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폐쇄가 만들어내는 사회
혼모노의 세계에서최근 서브컬쳐계의 커다란 이슈중 하나는 ‘혼모노(本物)’다. 일본어로는 ’진짜‘라는 뜻인데 뉘앙스를 풀자면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라는 의미로 쓰인다고 한다. 상식을 뛰어넘은 행동을 하는 이들을 말하는데, 오덕후라면 이렇게 하리라 예상하는 행동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사람들이 해당된다. 지금까지 보고된 혼모노의 유형으로는 극장에서 유명한 대사를 큰소리로 따라한다거나(...), 갑자기 일어나 뒤를 돌아보며 떼창 유도(...)하는 일 등이 있다.
혼모노 탄생배경으로 고립과 폐쇄성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관람이라는 취미는 오프라인에서 덕후문화로 비하되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오프라인에서는 입을 닫고 온라인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고립된 이들이 폐쇄적 커뮤니티를 생성하고 그들만의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커뮤니티 내부에서만 합의된 몇몇 과격한 표현이 일반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는 것이 혼모노 사태의 발생과정이다.
실제로 혼모노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것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개봉 이후다. 이는 그동안 생활반경이 겹치지 않던 일반관객과 혼모노가 <너의 이름은>의 폭발적 흥행과 맞물려 한 공간에서 부딪히며 생기는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러브 라이브> 개봉시 떼창영상을 보면 혼모노로 지칭되는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이를 함께 즐기는 축제 분위기로 인식하느냐, 영화관람을 방해하는 민폐로 보느냐는 관점의 차이인 것이다.
물론 모든 애니메이션 덕후나 폐쇄적 커뮤니티 유저가 혼모노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혼모노의 탄생배경이나 커뮤니티 문화의 특수성을 논하기 이전에 관람매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떼창하라고 자막까지 깔아주는 싱어롱 버전 상영이 아닌 한에야 일반관에서 큰소리로 대사를 따라하거나 떼창을 유도하는 것은 다른 관람객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일이다. 다만 일본처럼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흥행이 드문 한국에서 <너의 이름은>의 흥행이 워낙 독특한 사례이고, 서브컬처계에서도 진지하게 논의가 진행되는 만큼 자정작용에 의해 혼모노들은 차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번 사태로 깊이 생각할 것은 ‘혼모노’로 지칭되지 않는 사회구성원들의 이상행태를 어떻게 봐야할 것이냐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박사모를 수 있다. 정치적 견해를 떠나 이들의 행동은 분명 민주사회를 부정하는 어떤 징후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탄생배경에도 고립과 폐쇄성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생산인구에서 밀려나 사회에서 소외된 보수적인 노년층이 SNS를 통해 유통되는 유언비어를 무분별하게 수용한 후 뱉어내는 차별과 혐오발언에 비하면 덕후들의 떼창 유도는 귀여운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의 행동은 신념과 정치관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교정조차 여의치 않다.
반공이나 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적 정치관을 비하하려는 목적의 글은 아니다. 다만 저성장 사회로 접어들며 생산인구에서 탈락해 고립되고 폐쇄적 환경에서 제한된 정보만을 취득하는 이들은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부추기는 집단의 존재정황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자정작용이 가능할 만큼의 기초체력을 키웠는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역량이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혼모노야 극장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박사모를 피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떠날 수야 없는 노릇이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