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인디언의 파이프 의식
기후 위기 선조적 전통 6
로버트 세븐 크로우스 Robert SEVEN CROWS와 로이 바르네스 Roy BARNES의 차눈파 파이프 세레모니 CHANUNPA PIPE CEREMONY
‘한 번 끊어졌던 이 띠를 우리는 다시 회복시켰다. 다시 엮어짐 우리의 연결성을 끊어뜨리기란 이제 더 어려울 것이다.’
아침에 있었던 라운드 테이블의 발표자 중 한 명인 웨인 윌리엄의 의식을 찾아갔다. 캐나다 출신의 인디언 로버트 세븐 크로우스와 그의 아들, 그의 아들이 스승으로 배우고 있는 북미 인디언 로이 바르네스, 그리고 북미 인디언 웨인 윌리엄. 이렇게 4분이 의식을 진행하였다.
잔디밭에 사람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는 모습에 처음에는 의식이 진행될 곳인지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시간이 되자 4분은 각자의 담뱃대와 도구를 꺼내 준비하셨다. 차눈파는 신선한 담뱃대와 그 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차눈파는 라코타 언어로 신성한 담뱃대와 그것이 사용하는 의식(세레모니)를 의미한다. 화이트 버팔로 칼프 여자가 이 세상과 와칸 탄카, '거대한 신비'를 연결하기 위해 7개 의식 중 하나로 이 담뱃대를 사람들에게 가져다주었다고 전해진다. 차우파 담뱃대는 창조자와 다른 신성한 존재들에게 기도를 담아 보내는 수단이다.
(참고자료: https://pluralism.org/sacred-pipe-of-the-lakota-sioux)
의식을 주도했던 로이 바르네스는 자신은 라코타 인디언에게서 이 전통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뒤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백인의 얼굴이었다. 자신의 얼굴이 인디언처럼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내면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라코타 인디언 전통을 이어가면서 자신만의 성격이 가미된 부분도 있지만, 변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프로토콜이라고 하였다. “예를 들어 파이프를 주고받을 때는 항상 시계방향으로 돌려서 받는다. 그 이유를 물으면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프로토콜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그의 옆에 앉아 있었던 웨인 윌리엄은 다른 인디언 부족 전통에서 왔기 때문에 방법을 다르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 전통을 배웠다는 라코타 인디언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식민주의와 동화정책에 강하게 저항했던 이들이었고 근래에는 다코타 송유관 건설 반대 운동으로 전 세계로 부터 주목을 받았다. (다코타 송유관 건설 반대운동 관련 글, https://www.npr.org/sections/thetwo-way/2017/02/22/514988040/key-moments-in-the-dakota-access-pipeline-fight)
위의 4분의 프랙티스너들은 각자의 담배등에 4가지 종류의 허브를 넣었다. 또 다른 인디언 부족 전통을 따르는 웨인을 제외하고, 3분의 담배등 위에는 4가지 허브 중 하나가 장식되어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4가지 허브 중 하나는 타바코였는데 그것이 공산품이라는 것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자본주의의 공산품을 신령에서 바친다. (몽골 샤먼을 통해 그의 하늘신, 텡그리에게 값비싼 담배와 보드카를 바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
신령들은 자신에게 바쳐진 그것을 좋아하고, 따라서 공산품마저도 마술화된다. 자연물질을 자본화하는 기업과 그의 소유권의 개념이 원주민적 우주관에 침투했을 때 글로벌 경제 체인 속 자원이 된 그것은 악마(마이클 타우싱)가 혹은 죽은 것(마이클 도브)이 되기도 한다. 공산품의 재-마술화는 이 반대의 경우이다. 자본주의의 생산물이 다시 신령에게 바쳐지고, 공동체 의식의 서클에 들어온 것이다.
의식을 진행하는 자는 그저 '도움이 helper’ 일뿐이라고 했다. 오늘은 특별한 의식이 되었는데, 그 즉슨 안나 노만이라는 북유럽 애니미즘 프랙티스너가 그녀의 담뱃대에 '생 life'를 불어넣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의식은 그녀의 담뱃대가 할머니가 되는 의식이었다. 그녀의 파이브는 '할머니'가 되는데 그것은 할아버지가 될 파이브에 생을 불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우리를 언제나 돌봐주고, 우리 모두는 할머니로부터 왔으니까.
의식이 시작하기 전까지 그들은 담뱃대의 앞 구멍과 뒤의 구멍을 모두 막았다. 왜냐면 우리가 지금 하는 대화들이 담배댓 속에 들어가 저 세계의 신령들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은 담뱃대네 불을 붙이고 일어나서 관객들에게 한 명씩 다가갔다. 이 역시 시계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나의 반대편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안자 담뱃대로 나의 왼쪽 어깨, 정수리, 오른쪽 어깨를 쳤고, 그것을 다음 사람에게 반복했다. (이 부분은 실은 기억이 희미해졌고 노트 필기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디테일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사전에 그들과 담배를 함께 피우고 싶다고 했던 이들에게는 자신의 담뱃대를 내어주었다.
이것이 참 그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6여 년 전에 암벽 클라이밍 여행을 따라갔다가 종일 야외에서 몸을 쓰고 난 후 밤에 숲 속 캠핑장에서 불을 피우고 여러 클라이머들과 함께 둘러앉아 담배를 나눠 피던 기억이 떠올랐다. 점점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불기운도 사그라지면서 건너편 사람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고 그들이 담소를 나누는 목소리가 작아지며 속삭이는 소리 같아졌을 때였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동굴 속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불을 피워놓고 이야기를 들을 때의 느낌. 이것은 가장 유니버설한 오래되고 친숙한 기억일까?
이 담뱃대 의식이 끝나고 사우나와 같은 굴에 모두 함께 들어가는 의식으로 이어졌다. 사우나에 들어가면 문을 두 번 여는데, 그때 stone people이라고 불리는 신령이 들어온다. 그들은 독특하게도 눈코입이 없지만 더 잘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다. (Arrival 어라이벌 영화와 스톤 헨지의 형상이 떠올랐다.)
오늘 의식을 주도한 로이 바르네스는 엄청난 스토리텔러였다. 이는 지난 컨퍼런스에서 웨인 윌리엄에게서도 느꼈다. 그들의 이야기는 관객인 나의 귀에 쉽게 들어왔다. 문장이 짧고 간결했고 문장 사이의 라임 rhyme이 느껴졌다.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이야기를 전승하는 구전 전통 혹은 오랜 저항의 역사에서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이야기를 했던 영향일까? 이번 의식에서도 기억에 오래 남는 말을 들었다.
'식민주의에 의해 우리의 연결성이 끊어졌었다. ( 그 연결성이란 그들의 공동체의 연결, 자연 동식물과의 연결, 신령들과의 연결, 또 이 모두를 담고 있는 그들의 전통과의 연결 등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끊어졌었지만, 오늘날 다시 연결되었다.
또다시 연결되면서 오히려 그것은 더욱 강해졌다.
나의 아들은 이 프랙티스를 하지 않지만 이것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있다.
너무 감사하게도 나의 딸은 이 프랙티스를 이어가기로 했다.
따라서 나는 이것이 미래에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더 강하게 결속한 이 연결을 다시 끊어내기는 더 어려울 것이다. "
안무가 아만다 피나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나는 한국의 마을굿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이 샤머니즘 전통이 혹은 민간신앙이 사라질까봐 안타깝다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도 그런 질문을 나의 선생님인 (멕시코) 샤먼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 그가 말했어. 이건 사라지지 않아.” 그 말을 듣고 머리 한 방을 맞은 듯했다.
디지털 기술 등 새로운 기술이 생겨날 때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는 한국 무인들의 활동, 인간너머 및 다생물종 이론의 모태로 그 이론과 실천에 대단한 자양분을 주고 있는 인디어의 코스몰로지도 그러한 예였다. 사라지지 않는, 계속해서 흐르는, 변화하는.
따라서 전통의 죽음과 사라짐이 아닌 '부식'이라는 말이 음미하며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이러한 연결의 우주관들이 아래 민중 사이의 힘을 모으고, 서로를 위로하고, 굳어있던 의식과 마음과 감각을 녹인다. 다시 상상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