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 - Fine 듣다가
서기 2027년 영국. 가장 어린 소년 ‘디에고’가 사망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진다. 원인모를 불임으로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상황. 가장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디에고가 광팬의 사인을 거절하고 침을 뱉었다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SF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첫 장면이다. 쿠아론 감독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미증유의 재난으로 예고된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인류에게 질문을 던진다. 생물학적 멸종과 마주했을 때 인류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불임 바이러스로 인한 멸종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선진국에서는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심각하다. 중국과 태국 같은 개발도상국에서도 저출산 현상이 번지고 있다. 2050년에는 세계의 노인 인구가 청년인구의 2배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현실에서는 영화와 같은 극단적 상황까지 몰리진 않을 것 같다. 생명공학의 발달 덕분이다. 시험관 아기는 이미 40년 전에 등장했고, 유럽 국가들은 한국의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 공공정자은행이 있다. 인구절벽 현상을 제도와 정책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유전공학기술에서 답을 찾을 것이다. 생명윤리에 관한 사회적 합의만 도출된다면 말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시선을 <칠드런 오브 맨> 같은 생물학적 멸종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바로 사회학적 멸종이다. 사회적 죽음은 개인과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상태. 개인이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고립된 상태를 의미한다. 고독사와 자살은 사회가 개인의 목숨을 앗아간 결과물이다. 개인에게 적용되던 사회적 죽음이 확대되어 서로가 서로를 격리하고 고립시킨다면 인류 역시 사회학적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류가 사회학적 멸종으로 향하는 하이패스다.
사회적 멸종의 대표적인 예시는 코쿤족이다. 코쿤족은 외부와 관계를 끊고 쇼핑, 문화생활 등을 인터넷과 첨단 장비를 통해 해결하며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누에고치 같은 사람을 뜻한다. 정교한 알고리즘을 탑재한 인공지능의 발달, 모바일 시대의 도래는 코쿤화를 부추긴다. 페이스북, 유튜브가 취향저격 콘텐츠를 추천하고 구글이 관련도 높은 검색결과부터 보여준다는 것은 더 이상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알고리즘을 통한 선별뿐 아니라, 창작활동도 인공지능의 손아귀에 떨어지기 직전이다.
문제는 코쿤화를 막을 방도가 없고 이 현상이 오로지 취향 차이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사회나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도 코쿤화 되고 있다. 98번째 3.1절을 맞이해 광화문에서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가 맞붙었다. 물론 세력의 크기나 참여 동기, 사태 인식의 차이 등은 있다. 오늘만 해도 대형교회에서 신자들을 동원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퍼지는데, 탄핵정국이 길어질수록 광장에서 타인의 주장에 동의하고 대화하려는 시도는 점점 드문 일이 되는 것만은 명백하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는 밀입국자를 수용소에 밀어 넣고 학살한다. 이민자 혈통이 불임을 유발한다는 미신이 퍼졌기 때문이다. 각자가 취사선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기의 목소리만 높이는 일이 당연시되는 우리의 세계도 <칠드런 오브 맨>과 다르지 않다. 다른 사실을 주장하는 이들을 밀어넣기 위한 수용소가 등장하고 아스팔트가 피로 물들게 되리란 상상을 멈추기 힘들다면 그 이유는 정치견해의 차이가 아니라 검색결과의 차이에서 찾아야할지도 모르겠다.
PS. 오랜만에 유튜브에 들어가니 인류를 멸종에 이르게 하려는 구글의 음모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맞춤동영상> 항목을 클릭하니 ‘출구없태연’, ‘운전마저도 귀여운 소녀시대 태연모음’, ‘레드벨벳 브이앱 중 갑자기 만난 태연(Feat. 세상 정신없음’, ‘Taeyeon uptown funk’, ‘종이인간 김태연’, ‘[바닐라코]태연, MISS CC가 되다’ 등이 뜬다. 이런 방식의 사회적 죽음이라면 나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명예로운 죽음으로 기록되길.
2017년 발매된 소녀시대 태연의 첫 번째 정규 앨범 [My voice]. 팝을 바탕으로 발라드, 알앤비, 록, 재즈, 하우스 등 다양한 음악적 결합을 시도하고 완성도 있게 소화해내며 통해 어느 장르에도 어울리는 만능형 보컬의 위엄을 보여줬다. 타이틀곡 ‘Fine’은 ‘I’에 이어 시원하고 록킹한 팝 사운드로 팬과 대중의 귀를 확 잡아끈다. 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수준 높은 테크닉이 앨범 전체에서 사용되지만 과시하지 않는 뛰어난 완급조절로 나날이 발전하는 보컬리스트적인 역량도 눈에 띈다. 다른 분야의 진출보다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태연의 의지가 드러난 완성도 높은 앨범.
태연 – Fine
찢어진 종잇조각에
담아낸 나의 진심에
선명해져 somethin' bout you
Yeah 나를 많이 닮은 듯 다른
넌 혹시 나와 같을까 지금
괜한 기대를 해
하루 한 달 일 년쯤 되면
서로 다른 일상을 살아가
나는 아니야
쉽지 않을 것 같아
여전하게도 넌 내 하루하루를 채우고
아직은 아니야
바보처럼 되뇌는 나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 없어
It’s not fine
Ah- Ah- Ah- Ah- It’s not fine
머릴 질끈 묶은 채
어지러운 방을 정리해
찾고 있어 somethin' new
가끔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괜히 움직이곤 해
하루 한 달 일 년 그쯤이면
웃으며 추억할 거라 했지만
나는 아니야
쉽지 않을 것 같아
여전하게도 넌 내 하루하루를 채우고
아직은 아니야
바보처럼 되뇌는 나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 없어
It’s not fine
Ah- Ah- Ah- Ah- It’s not fine
의미 없는 농담, 주고받는 대화
사람들 틈에 난 아무렇지 않아 보여
무딘 척 웃음을 지어 보이며
너란 그늘을 애써 외면해보지만
우리 마지막
그 순간이 자꾸 떠올라
잘 지내란 말이 전부였던 담담한 이별
아직은 아니야
바보처럼 되뇌는 그 말
입가에 맴도는 말을 삼킬 수 없어
It’s not fine
Ah- Ah- Ah- It’s not fine Oh-
Ah- Ah- Ah- It’s not fine
음악듣기: https://youtu.be/NHXUM-6a3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