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만에 등교하는 기분이란.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영어학원에 갔다. 몇 년 만에 학교 같은 걸 가보는지 완전 설렘.
맨날 회사 출근 지각하다가 빨리 등교하려니 매우 힘들었다.
에어비앤비 집에서 한 5분 달리듯 걸으면 Northern 역이 나오고, 검은색 라인을 타고 Tottenham Court 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런던의 아침 출근길은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다들 일상의 반복이 지겹다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지 뭐.
나는 한국에서도 이 시간에 일어나 가본 적이 없는데, 학교에 가는 기분은 참 어색했다.
살짝 땀이 나게 달려간 덕에 늦지 않게 갔다. 땀냄새가 나면 동양인 냄새가 날까 봐 꽤 걱정이 되었고, 왜 향수 안 뿌렸지 하며 자책했다. (그것 때문에 오후에는 향수 샵을 3군데나 갔음 ㅎㅎ)
두꺼운 안경알과 빨간색 테두리의 안경을 낀 원장은 자신의 학원에 엄청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꽤 실망이었다. 시설도 그다지 좋진 않고 학생이 없어서 좋은 건가 싶긴 하지만, 그냥 잘 안 되는 학원처럼 느껴졌다. 그 길이 학원가였는데, 다른 학교들은 엄청 많은 학생들이 바글댔다. 비싼 학비에 비해서 좋은 걸까 싶었다. (나중엔 좋다고 생각했다 ㅋㅋ)
학원은 두 건물이 붙어 있고 좁고 긴 계단이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구조였다. 간단하게 테스트를 하고 새로 온 친구들과 라운지에 앉아서 아는 체를 했다. 오늘 처음 나온 친구들은 엄청 이쁜 스위스 18살짜리 여자애랑 19살, 26살 태국 여자애, 38살 이탈리아 아줌마, 50살 러시아 아저씨였다. 나에게 나이를 물어봐서 비밀이라고 했지만, 계속 꼬치꼬치 물어봐서 말해줬다. 태국 여자애가 영어를 못해서 계속 못 알아먹는데, 나의 예전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측은했다.
난 이탈리아 아줌마와 어린 태국 친구와 함께 반이 되었다. intermediate 정도 되는 듯했다. 리차드라는 차갑게 생기고, 영국 티비쇼에 나올 것 같이 생긴 선생님이 수업을 진행했다. 어떤 독특하게 생긴 러시아 여자는 오프숄더 옷을 입고 - 뭔가 영화 속에서 좀비나 현생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의 표정으로 뚱하게 앉아 - 계속 핸드폰을 붙잡고 딴짓을 하다가 선생님이 계속 혼을 내고 폰도 뺐었다. 세상 어딜 가도 문제아는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사람이 많으면 딴짓을 해도 안 걸릴 텐데 고작 7명이다 보니 아주 모두 앞에서 혼이 났다.
학원이 1시 반까지 수업인 줄 알았더니 9시에서 12시 반까지였고, 이리저리 계산해보니 하루에 10만 원짜리 수업이었다. 대박. 이번 주에 수업 빼먹고 베를린에 가려했는데 수업 돈이 아까워서 안 가기로 했다.
수업이 끝나고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을까 했는데 다들 휙휙 가버려서, 그리고 반에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도 딱히 없었다. 태국 여자애는 친구를 이미 만들었는지 금발 여자애랑 휙 가버렸다. 그래서 홀본역 근처가 코벤트 가든이다 보니 느적느적 걸어서 코벤트 가든을 휘휘 구경했다. 재미있는 공연도 보고, 향수 가게도 3군데나 가고, 인스타그램에서 사고 싶던 시계를 파는 샵도 발견했다. (실제로 차보니 딱히 맘에 들지 않음)
버스를 타고 집에 와보니 청소가 싹 되어있어 기분이 좋았고, 가방을 뒤져보니 돈도 가만히 있어서 다행이었다. 집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면서 딴짓을 하다가 쇼디치에 일하기 좋은 카페를 찾아서 갔다. 가는 길에 이것저것 보는데 왜 이리 멋이찌… 샵들이 진짜 눈 돌아가게 이뻤다.
Electric Cinema가 함께 있는 barber&prober 는 카페 안에 이발소가 있고 인테리어도 맘에 들었다. 컴퓨터 배터리가 다되어가서 35번 버스를 타고 천천히 집에 돌아왔다.
하루 종일 에어비앤비 숙박비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뭔가 계산이 틀려 내가 많이 내게 되었는데, 팸에게 물어보니 본인이 더 싸게 준 줄 알았다고 그래서 얼버무려졌다. 어떻게 돈을 돌려받을까 하다가 그냥 좋은 집이고 여자애도 맘에 드니 그 값했다 치자고 생각하기로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