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jet, 닥치고 똑바로 운행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머리맡을 더듬어 전화기를 집어 든다.
“여보세요?”
“소피아님이시죠? 예약하신 비행 스케줄이 변경되어 전화 드렸어요.”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으로 다르에스살람행 항공권을 예매하기 위해 일치감치 인터넷을 찾아 헤매다 우리나라 대행사를 찾았다. 현지 대행사보다 가격이 쌀뿐더러 믿을 수 있을 듯해서 예매를 했었다. 출발 이
틀 전, ‘고객님의 항공편 세부 정보가 변경되었습니다.’ 라는 제목의 메일이 날아왔다. 최대한 빨리 직원과 통화를 해서 정확한 비행 스케줄을 안내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예약하면서 남긴 전화번호는 폼이었나? 직접 전화를 해야지. 씩씩대며 답장을 하려 했더니, 깨알만한 글씨로 ‘이 우편함은 모니터링 되지 않으므로 회신하지 말라.’고 적혀있다. 내 유심칩이 국제전화는 제한되어 통화가 되지 않는다. 불안했지만 링크된 페이지에 접속해 변경된 스케줄을 확인하고 잠이 들었던 터였다. 직원의 말에 의하면 그 이메일은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보내진 것이고, 새로 발급된 이티켓을 다시 보내겠다고 했다.
음베야에서 다르에스살람까지 가는 패스트젯은 하루에 두 번 운행한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오후 편을 이용한다. 이번에는 점심 약속이 있어 오전 편을 예매한 것인데, 그것이 취소가 되고 오후로 합쳐진 것이다. 다행히 중요한 미팅이 아니어서 양해를 구하고 약속 시간을 변경할 수 있었지만, 일과 관계되어 변경이 불가능한 미팅이었다면 낭패를 당할 뻔했다.
동료들과 이곳에서 생활하며 힘든 점들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멋대로 변경된 비행 스케줄 때문에 낭패를 당했던 경험이 거의 한 두 번은 있었던 듯하다. 주로 버스를 타거나 오후 편을 이용했던 내게는 이런 일이 처음이었지만, 만약 미리 연락을 받지 못했다면 나 역시 새벽부터 공항에 나가 하루 종일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한국 대행사를 이용해 미리 연락이라도 받아 오후 시간에 나갔기 망정이지. 경험담 중 압권은 국외 휴가를 위해 패스트젯 항공권을 일찌감치 예약해 두고도, 국제선 일정이 꼬일까봐 비행기를 포기하고 열서너 시간이 걸리는 버스를 탔다는 이야기였다. 배꼽을 잡고 웃긴 했지만 남의 일이라고 웃어넘기기엔 너무나 어이없는 씁쓸한 일이다.
비행 스케줄 변경이야 있을 수 있다고 십분 양보해도, 현지 대행사는 물론 항공사에서 운영하는 오피스조차 미리 연락도 해주지 않고 일정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것은 이해 못할 차원을 넘어 범죄라 할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영업방식이 먹히는 건 파격적인 가격. 주머니가 가벼운 고객은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구동성으로 ‘양아치 항공사’라는 것에 동의하며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곳에서 오래 살고 계신 선교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공항이 생기기 전에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자조차 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의 낙후된 도시였다고 한다. 겨우 구할 수 있는 것도 대부분 중고여서, 쓸 만한 물건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로 갔다고 한다. 지금은 돈이 없어서 못 사지 물건이 없어서 못 사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엄청난 삶의 변화란다.
신시가지 므완젤와에 가면 늘 사람들로 붐빈다. 가전제품 상점들이 대로변을 따라 늘어서 있고, 시장통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옷이며 잡화를 파는 행상들이 터를 잡고 호객행위를 한다. 시장 중심에는 럭셔리한 인테리어 숍이 문을 열었고, 중국 마켓도 있다. 아쉬운 것은 아직 원스톱 쇼핑이 가능한 대형마켓이 없다. 대형마켓이 입점할 만큼의 구매력에는 못 미치나 보다. 그나마 이 정도의 풍요가 ‘양아치 항공사’ 덕분이었다니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 원주민의 주머니가 두둑해 지고, 권리에 대한 인식이 콩나물 자라듯 무럭무럭 자라, 부당한 처사에 분연히 일어나 대대적인 불매운동을 벌일만한 저력이 생기는 그날, 저가에만 기대 고객을 개떡같이 여기는 안하무인(眼下無人) 영업 방식도 막을 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