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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Mar 16. 2022

03 보시기에 좋더라, 내가.

매주 수요일 연재


부동산에 능통하신 우리 외할머니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다.


좋은 집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 눈에 좋은 집은 남의 눈에도 좋다.
그러니까 보고, 마음에 든다면
즉시 계약금을 걸어라.


하지만 할머니, 그게 전월세 계약에도 적용되는 말일까요?



-



내가 지금의 집을 구하게 된 경로(?)에 대해 이야기 하면 모두가 입 모아서 이렇게 말한다.


너 진짜 운 좋았네.



그렇다. 나는 운이 좋았다.

물론 청약 당첨 같은 내 집 마련의 운은 아니지만, 친구인 J언니가 살던 곳이었기 때문에 부동산보다 빨리 매물을 알았고, 부동산 대란인 와중에 월세 인상 없이 친구가 살던 가격 그대로 들어왔다. 보증금도 딱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이었고.


형부가 인테리어쪽 일을 하셔서 집을 같이 봐주신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팔랑 귀에 칠칠맞은 나는 친언니와 형부를 대동해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함께 집 구석구석을 둘러본 뒤 형부에게 OK사인을 받은 뒤 계약을 결정했다. (나는 이 날 확신 했다. 인생을 살면서 꼭 친구로 삼아야 하는 3가지 직종은 1. 인테리어 디자이너2. 치과의사 3. 변호사라고. 작가는 절대로 친구로 삼지 마라!! 그들은 당신의 이야기로 작품을 쓰는 버러지들이다! 바로 나!)


이후 계약을 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J언니는 집에 부족한 부분- 예를 들어 과거에 물이 세서 벽지에 자국이 생긴 것(수리 완료), 보일러 온수가 빨리 나오게 하는 방법 등-을 상세히 설명 해줬고, 가계약금을 걸던 날에는 본인의 계약서와 등기부등본까지 꺼내와 나에게 확인을 시켜줬다. 나는 언니가 보여준 계약서상 집주인의 이름과 통장번호가 부동산중개인이 보내준 것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뒤 집주인에게 가계약금을 보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계약을 하고, 작업실을 빼고 이사를 들어오는 과정이 모두 합해 3주도 체 안 걸렸다. 분명 중간에서 뭐 하나만 까딱 잘못하면 몽땅 어그러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만큼 모든 상황이 빠르게 맞아 떨어진 것은, 정말이지 천운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물론 이 집이라고 완벽하지는 않다.  

교통편도 살짝 불편하고 주변 편의시설도 별로 없다. 결정적으로, 집 근처에 헬스장이 없다!


하지만 이 집은, 내가 원하던 대부분의 조건과 맞아 떨어졌다.



내가 2년 전 페이스북에 남겼던 다짐의 글


이것들은 내가 꽤나 오랜 기간 꿈꿔오던 조건들이었다.



계약하기 직전, 월세 살지 말라던 어느 재테크 유튜버가 덧붙인 말이 생각났다. 그 집에 거주하는 목적이 뭐냐고. 그 집에 살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냐, 아니면 더 좋은 집으로 가기 위한 총알을 모으는 것이냐?


나에게 있어 집의 조건은 작업공간과 거주공간의 합치였다. 매일 출근하는 형식의 작업실은 내게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무리 작업실에 있어도 본가에 사는 한 나는 여전히 부모님의 루틴에 나를 맞춰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그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더 온전하고 안전한 독립-자가 또는 전세-을 위한 시드머니를 모을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맞다. 근데 나이 서른쯤 되어보니, 나는 주변 상황이나 사람들에게 마음을 굉장히 많이 쓰는 사람이더라고. 거기에 쓰는 에너지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해서 생업을 못할 정도라서. 욜로(YOLO)는 아니지만 기분에 영향을 많이 받고, 아무리 약을 먹고 심리 상담을 받아도 바뀔 수 없는 기질이라는 게 있다는 걸, 이 나이쯤에는 이만 인정 해야하더라.


어차피 작업실 월세는 남들 사는만큼 나가고 있는데 여기서 좀 더 나간다고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오히려 이 집에서는 더 좋은 글을 쓰고, 더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고, 더 많은 작품을 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계약을 했고, 남들이었다면 분명 침실로 썼을 큰 방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작업실로 꾸몄다. 월세도 생활비도 부모님과 살면서 작업실을 다닐 때보다 배가 늘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결국 이것도 다 작품을 위한 투자라고. 정신승리면 어떤가. 결국 성공하고 승리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아웃풋-작품-을 내고 있다. 전이었으면 엄두도 못 냈을 주간 연재 스케줄을 소화하며 다른 프로젝트를 몇 개나 벌이고 있다. 부모님의 가사노동에 기대지 않고도 매일매일 배달음식이 아닌 갓 지은 밥을 스스로 차려먹는다. 설거지도 청소도 미루지 않고 바로 바로. 2~3일에 한번씩 빨래를 돌리고, 매주 토요일은 수건을 단독 세탁하는 날이다. 여전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은 못 고쳤지만 나름대로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한다. 그야말로 월세를 뽕을 뽑겠다는 마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고 있다.


그리고, 난 이제 정말 혼자 사니까! <나 혼자 산다>에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처음 이 집에 발을 내딛었을 때 든 생각도 이거였다!


! 이제 관찰예능 나갈  있어!
여기서는 촬영   있어!



물론 자가나 전세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분명 나는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전의 내가 페이스북에 남겼던 글처럼, 내가 원한다면, 구체적으로 꿈꾸고 말한다면 반드시 이룰  있는 꿈이라고. 순진해빠졌다고, 인생을 실전이라고- 야매 <시크릿>이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결국 모든  이룬 자의 몫일테니까.





-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우니 써보는

여러분은 나처럼 살지 마 Tip.


다시 외할머니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전월세 계약에도 “계약금을 빨리 걸어라”는 말이 통할까? 하고 묻는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다.


SNS에 어느 법무사 분은 함부로 (가)계약금을 걸지 말라고 하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중간에 누구 하나만 나쁜 마음을 먹었어도, 작정하고 속였으면 꼼짝없이 당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글에도 썼듯이, 분명 긴 시간은 아니지만 꽤나 꼼꼼하게 따지고 살폈다. 법적문제나 안전문제는물론이고 그 집이 내가 세운 조건에 맞는지, 집의 사용 목적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를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 작업실 복비를 물어주고 나와야할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당장 수십만원을 넘어 앞으로 몇백 몇천이 깨지더라도 살만한 집인지 말이다. 결정은 빨랐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작업실을 구하며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한 덕도 컸다. 덕분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계약 할 수 있었다.


결국, 선택은 본인 몫이지만 자신의 비전이 명확하다면 우리 외할머니의 말씀이 맞다고 본다.


실제로 작업실을 내놨을때 그 곳을 보러 온 사람이 하루에만 4-5명이었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데 사흘 뒤에 다시 보러 오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으나 그 곳에 살게 된 건 그날 저녁 가장 마지막에 보러와서 30분 뒤에 계약서를 쓴 사람이었다. 지금 내가 사는 집도 그 주 토요일에 집을 보러오겠다고 했는데 내가 수요일에 가계약금을 걸어버리는 바람에 보러오지도 못했다.


물론 한 두푼이 아니니 신중 또 신중해야하지만, 자신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고 딱 한발만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금방 답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친구, 가족, 점쟁이 찬스라도 쓰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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