시간은 2주 정도)만에 집에서 나와 지금 이 집에 오게 되었는지 썰(?)을 풀게 된다면 정말 “한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라는 말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이 되려면 어떻게든 된다.”도.



*



딱 작년 이 맘 때 즈음, 나는 원룸 작업실 맨바닥에 누워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시간은 아침 7시, 아침 해 뜨는 시간이 빨라져 밖은 이미 훤했고 나는 그날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톡을 남겼다.


‘미안한데 나 오늘 못 만날 것 같아. 진짜 미안.’


그러고 폰을 내려놓고 또 울었다. 짐 정리를 한다는 핑계로 작업실에서 자겠다고 말한 것이 다행이었다. 안 그러면 부모님에게 이 꼴을 보여야 했을 테니. 그건 죽기보다 싫었다. 부모님이 내 아픔으로 인해 속상해 하시는 게 싫었다.


하여간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여기서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니 가볍게만 집고 넘어가자면, 모 처와의 ‘여성의 날’ 협업 프로젝트로 그린 만화가 SNS상에서 바이럴을 탄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프로젝트가 공개 되던 당일까지만 해도 별 다른 반응이 없었는데 이틀째를 기점으로 내 만화가 조금씩 리트윗(공유)이 되기 시작했고, 협업처에서 그것을 스폰서 광고로 돌리면서 일이 터졌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 한 내용이지만, 내가 어떤 활동을 하건 의도적으로 안티페미니즘이라 곡해하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이밀었다. 만화의 내용에 오해가 있을 것을 대비해 미리 주석을 달아두었지만 비난하겠다고 마음 먹은 사람들에게 그런 것이 보일 리가. 아니, 보아도 못 본 척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만화와 전혀 상관없는, 오롯이 나를 모욕하기 위해서 쓴 글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니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타깝게도 당시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 맨바닥 위를 북북 긁으며 기어 다니다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한 가지 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J님 정말 죄송한데, 아무래도 마감을 늦춰야 할 것 같아요.’


J님(지금은 J언니라고 부른다)은 당시 진행하고 있던 또 다른 모처와의 협업 프로젝트의 담당자 분이었다.


문자를 보내고 다시 폰을 내려놨다. 폰을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나서 천장을 쳐다봤는데, 이번에는 천장 끄트머리의 옅은 체리몰딩 색이 오그라들었다. 당연히 시공간이 일그러진 건 아닐 테니 내 눈물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감사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라지만 이 정도의 멸시를 당할만한 잘못을 했나? 지긋지긋했다. 매번 지치지도 않고 저 난리를 피우는 게. 나 하나 못 살게 구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여성인권 운동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은 주특기-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는 것으로 나를 괴롭혔다. 하지도 않은 말과 행동을 뒤집어 씌우고 해명을 요구했다. 원작자인 나도 깜짝 놀랄 확대해석으로 논란을 만들었고, 대응하면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다. 왜곡된 이해는 자극적인 단어로만 남아 팩트처럼 굳어졌다. 그러다 간신히 하나가 가면 또 하나가 또 와서 앞에 애가 했던 말을 또 하는 것의 반복, 지난 4년동안 지긋지긋하게 겪은 일이었다.

그나마 한동안 작품 활동을 쉬니까 잠잠했었는데 수면 위로 올라오자마자 다시 이런 일이라니. 정말이지 무슨 바퀴벌레 같았다. 의견을 쓰는 사람도 그것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그저 시커먼 바퀴벌레. 영화 <설국열차> 속 단백질 바를 만드는 바퀴벌레 그라인더에 온 몸을 처박힌 기분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거라고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호흡하기 위해 입을 벌리면 입안으로 바퀴벌레 수십 수천 마리가 밀려 들어올 것만 같았다.


누워서 올려다본 천장은 새하얬지만 시야는 새카맸다. 집 근처 일대를 샅샅이 뒤져 개중에 가장 (창작능률을 올려준다는) 천장이 높은 집을 골랐는데, 어느새 천장이 명치를 압박 할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안되겠어 나, 숨을 못 쉬겠어.



그게 바로 그 원룸 작업실 입주 첫날의 일이었다.



*



그렇게 그날 하루가 지나고, 다음 협업 프로젝트 담당자였던 J님과 통화를 하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공교롭게도 그 프로젝트의 주제도 ‘여성’이라 J님은 나의 상황을 이해해주셨고, 공개일까지 기한이 좀 남은 상태라 다시 한번 스케줄을 조정하기로 했다. 나의 이런 기분과 상황이 다른 건 몰라도 일에서만큼은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는데, 그런 자신이 한심해서 전화를 끊고 또 한참을 울었다.


하여간 그렇게 우중충한 봄의 초입에 시작했던 원고는 여름과 가을을 지나 겨울이 다가올 때 즈음에야 간신히 끝마칠 수 있었다. 간신히 전체 원고를 입고하던 날 프로젝트 담당자였던 J님은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다른 작가님과의 점심식사를 제안하셨고, 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점심식사 자리에 나갈 수 있었다. 프로젝트 제안부터 원고 입고, 코로나를 이유로 단 한번의 실제 만남 없이 줌(화상통화)으로만 미팅을 진행한지 1년 반만의 일이었다.


-


실제로 만난 J님은 줌 미팅으로 본 것보다도 더 상냥한 인상이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한 H작가님을 포함해 우리는 한남동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가까운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당 프로젝트에는 다른 외국인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동안 줌미팅은 쭉 영어로만 진행되었는데, 한국어로 대화하니 어쩐지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많이 동안(!)인 부드러운 인상의 J님은 의외로 털털했고, 그 간극이 쿨한 매력을 자아내 한 천방지축하는 나와 H작가님의 성격과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그는 외국에서 오래 거주하고, 공부하고, 일한 경험이 있는 수재였는데, 비슷한 경험을 한 나는 J님과 말이 굉장히 잘 통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J님의 폭탄선언(?)을 듣고 만다.


“저 돌아가요.”


한국으로 오기 전까지 있던 나라로 돌아간다는 J님의 말에 나와 H작가님은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쉬웠다.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좋았을텐데! 마침 H작가님도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날 예정이라 문자 그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 못내 섭섭했다. 그날 우리는 그 자리에서 두 시간을 더 떠들었고, 날짜를 정해 J님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예상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사는 집이 바로 J님이 살던 집이다.


-


사실 J언니(이때부터 언니다)의 집에 초대가 되었을 때만해도 이곳의 월세가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따스한 공기…보다는 적절하게 나눠진 넓은 공간들, 깔끔하게 리모델링 된 내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언니 집 너무 좋다! 그치?


“솔직히 이 집 다른 사람한테 보내기 너무 아쉬워.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싫고, 별로 안 친한 직장동료들한테 보내기는 더 아깝고…”


언니는 브로콜리 크림 스프가 담긴 냄비를 나무주걱으로 휘저으면서 탄식했다. 할 수만 있다면 에어비앤비로 돌리고 싶다니까, 그러다 나 한국 들어오면 가끔 여기서 지내고… 아, 창문 좀 열어줄래.


언니의 말대로 창을 여니 지대가 높아 멀리 반짝이는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였다.

그때 잠깐 생각했다. 아, 여기 살면 참 좋겠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말하지만, 지금 있는 작업실의 두배에 가까운 월세는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직 작업실 계약이 1년 이상 남아있기도 했고, 무엇보다 모아놓은 돈도 거의 다 떨어져 진지하게 새로운 일을 알아보던 때였으니까.



그러고 두 달 즈음 뒤, 새해가 밝았고 H작가님과 나는 다시 한번 J언니의 집에서 모이게 되었다. 언니가 구운 비건 케이크를 먹으며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다 언니가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만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사이 나의 신작 웹툰 연재가 확정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곧 고정수입이 들어온다는 뜻이었고, 그 금액은 월세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만한 금액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부모님에게 통보식 상의를 하고 다음 날 한번 더 집에 들러 집을 살펴본 후 언니에게 말했다.



“제가 계약할게요. 이 집.”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우니 써보는

여러분은 나처럼 살지 마 Tip 01.


재테크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하나같이 “월세 살지 마라”는 말을 많이 한다. 정말이지 뜨끔한 말이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하고, 특히 버는 돈이 고만고만한 사회 초년생에게는 너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직장을 다니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나는 대출은커녕 신용카드 발급도 어려운 프리랜서라고! 종합소득세를 (일을 거의 하지 않았던 작년과 재작년을 제외하고) 거의 매년 백만 단위로 토해냈지만 이 나라에서 나는 무직자다! 하하하!


하여간 내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청년전용 버팀목 자금 대출’뿐인데, 대출 가능액이 7000만원뿐이고 이 금액에 내가 그 동안 모은 돈 전부를 합쳐도 집 근처 원룸 한 칸을 구하기 힘들었다. (본가가 있는 지역이 갑자기 주변 지역에 비해 시세가 더 많이 오른 지역인 것도 한 몫 했다.) 애초에 전세 대란으로 인해 전세 매물 구하기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는 시기였고,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그 이상 대출을 받으면 은행에 이자를 갚나 월세를 내나 그 돈이 그 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아마 앞으로도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첫째, 취직을 하거나 둘째, 안정적인 직업(aka 직장인)을 가진 배우자를 맞이하거나 셋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김하나, 황선우 작가님 같은 동거인(하우스메이트) 파트너쉽을 맺는 방법뿐일텐데, 그 3개 중 어느 것도 당장 실행할 수는 없을 것 같으니… 나는 월세를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 내가 좀만 더 독했다면(?) 취직을 해서 투잡을 했겠지만 위에도 언급했듯이 타다 남은 인센스 스틱 같이 바스라진 멘탈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물론 지금이라면 또 다를지도?)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프리랜서더라도 우선 좋든 싫든 적당한 회사에 먼저 취직해서 2년 정도 일할 것을 권한다. 아르바이트도 물론 나쁘지 않지만, 어차피 풀타임으로 일하는 것은 같고 요즘은 월급도 거기서 거기라 기왕이면 경력이 한 줄이라도 남는 정규직이 낫다. 엄청 좋은 회사일 필요도 없다. (물론 능력이 된다면 당연히 좋은 회사에 가야겠지만!) 중소기업을 들어 가야 한다! 그런 뒤에! ‘중소기업 취업 청년 전월세보증금 대출’을 받아야한다!


실제로 최근 웹툰 스튜디오들이 늘어나면서 예비~기성 작가들이 스튜디오 형식의 회사 등에 취직해 선화, 채색 작가등으로 일하며 안정적으로 돈을 모으고, 본인 작품을 준비하는 동시에 중소기업 청년 보증금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똑똑한 알짜배기 작가님들이다!! 나도 이걸 좀 더 일찍 알았다면 가좆… 같은 회사에서 내쫓기듯 때려 치우기 전에 중소기업 청년 대출을 알아 봤을텐데… 하여튼, 젊은이 여러분, 나랏돈을 열심히 타먹읍시다!


*찾아보니 프리랜서도 신청 할 수 있는 카카오뱅크 ‘청년전세자금 대출’ 상품도 있다. 자세한 얘기는 더 잘 설명해주는 유튜버님들을 참고하세요*



참고로 나의 월세 보증금은 쌩 내 돈이다.

회사 월급, 회사 다니면서 부은 적금, <썅년의 미학>의 연재고료, 인세, 판권료는 지독하기 짝이 없는 번아웃을 겪은 지난 2년간 야금야금 다 까먹고 딱 보증금만 남았다. 정말이지 이번에 새 작품을 계약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집에 이사 오는 것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작, 곧 나옵니다.

왓챠에서 만나요<3



*


글은 매주 수요일 브런치,

만화는 매주 월요일 인스타그램에서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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