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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Oct 03. 2018

세대간 음악으로 대화하는 그날까지

옛날 음악은 왜 소모품이어야 하는가

나는 어릴 적부터 옛날 음악을 끝내주게 좋아했다. 내가 존재를 알 정도면, 이미 수십 년의 세월을 걸쳐 검증된 명곡일 텐데 굳이 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핫 100보다 역대 베스트 100을 더 좋아했다. 역시 수십 년을 살아남은 명곡들은 멜로디도 좋았고 구성도 좋았다. 믿고 듣는 작품들이었다.


한국에선 이런 내 자신이 몹시도 특이하다고 여겼다. 이런 특이취향을 긍정적으로 기능시킨 게 손에 꼽았으니까. 그마저도 매사에 깐죽거리던 초등학생 나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고모부가, 친척간 단체 야유회에서 김트리오의 '연안부두'를 열창하는 나를 보고 등을 두들기며 극찬을 하셨다던가 하는 것들이다. 또 다른 예로는, 내가 '비련'으로 조용필 성대모사 하니까 노래방 사장님이 기겁을 하고 서비스를 넣어주신 것 정도.


리마스터가 있어, 조용필은 영원한 젊음을 안을 수 있었다

옛날 음악은 어디까지나 옛날에 불과했다. 나는 언제나 웃어른에게만 예쁨 받았고, 동나이대나 그 또래 아이들에게는 주민등록증 까보라는 말만 수없이 들었다. 한창 옛날 음악만 들을 땐 '인싸 음악' 몇 개를 저장해 놓고 외우고 다녔다. 노래방에서 써먹으려고 말이다.


수년 간 호주 살면서 느낀 건 세대간 음악의 격차가 훨씬 좁다는 사실이었다. 한국과 호주에서 본 뮤지션을 모두 합하면 족히 50팀은 되는데, 호주에서 본 콘서트는 뮤지션의 활동시기에 상관없이 연령대가 훨씬 고루 분포되었다. 비단 나이든 가수와 젊은 관객의 얘기만이 아니다. 젊은 가수와 나이든 관객의 화합도 수도 없이 목격했다.


호주에서 내 취향을 말하는 건 전혀 흠이 아니었다. AC/DC 같은 밴드야 워낙 시대를 관통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크라우디드 하우스(Crowded House), 미드나잇 오일(Midnight Oil) 등 수십 년 전 해체한 호주 밴드를 주제로도 무난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작년에 미드나잇 오일의 재결합 콘서트를 갔었는데, 내 호주친구가 다음날 페이스북 메세지로 "헐 나도 엄마랑 이거 갔어!"라고 말하길래 새삼 놀란 기억이 난다. 하루는 시아(Sia) 콘서트를 보고 나오는데, 바로 옆자리 컬쳐 클럽(Culture Club) 콘서트에서 수십 명의 젊은이가 나오는 걸 보고 신기해 하기도 했다. 컬쳐 클럽은 1981년 결성된 밴드 아닌가. 그 젊은이들은 같은 날 열린 시아와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콘서트를 모두 제치고 컬쳐 클럽을 보러 간 것이었다.


친구는 '미드나잇 오일' 공연을 자기 어머니랑 같이 갔다고 했다. 솔직히 좀 부러웠다

나야 뭐 음악의 국적을 가리지 않는 케이스지만, 호주 사람들을 통해 '세대간 격차를 음악으로 좁힌다는 게 뭔지' 실감한 기분이었다. 콘서트장에서 20대와 70대가 함께 있는 건 한국에선 흔한 풍경이 아니었다. 옛날 음악으로 나누는 세대간 대화는 더욱 드물었고, 그렇다고 중장년층이 최근의 케이팝을 듣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한국의 음악은 거진 그 시절의 대변으로 끝났고, 훗날까지 살아남아 시대의 연결고리가 되지는 않았다. 공공장소의 배경음악으로 전영록이나 정수라가 나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반면 호주는 여전히 공공장소에서 옛날 음악이 수시로 들려온다. 당장 우리 학교 피자집이 맨날 80년대 음악만 틀고 있다. 이유를 몇 번이나 곰곰이 생각했고 진입장벽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한국의 옛날이 격동 그 자체라서 그런 걸까, 솔직히 말하면 그간의 한국음악은 자료를 찾기 힘들었다. 찾아보려고 해도 유실되거나 그나마도 조잡한 음질로 나를 실망 시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아직도 음악이 사람 사이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당장 내가 음악으로 국적과 세대간 차이를 허물었다. 최근 들어서 극히 일부 음반에 한해 리마스터가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아직은 음악팬 입장에서 영 만족스럽지가 않다. 故 신해철은 생전 인터뷰에서, "아직 한국에선 제대로 된 리마스터 앨범이 나온 게 없다"며, "훗날 선배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리마스터 작업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출처 텐아시아). 내 친구들이 한국의 고전명곡을 모르는 게 너무 아깝다. 어머니 아버지가, 나아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신의 청춘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너무 아깝다. 지금 우리나라엔 고전이 없다. 90년대 밑으로는 음원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야 할 수준이다. 음반사가 없어지거나 관리 미흡 등의 이유로 허무하게 날아간 작품이 많다고 들었다. 우리는 역사를 잃은 셈이다. 나아가 지금의 케이팝을 만든 근간을 알 수 없는 셈이 되었다.


음악이 더 이상 소모품이 아니길 바란다. 평생의 기록으로 세대간의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와 과거가 한 씬에서 어우러지면, 최신을 향한 중장년층의 진입장벽 또한 낮아지지 않을까. 나는 호주 중장년층에게 젊은 음악이 어필한 이유를 거기서 찾았다. 옛날 뮤지션들이 꾸준히 리마스터 혹은 확장판을 내며, 그들의 음악적 열정을 유지시킨 게 아닐까 하고.


먼 미래에는 내가 자식과 방탄소년단 이야기를 하면서, 미래의 어떤 뮤지션을 동시에 논할 날이 왔으면 한다. 옛날 음악도 그렇고, 옛날 대중문화 전반이 모두 적극적으로 소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가 살아있어야 현재도 탄력을 얻는다. 추억팔이가 아니라, 좋은 건 같이 보고 나누자는 지극히 평범한 바람이다. 여기 호주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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