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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Feb 09. 2022

센싱 올드 에이지: 나이 듦을 감각하기

노인 돌봄 정책과 서비스, 나이 듦에 대한 의료인류학 연구

코펜하겐 대학 인류학과의 두 교수가 진행하는 <Sensing Old Age>라는 프로젝트에 작년부터 예술 연구원(아티스틱 리서처 Artistis Researcher)으로 아주 느슨하게 참여하고 있다.


한국과 덴마크의 노인 돌봄 정책과 서비스에 관해서 비교 연구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1. 한국에 소개되는 덴마크의 '복지천국' 이미지,

2. 한국 정부와 정치인들이 덴마크의 복지정책/노인 돌봄 정책/의료시스템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

3. 한국의 노인 돌봄 서비스와 관련 기술에 관한 기사와 논문들에 대해 자료를 찾아 공유하였다.


나는 이전에 해왔던 아티스틱 리서치 방법을 좀 더 심도 있게 하기 위해 그들의 인류학 필드워크 Fieldwork 연구 방법론을 경험하고 배우고 싶었다. 지난해 8월 동안 그들의 인터뷰와 참여 관찰 방법론 지도를 받고, 지난해 9-11월 사이에는 진주에 있는 한 노인 주야간 돌봄 센터에서 인터뷰와 참여 관찰 Participation Observation을 하였다.


노년을 상상/계획/준비하기의 (불) 가능성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놀란 것은 이제까지 (그리고 지금도) 나의 나이 듦, 노년의 삶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노인 돌봄이 이미 정부의 정책을 통해 모양이 잡혀 가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개개인들은 우리의 노년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노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돌봄 센터에서 만난 어르신들께 질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현세대들을 지금 세대와의 차이가 있다. 평생을 자기 자신만의 시간과 관심사를 찾기보다 노동을 해오셨던 분들이고, 여가와 취미에 대한 경험이 없으신 경우도 많았다. 어르신들은 이 노인 돌봄 센터에 오지 않는 노후였다면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욕구나 바람이 정확히 없으셨다. 또 노인 돌봄 센터 안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것과 요구도 스스로 알지 못하셨다.


그리고 나의 노년을 상상해 봤을 때, 경제적인 신체적인 나의 노년의 상태에 대해 확신할 수 없기에 더더욱 노년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착각이 아닐까? 장기적인 미래에 대해서 인간이 생각하고 상상하고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하여튼 이 프로젝트와 함께 최근 나의 부모님과 친인척들이 노년을 맞이하시면서 생겨난 변화와 겪은 가족 내 문제들을 최근에 감지하게 되었고 이 주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더욱 인지하게 되었다.


노인 돌봄과 정동: 사회 내에서 돌봄을 주는 것과 받는 것의 경계 허물기


이 인류학과 교수들을 처음 만났을 때, 이 프로젝트의 예술 연구원으로 참여해서 공연 작업을 만들어 보지 않겠냐고 제안받았을 때, 이것을 퍼포먼스 무용 작업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었다. 그런데 지난 몇 개월간, 특히 필드워크를 통해서 노인 돌봄을 둘러싼 이슈와 실제 행위들을 관찰하면서 아주 느슨하게라도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는 노인 (뿐만 아니라), 아이와 장애인들을 위한 돌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돌봄'이라는 개념 자체에 관심이 생긴 것이 동기가 되었다. 최근에 스피노자의 '정동'강의를 들으며 우리 모두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여)에게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면 관계적이라는 것, 또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받으면서 스스로의 모습을 형성하고 또 해체하며 변화해가고 있다는 것에 동감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 '정동'의 개념을 사회적 '돌봄'에 적용했을 때, 돌봄을 주는 이와 돌봄을 받는 이의 역할이 불분명해지는 경계/차이화들은 실제 필드 워크에서도 관찰을 하면서 느꼈고, 특히 '돌봄을 받는 이'로 지정되는 이, 예를 들어 노인의 자율권을 위해서는 돌봄을 주는 이와 받는 이의 역할과 위치가 더 유동적으로 섞여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정해진) 역할/관계항의 차이화와 존재들 사이의 영향의 주고받음은 몸을 사용하는 움직임에서 굉장히 활발히 일어나기에 어떤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그림이 어렴풋이 그려지기도 했다.


노인 돌봄 내 국가성: 한국이란 국가가 만드는 한국 노인이 되는 것


나의 필드워크 과정을 덴마크인 인류학자에게 공유하면서, 내가 특별하다고 여기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눈여겨보게 되었다. 한국의 노인 돌봄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노인들을 위한 활동들이 굉장히 한국적, 혹은 한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덴마크의 노인 돌봄 센터와 비교했을 때 더 두드러졌다. 한국의 돌봄 서비스는 한 그룹의 노인들이 한 가지 활동 (치매 예방 인지 교육 활동 등)에 다 같이 참여하는 것이 다수였는데, 덴마크의 경우는 그러한 단체 활동이 없다고 했다. 덴마크가 워낙 개인주의가 발달한 사회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 부분은 한국 공교육의 습관이 노년으로까지 연장된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동시에 하나의 활동을 따라야 하고, 다름(다른 취향, 다른 능력과 수준)에 대해 다른 것을 취할 선택권을 열어 둘 여지가 없는 것은, (그 공교육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한국의 근대성 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사회복지사들이 각 노인들의 가족사와 관계에 깊이 관여하며 챙기는 것은 효 관념, 혹은 친밀하고 공동체주의적인 비 근대의 성격이 공존하는 것 같았다.


또 한국의 노인돌봄현장은 (앞서 말한 공교육의 연장선상에서) 교육적인 프로그램들 (치매 예방 인지 교육 활동 등)을 만드느라 바빠 보였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노년이 되었을 때 해야 할 활동들을 지금 시스템이 만드는 것과도 같다. 다르게 말해서, 우리의 노년, 노년의 몸, 노년의 정체성, 노년의 활동들을 지금 정부가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게 대해야 할까?


어느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돌봄 정책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내가 그 정책에 혜택을 받는 상황이 아니고, 어떤 다른 대상을 위한 정책인 것처럼 보여도, 우리 모두가 얽혀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한 그 정책은 나와, 내 가족과, 내가 살고 있는 환경과 관계된 정책이다. 모두의 더 적극적으로 관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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