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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May 09. 2023

기후위기 시대 선조적전통 4

한국 신령들이 말하고 싶은 것


한국에서는 점점 무속 의식이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복을 위한 의식으로 기울어졌다. *(홍태한, 풀림과 맺힘의 서울 무속) 이는 근현대화 이후 공동체가 해체된, 개인이 자수성가하여 권력과 경제력을 성취해야 하는 사회의 현실상을 반영한다. *(Kendall, 2009, Spirits of Capitalism).


한국 전통이 지닌 자연과의 조화  균형의 철학을 전통 건축과 같은 분야에서는 이야기되어 왔지만, 무속과 자연, 기후 위기 담론 속에서 무속이 주는 메시지로 연결시키는 것은  한국의 상황을 고려했을  생경하다. 따라서 자연과 인간의 연결성을 회복에 대해 말했던 북미인디언 샤먼의 말을 이어 만신님께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궁금해졌다.


먼저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서려있는 얼과 한을 언급하시며 한국의 지역적 맥락을 말해주셨다.

인디언 샤먼이 '식민주의의 방법'이라는 말로 미국  인디언들이 미국  식민주의를 겪은 상황을 연상하게 한 것과 평행하게 만신님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그려주셨다.


"식민지 시대와 냉전시대의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표면적으로는 매끈한 첨단 기술 자본주의 사회에 살지만) 그 안에는 그 시간을 지내오며 얼과 한이라는 것이 서려있는 한국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단합하는 것이 강하고 우리네 것을 지킨다는 것이 강하다. 그 시간을 직접적으로 보내지 않은 젊은 사람들도 (마치 공유된 사회적 무의식 마냥) 한국의 것을 보면 느끼는 어떤 슬픔, 애환의 감정이 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한국 사회가 변하고 전통이라는 것이 변하고 있다. 잊어버리고 있는 것들이 있다. 샤먼으로써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전통에 대해 고민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샤먼들은 신을 느끼기 위해 산과 바다에 가서 기도를 드리러 간다. 그런데 이제는 그곳도 많이 변해서 신을 느끼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자연은  자리에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변하게 하고 있다. 자연 훼손과 파괴는 코로나라는 재앙을 우리에게 가져왔고  다른 재앙이 오게  수도 있다.


우리가 사람이 멈추어야 한다. 자연이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사람들을 신에게 너무 원하기만 한다. 우리가 신에게 무언가를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신에게 무엇을 원하고 받고 싶다면 인간도 그들에게 뭔가 해줘야 한다.

내가 신에게, 자연에게 무엇을 했는지 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산과 바다에 가서 신을 느끼는 것은 샤먼이 아니라도 자연에 가서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얻는 많은 이들이 동감할 것이다. 나에게는 만신님의  말씀이 한국 무속의 신령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켄달은 한국의 서열과 권력 지향적인 사회적 성격이 한국의 신령들, 예를 들어 장군, 대감 등에 반영되어 있다고 분석한  있다. (Kendall, 2009) 하지만 우리 모두가 산과 바다에 가서 신성을 느끼거나 샤먼이 산과 바다에서 신을 만나는 행위는, 무속의 신들이 대감 혹은 장군과 같은 권력을 지닌 인간 신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본디 자연의 요소와 자연의 힘에서부터  존재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만신님의 말씀을 들으며 우리의 신령들에게 입혀진 가부장적 성격과 근대의 권력지향성을 탈식민화하여 그들의 자연의 힘으로 돌려보내리는 상상을 하였다.


또 '인간들이 지금 멈춰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현 환경주의자들이나 말하는 비성장 degrowth, 재야생화 rewilding의 담론들과 연결되었다. 끝없는 경제적 성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 리버럴 liberals에게, 또 경제지표가 모든 결정의 척도가 되는 세계 대부분 국가와 기업의 권력자들에게 '지금 이 기후위기의 상황에서 인간의 힘을 거둬라. 멈춰라. 차라리 쉬어라. 쉬면서 아픈 곳을 회복하고 재생하자. 재야생화 하자'라고 말한다.


원주민들의 우주관에서는 사람과 자연이 서로 주고받는 호혜 reciprocity의 법칙, 사이클이 존재한다. 자연이 우리에게 베푸는 열매와 먹이 등의 풍요로운 수확을 준 만큼 사람들이 다시 자연에게 되돌려주는 것을 생각하는 호혜성은 원주민들이 사는 생태계 및 공동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왔다. 한국의 무속이 한국의 소비지향성을 반영하듯 계속 상품과 권력을 소비하며 신들에게 인간의 뜻만 바랬다면, 우리는 그 반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의 신령들은 무엇이 필요로 할까? 한국의 자연은 무엇을 필요로 할까?



이 라운드 테이블의 대화가 우리가 적극적으로 기후 위기를 의식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을 때 인디언 샤먼이 마지막 말을 더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는 지금 현재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고 미래의 7세대를 앞 서 생각해야 한다.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려해야 한다.

할머니 독수리와 할아버지 곰. 그들도 지금 이 순간 이곳의 대화에 포함되어 있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한국 산의 산신각마다 모셔져 있는 할머니신과 할아버지신들, 그들 옆의 호랑이를 떠올렸다. )


세계의 샤먼들을 사진으로 담은 Flore-aël SURUN의 작품 중 박성미 만신님.

이후 오후 4시에는 현 기후위기와 인간에 대해 샤먼들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진행 필름 인터뷰가 있었다. 인터뷰어는 만신님께 준비된 질문을 했다. 샤먼으로서 지금의 기후 위기와 인간들을 어떻게 보는지,

신령들은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어떤 희망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라운드 테이블에서의 대화가 인터뷰에서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 신들이 봤을 때 인간은 너무나 작은 존재다. 그렇기에 신들은 인간에게 혹은 인간이 하는 행위에 미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는 샤먼으로서 내가 느끼는 것은... 인간이 너무나 하찮다. 인간이 자연에 영향력을 끼치고 파괴하는 것이 곧 스스로가 있을 수 있는 자리를 헤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찮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 불 땅 공기 등 자연의 요소들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홍수 산불 지진 대기 온난화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셨다.

"자연신령들은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할 뿐이다. 인간이 노력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자연과의 연결성이 끊어진 인간의 행위를 계속하였을 때 물, 불, 땅, 공기가 분출할 재앙을 예고해 주시는 만신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러웨이의 가이아 해석이 겹쳐졌자. 그녀는 가이아를 어머니 대지로, 완전한 합일성에 대한 환상으로 만든 가부장적 해석의 일원성을 조각내며, 뱀 같은 메두사나 끔찍한 형상의 여신들, 땅 속의 무서운 분출을 앞둔, 컨트롤할 수 있는 자연의 힘들을 지시한다.

'이 고르곤들은 출현한다기보다 분출한다... 고르곤들은 불괘한 괴물로, 뱀으로 덮여 있는 자신들의 살아 있는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돌로 만들어버린다. 만약 이 사람들이 땅 밑에 사는 이 끔찍한 것들을 예의 바르게 대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Haraway, Staying with Trouble)


자연은 모든 것을 잉태하고 또 모든 것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이 가져온 지구의 복잡이한 생태계의 불균형은 이러한 힘들의 분출을 잠재적으로 예고한다.



거대한 지구의 시간 속에 티끌과 같은 인간으로서 기후 위기를 두고 슬픈 것은, 이 위기가 가장 허약한 곳에 있는 이들에게, 식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기후 위기에 가장 덜 공헌한 이들에게 먼저 영향을 주게 될 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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