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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소송포털,
누구나 똑같이 불편하게

기존 전자소송이 '차세대 전자소송'으로 개편되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사이트들이 전자소송포털이라는 단일한 사이트로 통합되었습니다. 덕분에 일부 사용자에게 불편하였던 점들이 모두가 공평하게 불편하도록 변경되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에는 무려 2,00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설마 2,000억 원이 누구 집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https://m.thel.mt.co.kr/view.html?no=2024082811213493021


1. 누구나 열람이 잘 안 되도록


전자소송이 개편된다고 해서 별 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접속만 잘 되고 열람이나 잘 됐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바람만 있었습니다. 기존 전자소송은 잦은 오류에다가 이용하려면 수많은 프로그램을 잔뜩 깔아놓아 이용하지 않을 때에도 당당히 PC의 리소스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바뀐 전자소송포털은 기존의 불편했던 점들은 그대로 계승하면서 새롭게 불편한 요소를 추가하였습니다.


전자소송은 기본적으로 윈도 PC에서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저 같은 맥 유저도 열람과 서류 제출은 가능합니다만 증명서를 발급받는다던가 하는 중요한 기능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차세대 전자소송은 작년 12월 말쯤부터 베타테스트를 시작하였고 이번 설 연휴 기간 중에는 기존 전자소송 사이트도 멈춘 후, 2025. 1. 31. 에 정식으로 서비스를 개시하였습니다.


베타테스트 기간 중에는 사건 기록을 열람하면 PDF 파일이 전혀 열리지 않는 오류가 있었는데, 정식 서비스 기간에는 어쩌다 운 좋으면 한 번쯤은 열람이 가능한 수준으로 개선되었습니다. 전혀 안 되다가 가끔은 되니까 개선이 된 것이겠지요.


2. 간편한 파일 첨부 방식에서 불편한 이폼 방식으로 확대


기존 전자소송에서는 이폼, 즉 이미 정해진 양식에 내용만 채워 넣으면 문서가 작성되는 방식으로 제출할 수 있는 문서의 종류가 아주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폼이 매우 불편하여 전자소송이 막 도입되었던 10년 전에는 잘 모르는 판사가 "서류 형식이 왜 이러냐"라고 물으면 "이폼 방식이라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해명해야 하는 일이 꽤 많았습니다. 이제는 잘못된 이폼에 판사들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런 해프닝은 없어졌습니다.


차세대 전자소송에서는 문제가 많았던 이폼을 더욱 확대하여 더더욱 문제를 더 만들어 놓았습니다. 심지어 준비서면조차 그 내용을 웹 상 에디터에서 입력할 수 있게 변경되었습니다.


사건마다 다르겠지만, 아주 간단한 서면이 아니라면 준비서면 하나를 작성하려면 하루 종일 걸립니다. 며칠에 걸쳐 작성하는 때도 많죠. 요즘에는 글자만 넣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넣기도 하고 표도 많이 넣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충 작성할 게 아니라면 별도의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하는 게 기본입니다. 그러니 준비서면은 파일첨부 방식을 기본으로 해야 편합니다.


변호사가 아닌 일반 사용자들은 이폼이 편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폼 방식이 그다지 친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을 공부한 적이 없다면 '청구취지'가 무엇인지, 또 '첨부서류'와 '서증'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소송은 기본적으로 어렵습니다. 법의 문턱을 낮추는 방법은 법 규정 자체를 바꿔야 하는 것이지 전자소송 사이트 내에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3. 합쳐서는 안 되는 사이트의 통합


차세대 전자소송에서는 기존에 따로 운영하던 전자소송, 나홀로소송, 전자민원센터 사이트가 하나로 통합되어 전자소송포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화학적 결합이 아니라 물리적 결합으로 보입니다.


기존의 나홀로소송 등의 사이트의 문제점은 이것이 전자소송과 굉장히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나홀로소송 사이트는 취지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문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양식에 맞게 법률문서를 생성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 그 정도의 기능을 할 뿐이어서 해당 사이트에서 문서를 제출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상에서는 나홀로소송 사이트와 전자소송 사이트를 혼동하여 문의를 하는 일이 빈번하였습니다.


이번에 위 세 개의 사이트를 하나로 합쳐서 더 헷갈려졌습니다. 가령 '소장 작성' 메뉴가 두 개가 되었습니다. 나홀로소송 메뉴 밑의 '소장 작성'과 서류 제출 메뉴 밑의 소장 작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위와 같은 히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이 알 수 있을까요?


일반인의 사법시스템의 접근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절차법을 개정해야 하는 것이지 열심히 설명을 달아 놓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청구취지 작성법을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 놓아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내 사건이 대여금 사건인지, 약정금 사건인지, 투자금 사건인지를 구분 못 하는데 대여금, 약정금, 투자금에 따라 청구취지와 원인을 어떻게 작성하는 지를 설명해 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애초에 소장의 형식 자체를 좀 더 간단하고 쉽게 바꾸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제도의 개선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사이트를 합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4. 나아진 점


법원 외부 사용자의 입장에서 나아진 점을 꼽자면, 일단 제출할 수 있는 파일 형식이 늘어났습니다. 기존에는 HWPX는 안 되었는데 이제는 HWPX 파일도 지원을 하게 변경되었습니다.


전자로 신청할 수 있는 증명서의 종류도 많아졌습니다. 집행문 제도부여를 받으려면 꼭 법원에 방문해야 했었는데 전자로도 신청할 수 있게 변경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존에 송달확정증명서 역시 전자로도 신청할 수 있고 방문으로도 신청할 수 있었는데, 수동발급의 경우 방문신청을 하면 대부분 그 자리에서 발급받을 수 있지만 전자로 신청하면 며칠 씩 기약도 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실제 어떻게 운영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송달료 납부가 자동납부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도 기대가 큽니다. 예전에는 법원에 예납한 송달료가 부족하면 실무관이 전화를 주거나 회신의 열람이 제한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대강의 송달료를 납부하고 또 보정서를 제출하면 실무관이 열람 제한을 풀어주는 방식이어서 매우 번잡스러웠는데, 자동납부가 도입되면 이 부분이 아주 많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면의 폰트 제한도 없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기존 전자소송에서는 PDF 변환 과정에서 특정폰트 외에는 폰트 정보가 모두 사라지는 오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사용가능한 폰트가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저 이런저런 실험을 해 보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수정합니다 : 사용가능한 폰트에는 여전히 제한이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 좋아진 점이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가령 등기 서류 같은 것을 따로 발급받지 않고 전자적인 방법을 첨부할 수 있도록 바뀌었는데, 아마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서류를 작성할 때 미리 등기를 떼어 보는데, 굳이 전자제출을 하겠다고 등기 발급 수수료를 이중으로 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접속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이용자 입장에서 더 뭐가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166612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전자소송포털은 접속이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수년에 걸쳐 개발하고 2,000억 원이라는 예산을 썼음에도 몇 시간도 아니라 며칠 째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제 개인적으로는 그 돈이면 차라리 판사 수나 늘리지...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https://mylaw.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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