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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Jan 18. 2023

쌀,의식,정령: 말레이 모계사회, 농업과 여성

말레이 모계사회, 농업의 근현대화와 여성의 지위 변화

나는 말레이시아의 네그리 셈빌란이라는 지역을 석사 논문의 케이스로 연구하였다.

갑자기 뜬금없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말레이시아의 지방이라니?


설명하자면, 영국을 포함한 유럽이 이슬람의 종교법 즉 샤리아를 자기 내 현대법 외부의 또 다른 법으로 공존함에 골치를 앓고 여러 법적 다툼이 소개될 때였다. 이슬람법으로 인해 여성들이 이혼을 하기가 어렵고, 이혼 시에도 커뮤니티에서 소외되거나 평등한 재산권을 부여받지 못하는 예들이 생기면서, 대개의 경우 이슬람법을 자기 내 유럽 사회의 이슬람 여성들을 억압하는 폭력적인 법이라고 비판했다. 나는 이 비판이 일반화되는 데 문제가 있고, 역사적으로 넓게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정황을 살피기 위해 첫 번째로는 현대 세속 사회의 이슬람법이 되기 전, 식민주의 시대 전후 시기에 이슬람법이 적용된 케이스들을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그 적용되는 방식이 달랐다.

서양 근현대법이 소개되기 전,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우 이슬람법이 훨씬 더 각 사례의 맥락과 당사자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되었다. 어쩌면 지금 현대의 언어로는 피해자 중심 혹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이해하는 감수성이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두 번째로는 이슬람법이라고 하더라도 세계에 퍼진 이슬람교의 성격이 지역별로 다르게 때문에, 유럽이 말하는 이슬람 여성의 차별이라는 충돌이 생기지 않는 예외의 지역을 찾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네그리셈빌란이었다.


네그리셈빌란 지역은 모계 관습법과 이슬람 종교법이 공존해 왔다. 다시 말해서 이슬람 이전의 모계의 풍습과 이슬람이 전파된 이후 (다소) 가부장적인 신앙이 섞여 들어갔다. Syncretism, Integration통합의 예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사실 그 어떤 단어로 정확하게 이들의 열린 대칭적 의식을 설명해 줄 수 없을 것 같지만)

네그리 셈빌란 지역과 (식민지 시대 때 네덜란드 학자들을 매료시킨) 인도네시아는 권력 체계에 있어 독특하다. 지금의 포스트 휴먼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권력의 수직성과 수평성이 잘 조화된 곳이다. 왕을 중심으로 중앙 집권되어 있지만, 각 지방으로 힘이 분권 되어 있기도 했다. 또 지방 안의 작은 단위로 들어가서 한 마을에 있어서는 여성에게 사회적 경제적 힘과 지위가 집중되어 있었다.

바로 그 모계 전통의 생활방식과 사고 및 모계 관습법 때문이었다.



모계관습의 중요한 예로는 이곳은 재산과 양육의 권한에 있어 여성이 우선시 된다. 여성이 한 가족에게 내려오는 집과 집터의 가족 땅에 계속 머물며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키워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에게 재산 상속 및 분배, 아이 양육의 권리가 유리하게 주어진다. 남편과 아내가 이혼을 했을 때, 아내에게 재산과 아이에 대한 권한이 우선시 된다. 아내가 사별했을 시, 남편보다 아내의 가족들 혹은 자매에게 재산과 아이에 대한 양육권이 주어진다.

축약하자면, 이러한 모계 관습과 이슬람 종교법이 혼종 된 상태가 식민지 시대와 그 후 근현대를 거쳐서 (서양식) 현대 법 안으로 어떻게 편입이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떻게 유지 혹은 변화되었는지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나의 석사 논문의 내용이었다.

논문의 결론은  모계 관습과 이슬람 종교법이 부분적으로 축소되긴 했지만 근현대법 안으로 들어왔고 다른 지역의 무슬림들과 다르게 여성들에게 재산 배분이 평등하게 적용되었다가 골자였다.

허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논문을 마치고 나서 다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논문은 종교와 법이라는 골계 안에 갇혀있었고, 실제 그곳에서 일어난 복잡다단한 매일의 상황들을 미처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했다면 그 논문은 종교학 석사로는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이 글조차도 종교 인류학 생태학 농업학 등등 여러 분과의 정보들이 다 혼재되어 있다.

갓난아기를 옆에 재우고 수천 페이지의 책들을 붙잡고 논문을 쓰던 나는 네그리 셈빌란으로 필드워크를 갈 수 없었다. 마음만은 그러했지만….

하지만 그곳 모계사회의 모습을 읽을 때면 그것이 남성과 여성의 생리적 원리와 너무나 잘 어울림에, 타국에서 갓난아기를 홀로 키우던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던 것 같다. 어쩌면 모계사회를 사례로 선택하게 된 것은 그 시기의 나의 무의식 혹은 직관이 강렬하게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현대로 오게 되면서 생긴 문제는 여성의 권리가 우선시되었던 땅 소유권이 오직 전통 쌀 농경을 하는 땅에만 해당했다는 것이다.

근현대의 법정 사례를 살펴보면서, 가족 땅이 쌀농사에서 고무농사를 포함한 상업농경으로 바뀜에 따라 여성이 재산을 받지 못한 케이스를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법의 적용이 미심쩍게 축소된 경향이 있구나 하고만 지나갔었다. 논문을 마치고 나서야  미심쩍은 부분을 찾아  파고들읽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경우 식민지 시대를 기점으로 많은 생계 중심의 농지들이 상업 농지로 전환되었다. 근현대화와 산업화, 기계화로 인해 쌀농사에서 상업 농경으로 급격히 전환되어 갔고 그로 인해 관습, 전통법, 전통의식이 모두 타격을 받았다. 모계 전통으로 유명한 네그리 셈빌란 지역을 떠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전 지역에서 그러한 케이스들이 보였다.

동남아시아에서 여성이 쌀의 여신 드위 스리처럼 신성시되고, 다음 해에 심을 쌀 씨앗을 고르는 신성한 역할은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지역들도 있었다. 쌀농사에서 여성 또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에, 그에 따른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있었다. 그런데 상업화와 기계화로 인해서 그 모든 자리를 잃어간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시아 여성인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서양을 제외한 세계의 경우 대개 가부장적 사회였고, 여성의 권리가 낮았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불평등한 전통 사회의 상태를 페미니스트 운동 등으로 계몽한 것이 서양이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서구식 근현대화가 전통 사회의 여성의 가진 지위를 축소하고 불평등을 가속화한 결과를 낳다니.



이러한 농업의 변화와 여성의 지위 변화는 동남아시아의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세계전쟁 직후 농촌이 해체되며 산업화되던 시기의 한국과 기계화를 정부와 유럽연합에서 주도했던 덴마크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났다. (이는 리코일 퍼포먼스 그룹의 '호스트(수확)' 공연작업에서 리서치 인턴쉽을 하며 살피고, 글을 쓴 바 있다.)

자연의 소리를 들고 반응을 관찰하며 몸으로 일했던 노동 환경의 소리, 감수성, 밀도.

그리고 거대한 농경기계들이 들어왔을 때 그 노동의 성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성적 혹은 식물적이었던 노동이 굉음을 내는 거인 기계와 연합한 노동이 되면서, 그 노동의 성격이 점차 남성적이 되었다고 상상할 수 있다.



 부분을 석사 논문에서  적나라하게 연구하지 못했던 것이 계속 마음에 남아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케이스를 보다 보르네오까지 넘어갔었다. 그리고 내게 원주민의 코스몰로지를 돌아보는데 큰 영향을 끼친 다약 부족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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