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iott smith - A Distorted Reality~ 듣다가
마카오 코타이 지역에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컨셉으로 삼은 ‘베네시안’ 호텔이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카지노 호텔이며 한 층을 뻥 뚫어서 만든 실내운하가 유명하다. 실내운하 양쪽으로 명품 브랜드 쇼핑몰이 늘어서 있는데 한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명품브랜드는 거의 다 입점한 것 같았다. 쇼핑뿐 아니라 레저도 가능하다. 밀짚모자에 흰빨 스트라이프 셔츠와 검은색 치노팬츠를 근사하게 차려입은 라틴계 사공이 곤돌라를 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잘 꾸며진 베네시안의 실내운하를 보자마자 내가 실제로 뱉은 말은 ‘가짜의 가짜’였다. 가짜 이탈리아의 가짜 베네치아에서 가짜 곤돌라를 가짜 라틴계 사공. 진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선 감탄보다 정체성의 혼란이 먼저 찾아왔다. 하지만 혼란도 잠깐이었고 곧 실내운하가 진짜 베네치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내장재와 조명을 이용해 만든 천장의 영향이 컸다. 파란하늘을 얼마나 잘 구현했는지 비가 내리던 날인데도 잠깐 하늘이 갰나 싶을 정도였다. 실내운하를 바라보며 잘 만든 에그타르트까지 하나 베어 물으니 굳이 진짜 베네치아가 필요할까 싶었다.
가짜뉴스를 찾는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굳이 진짜를 찾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겐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가짜뉴스가 충분히 진짜와 같은, 오히려 그보다 더 많은 효용을 제공한다. 믿을 만한 친구가 카톡으로 배달도 해주니 신뢰도도 올라가고 SNS에서 관심 있는 주제로 큐레이션까지 해서 떠먹여주니 접근성도 얼마나 높은가. 게다가 광고와 구분하기 어렵게 기사처럼 써내려간 광고들은 애드버토리얼이니 브랜드 저널리즘이니 하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기 시작한 것도 독자들이 아닌 저널리스트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실내운하 천장에 만들어진 가짜하늘을 보며 내가 착각했듯이 인간의 감각은 불완전하다.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그보다 더 쉽게 속아 넘어간다. 주류 언론사보다 더 편한 홈페이지 UI, AI가 알아서 만들어주는 깔끔한 문장, 포토샵으로 손쉽게 만드는 합성사진까지. 온 신경을 집중해서 찬찬히 뜯어보면 이질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야 있겠지만 시간이 곧 돈인 세상에서 그렇게까지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히려 지금에야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를 잡아먹기 시작했으니 그동안 잘 버텼다고 칭찬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마카오에는 ‘베네시안’말고도 1940~50년대 황금기 헐리우드를 재현한 ‘스튜디오 시티’. 1/2크기의 개선문과 에펠탑까지 마련한 ‘파리지안’ 같은 그야말로 세계구급 가짜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마카오는 이런 가짜들의 힘을 바탕으로 2007년부터 도박 매출로 라스베가스를 추월해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로 성장 중이다. 가짜뉴스 역시 마찬가지다. 편안함과 귀찮음에 무뎌지는 감각에 호소할 해결책이 함께 고려되지 않는다면 법적제재나 알고리즘을 이용한 배제 같은 이성적 해결책만으로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를 대체할 어두운 미래를 바꾸기 어려워 보인다.
2008년 발표된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의 사후 유작이자 7집 [From A Basement On The Hill]의 마지막 트랙이다.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엘리엇과 같이 프로듀싱을 해왔던 롭 슈내프와 전 여자친구인 조애나 봄에 의해 발매됐다. 가사를 해석해보려고 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제목은 '왜곡된 현실은 이제 자유로워져야 한다'으로 봤는데 맞는건가 모르겠다.
음악듣기: https://youtu.be/TgOn7wuC3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