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루트다 Dec 16. 2015

낯선 땅, 낯선 곳.

반복

오전 11시.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나는 연구실에 도착했다. 마치 이전부터 그래왔다는 듯이, 가방을 내려놓고 머그컵을 집어 Kitchen으로 간다. 오늘은 조금 피곤하니 에스프레소 2샷에 따듯한 물을 섞어 다시 내 자리로 가져온다. 주섬주섬 노트북을 꺼내어 스탠드에 장착하고, 데스크탑의 모니터를 켠다. 읽으려고 Chrome으로 열어둔 논문이 몇 개 보인다. 인쇄버튼을 눌러 중앙 프린터로 전송시킨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나면 Kitchen뒤 프린터에서 다 출력되어있으리라. 이렇게 한 잔의 커피와 한 편의 논문으로 하루를 연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 처럼. 


어느 순간부터인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지난 8월, 한국을 떠나 이곳 토론토로 온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어느 새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도 생겼고, 한국에서와 같이 하루를 여는 반복적인 습관도 생겼다. 이렇게 반복적인 일상의 시작에는 마치 연구실만 옮겼을 뿐 달라진 게 없는 듯한 착각이 들어 계속해서 나를 곱씹어본다.

 '나는 달라진게 없을까?' '잘 진행되고 있을까?' 

달라진 것은 많다. 한국프로야구에 소홀해지고, 메이저리그를 챙겨보고 있다. 때 마침, Blue Jays가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꽤나 자주 오후 5시가 되기전에 집으로 향한다. 어차피 집에서도 일은 하기때문에, 이제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누려보고 싶기에 그들과 비슷하게 퇴근을 한다. 이제는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생겼다. 하루의 꽤 많은 시간을 그 생각에 잠겨있다. 

달라지지 않은 것 또한 많다. 여전히 커피를 내려 마신다. 커피 한 잔을 내려마실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다행이다. 나는 여전히 통계와 씨름하고 있다. 처음듣는 머신러닝수업에 곁다리로 보게되는 ECON수업들을 보고 있자면, 석사2년간 뭘했나 싶다. 지도교수와의 미팅은 여전히 있다. Master에서 PhD가 되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매번 미팅준비에 스트레스다. 더불어 랩미팅 또한 여전히 있다.  어떤 날은 발표를 어떤 날은 토론을 한다. 아직은 지도교수가 봐주는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나는 '너는 왜 피드백을 안하지?'라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정말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주고 크리틱을 하고 싶지만, 몇 번 포인트가 엇나가다보면 주눅이 든다. 그 날은 참 괴롭다. 


연구는 여전히 힘들다. 연구주제가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물줄기를 찾은 것 같지만, 매번 나에게 되묻는다. 

So what?  Is it necessary? What would be the advantages of my approach? 

Research question을 묻는 단계는 지났어야 한다. 아직도 모른다면, 아직 한 발자국도 딛지 못한 것이다. 

과연 연구자로서의 첫 발을 잘 딛고 있는 걸까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