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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 That Nov 26. 2018

조기유학 스토리 - 랭귀지 스쿨, 그리고 사람 사귀기

호주에서 문화의 힘을 체감하다

서양문물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데엔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언어도 다른 고등학교에, 준비 없이 들어갈 순 없는 법이다. 레벨 테스트에서 '상' 등급을 받은 덕에, 총 4학기로 이루어진 호주 고등학교에서 한 학기 안에 랭귀지 스쿨을 졸업하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상반에는 총 세 명의 한국 학생이 있었다. 같은 유학원에서 나보다 하루 늦게 건너온 누나,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며 하렘왕국을 꿈꾸던 오덕 친구. 이외에는 중국, 일본, 헝가리와 이란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로 채워졌다.


남자와 여자의 극명한 차이를 처음 느낀 곳이 바로 여기였다. 수업 첫날 점심시간, 남자들은 쭈뼛거리며 혼밥할 곳을 찾았지만 여자들은 어느새 무리를 만들어 주인 없는 벤치를 점거했다. 같이 온 누나가 이미 서투른 영어로 하하호호하는 걸 보니 왠지 모를 자괴감이 들었다. 공터 한구석에 찌그러져 도시락 뚜껑을 열 때, 푸짐한 몸매의 말레이시아 친구가 내게 손을 뻗더니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전학 첫날,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전학생에게 따뜻하게 다가가 처음 친구가 되어준 사람. 문제는 얘가 남자라는 것뿐이었다.


체중은 강동원 1.5배 정도였지만 어쨌든 그 때 그 친구 임팩트는 이 정도였다

공감대가 가져다 주던 반가움


그 친구는 자신을 저스틴이라고 했다. 다른 친구가 이미 있었지만, 내가 혼자 먹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손을 뻗었다고. 거대한 몸만큼 마음씨도 컸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열심히 대화를 나누며 연을 잇기 위해 애썼다. 네 영어실력이 참 좋구나, 덕담을 건네자 말레이시아는 원래 영어 쓴다며 껄껄 웃는 저스틴이었다.


애석하게도 저스틴과의 인연이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며칠 밥을 같이 먹어도 왠지 모를 어색함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곧장 남자들끼리도 말이 트이며 무리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두 번째로 내게 손을 건넨 친구가 바로 상술한 오덕 친구다.


혹시 한국 분이시냐, 내가 한국어에 경기를 일으키자 그 친구 또한 동시에 경기를 일으켰다. 오오, 몇 살이야? 동갑이네. 친하게 지내자. 이 친구와는 어림잡아 1년간 서로의 껌딱지가 됐다. 서로 다른 사람만 만나다가, 같은 공기 같은 환경에서 자라온 친구를 만나니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장 큰 공감대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다.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호주에서 사소함의 소중함을 참 많이 느꼈다. 외국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면, 일상이 실종된 느낌이었다. 자라온 환경부터 생활양식까지 다르니 동질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학교생활로 찌들어 숙제 같은 공통점이 생길 때까지, 서로는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겉도는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호주에서 체감한 문화의 힘


다른 나라의 남자들끼리 서로 말을 트는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단축한 게 바로 문화의 존재였다. 나는 이런 측면에서 많이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내 국적 덕에 내게 먼저 호기심을 가진 친구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었다. 유학생활 내내, 수많은 친구들이 초면에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을 줄줄이 읊곤 했다. 도서관에서 다짜고짜 김범 인터뷰 좀 번역해 달라는 중국 친구도 있었고, 자기 대장금 봤다고 이란에서의 대장금 인기를 설명한 이란 친구도 있었다.


대장금 인기를 뉴스로만 접했는데, 그게 진짜일 줄은 몰랐다

나는 그렇게 외국인들과 가까워졌다.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아시아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먼저 다가와 준 덕이 컸다. 그 시절 나는 한국 대중문화를 과소평가했다. 그저 한국 문물이 외국으로 퍼졌다니까 신기하고, 뭔가 더 얘기해 주고 싶고... 이 현상은 강남스타일 시절 정점을 찍었다. 그때는 호주 애들까지 말춤을 추고 다녀서 매일매일 어깨를 펴고 다녔다.


한국인은 그런 면에서 이점이 있었다. 자신이 딱히 상대방의 나라를 공부하지 않아도, 쉽게 말을 틀 수 있었다. 그 때는 반가운 감정으로 끝났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복 받은 일이었다. 국적 덕분에 친구 만들기에서 한 단계 앞서나간 것. 고등학생끼리는 역시 시시콜콜한 연예계 애기만큼 좋은 게 없었다. 황량해 보이기만 하던 나의 국적이, 호주에서는 숨겨오던 빛을 발했다. 야, 나는 원더걸스 좋아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친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 이후로 8년, 케이팝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거대해졌고 한국을 좋아하는 학생의 수도 늘었다. 지금 조기유학을 떠나는 친구라면, 아시안과의 친목에는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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