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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Nov 27. 2018

조기유학 스토리 - 한국은 정말 정이 넘치는 곳이었나

난 왜 호주 사람들이 한국보다 따뜻하다 생각했을까

흔히들 우리나라의 미덕으로 '정'을 꼽는다. 사전적 의미로는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 교육의 탓일까, 난 한국이 정 넘치는 곳이라 생각했고 외국 사람들은 개인주의에 물들어 매정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다.


유학 온지 9년이 지났다. 호주 사람들은 생각처럼 매정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코웃음을 칠 것이다.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그런 마음은 삶에 여유가 넘치는 호주에서 훨씬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존중했고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기사님이 인사를 건넬 때마다 내 기분이 다 좋아진다

집이 외곽이라서 학교까진 40분 정도 걸렸다. 일곱시 사십분 쯤 나와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보면, 간혹 조깅 나오는 형 누나들을 보곤 했다. 한국에선 다소 치명적으로 보일 화끈한 옷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정류장 앞을 쏜살같이 지나치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외계인 보는 것마냥 바라보고 있으면, 형 누나들이 밝은 얼굴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서 이렇게 쳐다봤으면 그냥 무시 받거나 시비 붙었겠지. 그러고 보니 모르는 사람과의 인사는 등산길에서 썬캡 쓴 아줌마와 나눈 게 마지막이었다. 운동맨을 떠나 보낸 뒤, 털털거리며 다가오는 버스를 잡고 교통카드를 찍었다. 기사님이 "굿모닝" 인사를 건넸다. 나 또한 원어민인 척 하려고 혓바닥을 남사스레 굴리며 "굿뭘닝" 인사를 건넸다.


호주는 인사가 생활화 된 곳이었다. 뒷문으로 하차하면서도 기사님 들으라고 큰 소리로 "땡큐!"를 외쳐주는 곳.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무리 우울할 때도 인사하는 순간엔 환기가 됐다. 잠깐의 여유, 잠깐의 정. 나는 그런 잠깐에서 더욱 따뜻함을 느꼈다. 모르는 사람끼리도 최소한의 존중을 갖춘 것이다.


한국에서의 나는, 수많은 쿼터백과 몸싸움을 벌이며 흔한 사과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 또한 흘긋 쳐다보기만 할 뿐 사과하지 않았다. 얼마나 정 없이 살아왔던가. 그래서 한국 돌아갔을 때 기사님한테 인사 해봤는데 너무 민망해서 관뒀다.



초면에도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마법. 웃음은 사람을 정들게 한다.


인종차별로 대표되는 소수의 미친놈을 제외하면, 난 호주가 항상 따뜻하다고 느꼈다. 삶에 여유가 묻어나 덕분이라고 믿는다. 이 곳에선 직업을 막론하고 내 집 마련이 가능했다. 배달원도, 자영업자도 밤 늦게까지 치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공과 사는 정확히 구분 되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에 최선을 다 했다. 그런 여유와 직업정신이 결국엔 호의를 낳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람들이 행복해 보일 때 기분이 좋다. 한국에서 식당을 고를 때도, 무뚝뚝한 식당보다는 언제나 "맛있었냐"고 해맑게 물어보는 식당을 택하곤 했다. 일을 즐기는 사람은 얼굴에서 행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호주에선 그렇게 물어보는 식당이 많아서 좋았다. 주로 백인들이 일하는 로컬 식당이 더 그런 경향이 컸다. 웃는 얼굴에는 당연히 웃으며 응대해야 하는 법이다. 나는 웃으며 음식 잘 먹었다고 대답했고, 그렇게 되면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졌다. 자신의 여유를 손님에게까지 전달하는 마법. 그게 그들의 세상 사는 방식이었다.


호주에서 지내다 보니, 느려터진 일처리 때문에 머리에 쿨러 장착할 일이 참 많았다. 인터넷 배송은 기본이 일주일이었다. 와이파이 설치에도 며칠이 걸렸고, 뭐라도 고장나면 일단 하루 버릴 각오를 해야했다. 노트북 충전기가 고장났는데 충전기가 안 온 적도 있었고, 와이파이가 작동을 안 해서 3주를 휴대폰 데이터로 살아간 적도 있었다.


물론 답답했다. 그런데 한국이 마냥 호주보다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선 20분 만에 수리기사가 왔고, 오후 두 시 전까지만 주문하면 당일배송이 가능했다. 배달은 기본 서비스고 수수료 따윈 없었다. 그런데, 이런 속도가 결국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왔을까.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 스스로를 갉아먹는 셈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한국은 눈앞의 시간 단축에만 집착했다.


하루 배송 할당량을 채우지 못 하면 불이익을 받는단다. 고객 만족도 만점이 나오지 않으면 실적이 깎인단다. 한국에서는 웃음도 자의가 아닌 강제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얻는 웃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서비스엔 누군가의 희생이 수반되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할 수 없는 환경. 안정감이 없는 곳엔 웃음도 없었다.


나는 요즘도 호주살이가 좀 답답하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내가 받는 서비스가 당연한 게 아니라며 맘을 고쳐 먹는다. 우버 이츠로 음식을 주문할 때도 그렇다. 수수료 5불, 한국 돈으로 4천원이라는 거금을 내지만, 적어도 여기 배달원들은 동기가 충만하겠다며 위로한다. 한국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정당한 일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처음엔 의욕에 넘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세상에 찌든다는 글을 얼핏 보았다. 여기서의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웃음을 강제하는 회사일까, 아니면 호의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우리일까. 우리는 왜 초면인 사람에게 웃음을 지어줄 수 없을까.


비단 서비스업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한국에선 모두가 일상에 찌들어 있었다. 한국에 오니, "나 먹고 살기도 바쁘다"는 말만큼 슬픈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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