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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양 Mar 03. 2017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출근길에 덕담 아닌 자극 아닌 상념

요한복음 2장 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아침 6시 50분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 준비를 한다. 샤워를 하고 까치집 머리도 매만지고 해가 지나면서 더욱더 푸석해진 피부에 수분 크림을 바르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문을 나서는 순간 내 시선이 하늘도 앞도 향하지 않고, 바닥을 향하며 집을 나서는 것은 왜이리 자연스러운 것일까? 단순히 일하기가 싫거나 아니면 직장에서 만날 누군가가 싫어서 일지도 모른다. 또는 쥐꼬리만큼 오르는 내 연봉이 짜증나거나, 단순히 모니터 앞에 나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보니 거북목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영양가 없는 잡념을 하며 엘레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바닥만 하염없이 바라보다보니 타고 계시던 노부부 한 쌍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 서른 살 총각도 어린애 같다는 어머님이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라고 출근길 배웅을 하다 말고 윽박을 지르신다. 노부부 한쌍이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신다. "출근 하느라 힘들죠? 고생이 많아요" 남편분이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몇 년째 매일 이러고 있는데도 적응이 안 되네요 하하" (인사는 주거니 받거니 해야 제맛) 그러다 옆에 부인께서도 한 마디 거드신다. "그래도 요새 같이 어려운 때에 이렇게 직장 다니는게 어디에요.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일해야지" 라고 팍팍하고 어려운 시대에 조언을 해주신다.


그런데 비몽사몽 간에 들은 인사말이 출근길 광역버스에서 계속 맴돌았다. 듣고 보면 틀린 얘기가 아닌 것 같은데 노부인께서 해준 말이 왜이리 머릿속에 남는지 모르겠다.


사는게 팍팍하고 출근길이 피곤한 것은 그냥 짊어지고 가야할..마치 내 몸속에 수술을 할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괜히 신경 쓰이는 담석 같은 것일까? 수술거리도 아니고 크게 아프지도 않으니까 그냥 죽을 때까지 몸에 붙여둘 그런 담석 말이다. 몸에 뭐가 생겨서 수술하는 사람도 있는데 몸에 칼 델 일 없는 사람은 불평없이 살아야하지 않겠냐만, 찝찝하거 마음이 불편한건 어쩔수가 없다. 담석은 이렇게 찝찝해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 다시 찝찝하게 만든다. 그냥 괜찮다고 하니까 괜찮아야 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가 톨게이트를 지나 다시 빠져나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고 그렇게 외쳐댔지만, 광역버스는 또다시 사람들을 가득가득 채우고 달려간다. 적정 수준 초과의 승객을 태웠고 그들이 내뿜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도 빵빵하게 머금고 달려간다. 어찌보면, 출근길 덕담이 이런 꼬일대로 꼬인 상념이 되어버린 것은 적정 수준 이상의 승객이 내뿜은 과도한 이산화탄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뭐라그러더라, 이산화탄소가 높으면 혼미해진다고 한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이산화탄소가 높은 것은 승객이 많이 탔기 때문이고, 많이 탄 이유는, 우리 시대와 현실이..


"이번 정류장은 금토천교 입니다". 아, 이제 내가 내릴 정류장이다. 버스에서 내려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걸어간다. 지각하기에는 충분한 여유가 있고, 상사들의 눈치를 보기에는 조금 부족한 그런 시간이다. 힘차게 고개를 숙이고 회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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