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목격한다는 건
회사 동료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동갑이어서 그랬을까, 괜시리 눈물이 났다.
나는 같은 나이대에 반응하는 감정의 폭이 더 큰 편인데,
동갑의 불행에는 어쩌면 나도 겪을 수 있다는 불안감과
동갑의 행복에는 나는 왜 하지 못했을까, 사이의 감정기복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동갑 동료의 아버님 부고 소식은 퍽 충격이었다.
가족의 죽음을 목격한다는 건,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경험할 수 있는 큰 사건이다.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든, 못 느끼고 있든 죽음이 앗아간 빈자리는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을 만큼 깊고 크다.
그 허무함, 허전함은 장례식이 끝나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밀려온다.
그걸 감당할 수 없어 울거나, 자거나, 울며 자거나 혹은 먹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죽음엔 애도가 필요하다. 그 사람의 빈자리를 곱씹고, 그 사람이 나에게 주었던 사랑을 그리워하고,
그 사람의 손길과 말투를 그리워해야 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괜찮은 척, 씩씩한 척도 충분한 애도의 기간이 흐른 후 가능하다.
애도의 기간만큼은 그의 죽음을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왜 그 혹은 그녀 같이 착한 사람을 먼저 데려 갔냐고 신에게 충분히 따져봐야 하고,
그 혹은 그녀가 없는 내 삶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충분히 두려워해야 한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음에 좌절해야 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지 못함에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해야 한다.
가끔 그 사람이 생각나서 눈물이 났어, 가 아니라
매일 그 사람이 그리워서 눈물을 흘리고 있어, 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그 사람은 내 가슴 속에 기억 속에
상처가 아닌 흔적으로 남는다.
나는 아직도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 나를 가장 사랑해줬던 사람, 나의 멘토, 나의 러닝메이터 였던
그녀의 죽음을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