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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May 28. 2024

위자료 청구 전부 기각, 재산분할 청구 95% 기각

주요 대도시에 분사무소를 두고 있는 중형 로펌인데, 이혼, 가사 전문이라고 합니다. 우선 제목부터 굉장히 자극적이었습니다.


신청인의 위자료 청구 전부 기각, 재산분할 청구 95% 기각


어라? 신청인이라고요? 원고가 아니라 신청인이라고 한다면 소송이 아니라 조정인 것 같은데, 광고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니 정말 조정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이상합니다.


조정이 무엇인지를 쉽게 설명하자면, 딱 맞는 표현은 아닙니다만 그냥 법원에서 합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셔도 틀리지 않습니다.


합의가 되면 판사는 조정조서를 작성해 주는데, 이 조정조서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정조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강제집행도 할 수 있죠. 조정은 당사자가 스스로의 의사로 사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이혼이나 가사 사건에서 많이 장려되는 제도인데, 판결로는 나올 수 없는 내용의 합의도 가능합니다. 가령 아파트를 언제까지 팔아서 그중 2억 원을 준다는 식으로도 합의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은 판결로는 불가능하죠.


조정 기일에 당사자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져서 조정조서가 작성되면 조정이 성립하였다고 하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조정이 불성립되었다고 합니다. 조정이 불성립되면 그냥 포기할 수도 있으나 소송절차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쯤에서 광고를 다시 보죠.


조정인데 기각이라고요?


기각은 소송에서 (1심 기준으로) 원고의 청구가 이유 없다고 판단하여 배척하는 판결을 말합니다. 그러니 기각이나 각하니, 인용이니 하는 말은 소송에서 나오는 말이지 조정에서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더 심화과정으로 가 볼까요?


광고에서는 위자료 청구가 기각되었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이런 표현은 1년 차 변호사가 실수로라도 쓰지 않는 표현입니다. 광고주는 왜 조정사건에서 ’ 신청인‘이라는 표현을 쓰는지조차 이해를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신청인은 신청을 하는 것이지 청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보통의 언어생활에서는 신청과 청구를 구별해서 쓰지 않지만 변호사가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런저런 사소한 오류들은 그냥 변호사가 경험이 부족했다고 칩시다. 비록 이혼 전문이라고 광고는 하지만 뭐, 이혼 사건을 몇 번 안 해 봤을 수도 있죠. 요즘 광고 규정을 하도 느슨하게 해 놔서 이제는 변호사라면 누구나 이혼전문이라고 광고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아무튼, 애초에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고 재산분할도 신청 금액의 5%만 지급받는 것으로 조정이 성립하였다면, 신청인도 그게 합당하다고 생각하여 합의하였기 때문이지, 신청인이 반발하는데도 법원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했던 민사 손해배상 사건이 생각나는데요,  원고가 무려 8억 원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한 적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누가 보아도 객관적으로 손해액이 그렇게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청구했다면 글쎄요, 몇 백만 원이라도 인정되면 다행이다 싶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 사건은 결국 전부 기각 판결이 나왔습니다만, 만약 400만 원 정도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면 95%가 기각되었다고 광고를 하는 게 합당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고가 잘했다기보다 원고가 터무니없이 잘못 청구한 것이라고 하는 게 맞겠죠. 사실 실제의 그 사건의 원고 변호사도 꽤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저 광고를 실제에 맞게 고치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신청인이 감정적으로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을 너무 많이 신청했는데 조정 과정에서 변호사가 도움을 주어 적절한 금액으로 원만히 합의하였습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조정 과정에서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당사자 간의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변호사의 적절한 증거제출 등을 통해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절한 증거제출을 통해 사실관계나 재산 내역 등이 명확해지면, 소송절차로 이행할 경우의 결과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어 합의 과정이 좀 더 원활해집니다. 조정이 성립하지 않아 소송절차로 가더라도 시간도 단축되고 더 수월해지죠.


하지만 그런 변호사의 역할이라는 것을 광고에서 왜곡하여 '기각'이라는 소송 개념을 사용한 것은 결코 좋지 않습니다. 변호사의 직업윤리를 생각하면 이런 광고는 결코 하지 않아야 할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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