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뒷담화 없이 살 수 있을까
호주에서는 모든 한국인들이 한 가지 고리로 얽힌 기분이다. 한 번의 실수는 수십 명의 술안주가 되어 조리돌림 당하고, 퍼지는 소문은 은연 중에 사람의 모든 것을 손쉽게 결정 짓는다.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했다. 사려 깊지 못한 사람은 훗날 사려 깊지 못한 뒷담을 감내해야 했다.
뒷담은 일종의 편가르기다. 서로의 적을 알고 연대하는 과정이랄까. 뒷담화를 통해 어색함을 푼 게 하루이틀이 아니다. 뒷담화가 거칠 수록 연대는 견고해졌다.
나는 이 과정을 사회생활의 일부로만 알았다. 사실 이걸 나쁘게 생각하지만은 않았다. 내 스트레스를 푸는 해우소 역할도 하고, 서로의 맘을 확인할 수도 있으니 오히려 좋을 수도 있었다. 남의 잘못 얘기하는 건 남이 잘못해서 그런 거니까. 비겁한 변명이었다.
뒷담화는, 훗날의 행동을 결정짓는데 있어 언제나 필요한 사회생활의 한 요소였다. 뒷담화를 통해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했고, 만나지도 못한 사람의 성격을 확정지은 적도 있었다. 내 행동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바꾸는 계기가 된 것이다. 가장 곤란한 경우는 '만나지도 못한 사람'을 훗날 만나게 될 경우였다. 모르는척 가장했지만 사실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경계태세를 했고, 내가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했다.
물론 내가 사람의 흠만 캐고 다닌 건 아니다. 배울 점이 있는 친구 얘기는 언제나 "이 친구 참 좋다"였고, 설령 뒷얘기를 한다 해도 미안한 마음에 "그래도 좋은 친구"라고 결론을 짓곤 했다.
내가 그 친구를 싫어한다면 계속 연락을 할 이유가 없다. 다른 친구의 마음도 그럴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없는 사람의 얘기를 입에 올리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여러가지 핑계가 있었다. 갈등을 유발하는 앞담화를 피하기 위해서, '혹시 내가 틀렸나' 싶어 제 3자의 의중을 확인하기 위해서 등등. 아무리 선한 목적을 갖다대도 뒷담화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애꿎은 인물까지 이어졌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선의를 가장한 심심풀이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필요악. 한국사회에서의 뒷담화를 정의하면 이랬다. 그런데 호주에서 살아보니 이게 굳이 '필요'한 것이었는지 조차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은 뒷담화 없이도 살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선 더욱 건강한 관계를 다질 수도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친구와 외국 친구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뒷담화에 있었다. 대체로 내가 사귄 외국 친구들은 자리에 없는 사람보다도 스스로의 얘기를 더욱 즐겨했다. 남이사 누구랑 사귀든 말든, 사고를 치든 말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했으며 타인으로 인해 생기는 변수를 배제했다.
뒷담을 배제해서 얻은 성과를 여기 알려보고자 한다. 과연 나는 뒷담 없인 스트레스를 풀 수 없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뒷담 없인 연대할 수 없었을까.
뒷담화는 구성원의 모든 행동을 사회성과 연관시키는 주범이었다. 무엇이 '좋고' '나쁜' 지를 확실하게 교환한 우리는, 자리에 없었던 구성원 A에게 우리만의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파벌의 시발점인 셈이다. 우리만 아는 기준을 A는 모르게 됐고, 이런 차이가 결국 쌓이고 쌓여 A를 '우리랑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말끝에 "그래도 좋은 애"라고 합리화를 해봤자 기억에 남는 건 본문이었다. 설령 열 마디 좋은 말을 해도, 한 마디 나쁜 말이 더 머리에 박히는 게 사람이었다. 우리가 뒷담으로 구축한 건 불필요한 연대와 쓸데없는 기준 뿐이었다. 굳이 없어도 될 기준을 만들어 남을 제멋대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참느니 참지 말자느니 갑론을박을 벌이며 괜히 서로를 피곤하게 했다.
뒷담 없는 세상에선, '정상'과 '비정상'을 가로지르는 특별한 기준이 없었다. 기준이 없었다기 보단 기준을 알 길이 없었다. 나는 나의 기준에 맞춰 A를 판단했지만, 내 친구들은 따로 만날 때도 일체 A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자리에 없는 사람은 항상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존재였다. 나는 나만의 생각을 묻어뒀다. 아마도 이 친구가 거슬리는 건 나만의 생각일 지도 몰랐다.
공동체적 관점에서 봤을 때, 섣불리 A를 비판했다가 위험해지는 건 나였다. 다른 사람이 받아주는 A를 나 혼자 배척할 순 없었고, 나는 A에게 건강한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신기한 건 그런 노력이 결국 나만의 A를 정상범주로 되돌려 놨다는 사실이다. A를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을 탓하기 시작했다.
내 기준이 잘못된 건 아닐까, A의 이런 행동 이전에 나의 잘못이 있진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다. 외국 친구라서 더 그랬다. 문화의 차이가 오해를 부를 수도 있었으니까. 이후에는 A의 좋은 점을 보기 시작했다. 어떤 행동이든 "그래도 이런 면에선 좋은 친구"라며 초연해졌다.
뒷담화가 불필요한 증오를 키운 건 아니었을까.
상술했듯 뒷담화는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문다. 세상에 남 얘기만큼 재밌는 게 없다는 듯, 신상부터 최근의 스캔들까지 빠지는 게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정서적 교감을 낳을지언정, 서로를 알아가는 덴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종국엔 만날 때마다 남 얘기만 하는 현상을 초래하기도 했다. 우리가 공동체에서 벗어나도, 이전에 머물던 공동체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관계의 제자리걸음이었다.
뒷담화로 점철된 관계에서는 깊은 얘기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남 얘기를 하는 만큼 내 얘기 또한 지켜진다는 확신이 없으니까. "이건 비밀인데"는, 나를 향한 신뢰를 확인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상대방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말이기도 했다.
뒷담화 없는 사이엔 그런 신뢰감이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해도 퍼져 나가지 않을 거란 막연한 믿음. 실제로 퍼져 나간 적이 (내가 알기론) 없었고, 서로의 이야기는 서로를 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처음에 어색할 지언정, 쓸데없는 가십거리를 만들어 내며 불건전한 교감을 쌓지는 않았다.
친하지 않을 수는 있었지만, 한 번 친해지면 그 다음 단계는 무척 쉬웠다. 한 번 친해진 관계는 이후로도 건전함을 유지했으며, 서로의 얘기로만 꽃을 피웠다. 진지하게 고찰해 보는 순간이었다. 뒷담화로 일군 우정이, 과연 한 사람을 희생할 정도의 가치가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내 친구들은 '공동체'라는 개념을 딱히 머릿속에 두지 않았다. 개인과 개인이었고 자리에 없는 사람은 대화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배워야겠다고 여러 번 생각한다.
오늘도 뒷담화를 하는 내가 별로지만 브런치로나마 다짐해 보는 것이다. 남 얘기는 좋은 얘기만 하자.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얘기는 하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