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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의길벗 라종렬 Jul 21. 2024

예레미야 35:01-19 순종하는 신앙의 모범

예레미야 35:01-19  

예레미야 35:01-19 순종하는 신앙의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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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을 상황이 달라지자 깨버린 예루살렘과 달리 오래전 선조들이 명령한 것을 여전히 지키며 살아가는 레갑 족속의 순종의 모범을 통해 지금 이스라엘이 멸망을 극복하고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35장의 레갑 족속들은 34:8-22에 묘사된 자신들이 체결한 조약조차도 지키지 않는 패역한 예루살렘 사람들에 대조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계약을 거듭 위반한데 반하여 레갑 족속은 조상 요나답이 준 규명을 250년 동안 어기지 않고 준수해 옵니다. 이런 대조를 통해 본문은 레갑 족속의 순종을 신앙의 규범으로 제시해 줍니다. 조상의 규정에 충실한 레갑 족속에게 주어진 구원의 약속(18-19절)은 이스라엘이 멸망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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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여호와께서는 우리 주위에 있는 이들을 통해 신앙의 도움과 도전을 주시기도 합니다. 

여호야김(608-598)이 통치하고 있을 때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레갑 족속들을 성전의 어느 한 방으로 불러서 이들에게 포도주를 먹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때를 1절은 막연히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때’로 말합니다. 11절에 의하면 레갑인들은 갈대아와 수리아(아람) 군대의 위험을 피하여 예루살렘으로 [위험이 지나갈 때까지] 올라와 삽니다. 주전 601년부터 주전 597년 사이의 기간을 우선 상정할 수 있습니다. 주전 601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애굽 원정을 떠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이를 바벨론의 패배로 오인한 여호야김은 바벨론에게 바치던 조공을 중단합니다. 병력의 손실을 입은 느부갓네살은 먼저 갈대아와 아람과 모압과 암몬의 약탈대(왕하 24:2)를 보내 유다의 배반을 징계하고, 자신은 주전 598년에 군대를 끌고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합니다. 아마도 레갑 족속은 이 약탈대가 유다를 유린하고 있을 때 그 위험을 피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 우연은 없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과 섭리하심이 있습니다. 정치적, 외교적, 문화적, 역사적 사안들 모두 공동체를 향한 뜻이 있고, 개인의 삶에 있어서의 만남과 관계와 여타 사건들도 모두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도전과 도움이 있기에 이 모든 일을 통해 배움과 경험과 성숙과 반추 그리고 변화를 얻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이를 외면하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영적 감각이 무디어 지게하고, 신앙의 퇴보와 상실로 흐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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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1 여호와께서는 레갑 족속이 선조들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을 통해 모범을 부각시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레미야는 레갑 족속을 성전의 한 방으로 데려와(3-4절) 이들에게 포도주와 술을 대접하지만(5절) 이들은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준 규정에 따라 마시길 거절합니다(6절). 이들은 자신들은 지금까지 조상의 명령을 철저하게 준수하며 살아왔음을 주장합니다. 이들은 집을 짓고 한 곳에 정착하여 사는 것과 포도원과 밭을 가꾸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며(6-9절) 조상 요나답이 명한 모든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습니다(10절). 바벨론과 아람의 약탈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살게 된 것이었다고 자신들의 사정을 설명합니다(11절). 

‘익달랴의 아들 하나님의 사람 하난의 아들들의 방’(4) : 다른 곳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하난을 ‘하나님의 사람’이라 부른 것으로 봐서 그는 성전에서 활동하는 예언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아들들은 그의 제자(생도)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런 추측이 맞는다면,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지지자를 확보했던 것 같습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왕하 10:15-17에 나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과 동일한 인물이라면, 레갑 족속의 시조이자 스승인 요나답은 철저한 야훼숭배자였습니다. 여호나답은 주전 845년에 요람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예후 혁명에 가담하여 바알숭배자들을 살육하는 일에 가담합니다(왕하 10:15-17, 20이하). 역대상 2:55에 의하면 레갑은 반유목민 생활하는 겐 족속에 속합니다. 

35:6-10에 의하면 레갑 족속이 250년의 긴 기간 동안 준수해온 요나답의 규정은 포도원을 재배하거나 밭에 씨를 뿌리거나 집을 짓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가나안적 정착(농경) 생활을 거절하며 [아마도 양을 치며] 천막에서 사는 반유목민 생활을 실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런 삶의 방식은 유목민 시대부터 내려오는 사회-종교적 흐름이라기보다는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에 [아마도 주전 9세기경에] 발생한 종파적 운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 보수적 야훼주의자들은 가나안의 도시문명과 농경생활을 이스라엘의 옛 전통에 충돌하는 반야훼주의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 가나안 땅의 소산을 즐기는 것은 광야시대의 하나님신앙에 위반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의 문화에 취하지 않기 위해 술을 거부했고, 우상과 연관된 가나안의 농경문화에 물들지 않기 위해 유목민으로 살았습니다.”_매일성경

절박할 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요구하고, 상황이 호전되면 이를 손 뒤집듯, 헌신짝 버리듯 저버리는 행위를 이스라엘이 행합니다(34장). 그러나 레갑 자손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조상 요나답이라는 사람의 명령을 오랜 시간동안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신앙을 희석하거나 미혹되거나 흐리게 하는 일들을 거부하며 구별된 삶 그러나 불편한 삶을 고수해 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을 가나안의 우상숭배 신앙과 문화에 동요되지 않고, 위로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에 있어서도 그 신앙을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과 연륜 그리고 여타 하나님 아닌 것으로 위안을 삼는 상황에서 우리의 불순종과 부정함들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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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7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거룩한 길을 말씀하시니 그 음성을 듣고 응답해야 합니다. 

야훼께서 레갑 족속의 순종과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대비시킵니다. 레갑 족속은 조상 요나답이 준 규정을 250년간 변함없이 지켜왔는데 반하여 이스라엘은 야훼의 계명과 율법을 거듭 위반했습니다(14-16절). 사람의 규정도 그 추종자들에 의해서 그처럼 존중되는데 야훼의 말씀은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에 의해 처음부터 무시됩니다. 야훼는 순종을 거절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재앙의 선포로 응답하십니다(17절).

선지자를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신 하나님의 명령을 줄기차게 거부한 이스라엘을 보면서,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이미 죽은지 오래된 인간보다 못한 대접을 하며 살아온 이스라엘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 묵상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말 믿고 듣고 응답하고 있는지요? 어쩌면 눈에 보이는 부모와 권력자와 국가의 법에 있어서는 나의 손해와 손실을 염려하여 잘 알지도 못하는 법을 지키며 사는 우리들의 얄팍한 순종이, 오늘 그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각성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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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 하나님은 순종의 모범인 레갑 자손들에게 구원을 약속해 주십니다. 

조상의 규정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그대로 실천한, 신앙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레갑 족속에게 야훼께서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다”(19b절).  

레갑 족속이 주전 587년의 파국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 3:14에 언급된 ‘레갑의 아들 말기야’는 벧학게림 지방의 통치자로 분문(Dung Gate) 개수의 책임을 맡습니다. 포로기 이후에도 레갑 족속이 조상들의 규정을 그대로 준수했는지를 의심스럽게 만듭니다. ‘내 앞에 서다’가 성전 종사를 말하기에 일부 유대 전승은 레갑 족속의 딸들이 제사장들과 결혼하여 성전 예배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아름답게 물려받아 지키고 있으며, 또 전수해 주어야 할 신앙의 유산들은 무엇인지 살펴 봅니다. 지금 우리의 언행심사를 비롯한 모든 삶의 내용들은 고스란히 우리의 자녀들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언행불일치한 모습들까지 마찬가지입니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주의 말씀을 주야로 즐거이 묵상하는 복있는 자로서의 삶의 모범이 우리 자녀들에게 잘 전수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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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 그 어떤 규범과 전통과 약속보다

우리 하나님이 명령하신 약속의 말씀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가는 믿음 갖기 원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복된 삶을

잘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전수해 줄 수 있기 원합니다. 

세상의 손해보다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여기며 순종하며 살기 원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주님과 동행하는

신실함을 닮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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