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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살 Feb 18. 2019

더는 뛰어놀지 않는



  지금 내 왼쪽 발목은 정상이 아니다. 학교 춤 동아리에서 연습하다가 다친 것이 1년이 지난 지금도 낫지 않고 있다. 낫지 않을 것은 알았다. 병원에서 뼈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고 치료방법이 없다고 했으니까. 그 병원에서 진단을 제대로 한 건지는 모르겠지마는…….


  어쨌든 나는 이 불편한 발목을 달고 살고 있다. 사실 크게 불편한 건 아니다. 걷고 뛰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문제는 발목 관절에 어색한 느낌이 항상 나를 괴롭힌다는 것, 그리고 방학 시작 후 운동을 하면서 최근 알게 된, 달리기를 오래 하고 나면 좀 아프다는 것이다. 발목을 돌리면 통증이 느껴지고 어떨 땐 가만히 있어도 아프다. 어떻게 보면 내가 ‘장애인’의 부류에 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항상 든다. 엄마가 내 발목을 걱정하며 “니 잘못하면 장애인 된다!”라고 말했을 때는 약간 철렁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내가 그렇게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나 스스로도 의아하다. 이 정도면 걷고 뛰는 데엔 무리가 없어도 구기 운동이나 무술 따위는 평생 못할 정도다.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격한 운동을 하다가 발목을 삐끗하는 날에는 정말 큰일 날 것 같다. 그런데도 난 ‘춤 동아리를 들지 말았어야 했다’ 라거나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 된단 말이야?’ 같은 생각보단 ‘뭐 살다 보면 발목 불구도 될 수 있는 거지’ 하고 태연한 편이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태연한 이유는 내가 뛰노는 것과 멀어져서가 아닐까 하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참 많이 뛰어놀았다. 스마트폰도 없고 피시방, 노래방 이런 것들도 접해 본 적이 없던 때라 친구들과 학교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하는 놀이는 경찰과 도둑, 바다와 육지, 자전거 타기 이런 것들이었다. 농구부에 들어서 초등학교 농구대회에 나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엔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체육 시간에 농구나 풋살을 하는 게 전부였고 대학생의 여가생활엔 몸 쓰는 일이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상태를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어느새 앉아서 수다나 떠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 갈수록 뛰놀 공간을 잃어버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살았던 곳을 지금 되어 가 보면 향수와 반가움 말고도 느껴지는 게 있다. 바로 ‘여기가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신기함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살았던 아파트 단지엔 놀이터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절벽이 하나 있었다. 그래, ‘절벽’이라고 표현할 만큼 그때의 나에겐 높은 벽이었다. 나와 친구들은 그곳에서 축구공을 차 누가 더 높이 올리나 하고 놀았다. 그런데 수년 후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 ‘절벽’의 낮음에 놀랐다. 그만큼 내 몸집이 자란 것이다.  

  어릴 때는 정말 길게 느껴졌던 등굣길도 이제 보니 꽤 짧은 거리라고 여겨진다. 현재 다니는 대학교까지의 등교 시간이 1시간 걸리다 보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분명히 내 몸집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 것이다. 이렇듯 어른의 몸집을 가지게 된 나, 그리고 나의 또래들은 뛰놀 곳을 잃게 된 것이다. 옛날의 작은 몸집으로 집 안에서도 텀블링을 하고 복도에서 뛰어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지금은 그랬다가는 뭐 하나 깨지기 십상이겠지.


  가끔 놀이터를 지날 때면 친구들과 몸 써서 놀았던 추억에 잠긴다. 지금 그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뭐 할래”라는 질문으로 고민을 하는데 단 한 번도 당구장, 피시방, 노래방, 카페가 아닌 다른 곳을 간 적이 없다. 한 번쯤은 친구들에게 기계를 내려놓고 옛날처럼 몸과 땅으로 놀아보자고 하고 싶다. 더 나이를 먹어 주름살이 생기고 나서 그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린 이미 뛰어놀고 싶은 마음이 땀나는 것과 숨이 찬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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