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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한 Jun 21. 2024

<인사이드 아웃 2> K-사회인 과몰입주의보 발령

Inside Out 2, 2024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3일 간의 하키 캠프에 참여한 라일리는 절친들과 다른 고등학교로 배정받았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새로운 학교에서의 적응을 걱정하는 찰나에 평소 동경하는 하키팀의 선배와 마주하고 우연히 선배의 친구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얻는다. 하키 캠프의 감독은 고등학교 하키팀 ‘파이어버드’의 선발 권한을 갖고 있다. 친구들과 떨어지고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결국 ‘하키만 잘하면 친구가 생길 것이다’는 신념으로 자라난다.


<인사이드 아웃 2>와 전작의 가장 큰 차이는 감정의 방향성이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은 주로 생존과 관련한 특별한 상황에 직면해 내부에서 발현된 감정이다. 기쁨(Joy)은 라일리가 태어났을 때, 슬픔(Sadness)은 기쁨이 나타난 33초 후에 울음과 함께. 소심이(Fear)는 라일리가 집에서 수레를 끌면서 놀 때 램프에 연결된 전선을 밟지 않으려 조심할 때. 까칠(Disgust)은 싫어하는 브로콜리를 억지로 먹어야 할 때. 버럭이(Anger)는 까칠이 등장 직후 라일리의 아빠가 ‘브로콜리를 먹지 않으면 후식은 없다’는 소리에 등장했다.


반면 2편의 감정들은 3일 간의 하키 캠프를 앞둔 특정 시기에 한 번에 등장한다. 나와 가족이라는 조그마한 내집단을 벗어나 세계가 본격적으로, 외부로 확장되는 순간. 내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타인의 눈치를 보고, 행동을 모방하고, 관계를 걱정하는 사춘기의 시작점에 불안 (Anxiety), 부럽 (Envy), 따분 (Ennui), 당황 (Embarrassment) 그리고 추억 (Nostalgia)이 한 번에 나타난다. 1편에서는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며 생긴 의식주의 변화로 인한 본능적 감정들을 다루었다면 2편은 학업과 진로, 우정과 성취 같은 사회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 K-사회인 과몰입주의


<인사이드 아웃2>의 핵심 감정은 불안(Anxiety)이다. 눈앞의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기쁨, 슬픔, 분노, 공포와 달리 불안의 시선은 항상 미래를 향한다. 기쁨이가 제어판을 만질 때마다 일이 꼬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과 달라진다는 판단이 되자 불안은 기존 감정들을 감금한 뒤 본부에서 추방한다. 그리고 하키를 잘하지 못할 경우 라일리가 처할 수 있는 부정적 상황들을 상상하도록 자극해 잠들지 못하게 만들고, 본인에 대한 평가가 적혀있는 감독의 노트까지 훔쳐보게 한다.


“난 아직도 부족해”라며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불안이 정점에 달했을 때의 모습은 공포스럽다. 불안이는 빠르다 못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며 제어판을 움직인다. 이에 따라 폭풍 탓에 다른 감정들은 제어판에 다가갈 수도 없고 라일리는 공황에 빠진다. 기쁨이 겨우 폭풍을 뚫고 들어가서 만나게 된 불안은 눈에는 보이지만 손에는 잡히지 않고 잔상으로만 존재한다. 왜냐하면 미래는 도착해야만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안이는 잠도 자지 않고 수백, 수천 개의 시나리오 쓰며 준비했지만 인생은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자기 효용성의 증명을 끊임없이 주입받은 K-사회인이라면 사춘기에 라일리에게 발현된 어떤 감정들보다 불안에 더 많이 공감할 가능성이 높다.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해서 서울에 아파트를 사고 자녀를 낳는다는 이상적 시나리오가 존재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몰아세우는 사회적 압박이 존재하는 탓이다.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이상적 트랙에 탑승하기 위해 분주하게 스스로를 채찍질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상황이 악화하는 게 꼭 낯설지는 않다.



본부에서 쫓겨난 기쁨이도 나름대로 분주하다. 불안이가 만든 ‘난 아직도 부족하다’는 신념 대신 13년 간 차곡차곡 쌓아온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는 신념을 라일리에게 다시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하키도 잘하는 라일리의 행복한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따뜻하고 자신만만한 신념이다. 우여곡절 끝에 본부에 돌아온 기쁨이는 불안이를 제어판에서 떼어놓고 원래의 신념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기쁨이의 신념도 불안이 만들어낸 폭풍을 잠재우지는 못한다.


기쁨이 만들어 낸 긍정적 신념은 라일리의 부정적 경험들을 모두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린 뒤 자라난 탓이다. 스스로를 긍정적으로만 생각해서 생기는 병을 우리는 나르시시즘이라 부른다. 라일리는 하키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남기기 위해 팀원의 공을 뺏어 강제로 골을 넣는다. 상대편에 있는 절친을 못 보고 부딪혀 패널티박스로 퇴장까지 당한다. 이런 상황은 기쁨이의 신념이 대처할 수 없는,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경우라는 걸 알기에는 라일리가 너무 어리다.


1편에서 기쁨이가 슬픔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문제가 해결됐듯, 기쁨이는 본인의 신념을 꺾는다.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렸던 부정적 경험들이 감정의 샘에서 자라나 불안, 슬픔 등 여러 가지 모양의 신념들이 생긴 뒤에야 폭풍이 가라앉는다. 라일리는 쉬는 시간에 찾아온 절친들에게 혼자만 다른 학교로 간다는 생각에 못되게 굴었다며 진심을 담아 용서를 빈다. 친구들은 말없이 라일리를 껴안아 주고 남은 경기를 마저 하자며 나간다.



■ 나의 불안함이 기쁨이를 부를 때


장기기억저장소에서 길을 잃고 헤메던 기쁨이는 투덜거리기만 하는 까칠, 소심, 버럭이에게 악에 받쳐 말한다. 항상 긍정적인 게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그리고 어렴풋이 깨닫는다. 라일리의 5개에서 10개로 감정이 늘어난 것처럼 어른이 된다는 걸 기쁨이 점차 줄어가는 일이 아닐까라고. 눈물을 흘리는 기쁨이를 버럭이는 이렇게 위로한다. “넌 많은 실수를 했어. 아주 많이. 앞으로도 많이 하겠지. 하지만 너가 여기서 포기한다면 결국 우리들도 그렇게 될 지 몰라.”


<인사이드 아웃 2>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 친구들과 화해하고 다시 경기장에 들어간 라일리는 다시 하키에 몰입한다. 감독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은 사라지고 얼음을 제치고 스틱을 휘두르는 순수한 즐거움이 라일리에게 충만하다. 그 순간 제어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기쁨이를 인도한다. 1편부터 머릿속에 있는 감정들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던 라일리가 반대로 본인이 원하는 감정을 처음으로 불러낸 순간이다.


기쁨이는 제어판에서 불안이를 떼어놓을 때 이런 말을 한다. "라일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너가 정하는 게 아냐. 불안아... 이제 라일리를 놔줘." 불안이 미래를 결정하는 게 아니듯, 기쁨이가 억지로 행복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우리는 원하면 언제든 기쁨이를 불러내 제어판에 앉힐 수 있다. 그건 어쩌면 이런 의미가 아닐까. 어른이 될수록 기쁨은 줄어들지 모르나 기뻐할 수 있는 순간을 우리는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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