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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Mar 27. 2021

탄자니아 통신

일체유심조

‘내 마음이 에덴인데 어딘들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이곳이 바로 에덴동산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내용의 메시지에 대한 지인의 답신이다. 지금 내 마음은 정녕 에덴인가?

말라위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냐사 호수를 끼고 있는 도시 키에라. 내가 살고 있는 주에 있지만 이곳과는 날씨가 확연히 다르다. 이곳이 초가을쯤의 날씨라면 그곳은 온도계의 눈금이 30을 웃돌고, 건기임에도 주위는 온통 초록빛이다. 호수를 끼고 있는 탓일 것이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 샛길로 빠지자 간간이 농가만 보일 뿐 주위는 온통 카카오나무다. 

‘가나와 함께라면 고독마저도 감미롭다.’ 

부드럽고 감미로운 목소리의 성우가 나레이터를 하고, 긴 생머리의 청순했던 채시라가 유난히 돋보였던 초콜릿 광고다. 고독마저도 감미롭게 만들어 버렸던 마법의 초콜릿 원료가 되는 나무. 좀 멋지게 묘사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참 볼품이 없다. 엉성한 나무줄기에 잎은 이상할 정도로 윤기가 없는 것이 푸석푸석해 보인다. 조화가 아닐까하고 손으로 만져보기까지 했다. 과일은 메인 가지 여기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잘못 돋아난 혹처럼 기괴하기까지 하다. 모습으로 치면 천생 럭비공이다.

샛노랗게 잘 익은 과일을 따서 돌에 내려치자 쩍하고 갈라지며 하얀 과육이 알알이 드러난다. 미끌미끌한 과육은 새콤하면서 달작지근하고 부드럽지만 먹을 건 없다. 씨앗이 카카오 원두가 되는 것인데, 마치 오랫동안 씻기고 씻겨 매끈해진 바닷가 조약돌 같다. 짙은 보랏빛을 띠고 있어 언뜻 보면 검정색으로 보인다. 겉껍질이 따로 없고, 씹어보니 의외로 부드럽게 씹히는 것이 풋콩처럼 비릿하면서 쓴맛이 난다. 입자는 어느새 고운 보랏빛으로 변해있다. 

과수원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던 어린 시절, 나는 과일을 보면 저게 어떻게 나무에 매달려 있을지가 참 궁금했었다.

처음 딸기밭을 보며 밭두렁을 타고 이리저리 뻗어 있는 가지에 달린 빨갛고 싱싱한 딸기는, 차마 저걸 어찌 따나 싶을 만큼 경이로웠다. 그 후 참외와 수박을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그러다 나무에 달린 사과를 보면서는 마치 신밧드의 모험에 동참한 기분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시시한 것이 다 궁금했구나 싶은데, 그런 사소한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이곳까지 이끈 힘이 아닐까도 싶다.

탄자니아는 내게 식물원이고 동물원이며 박물관이다. 여기는 자연이 만든 것은 무엇이든 풍부하다. 세네갈에 살면서 나는 ‘신이 버린 땅’이란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곳은 ‘신이 축복한 땅’이다. 

돌아 나오는 길이었다. 몇 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그 곁에 어른 머리통 두 세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크기에 삐죽삐죽 침이 돋은 과일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다. 두리안의 한 종류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젝플룻, 이곳에선 훼나스라고 불리는 과일이었다.

주인을 불러 살 수 있냐고 했더니 창고로 안내했다. 시장에 내달 팔 요량으로 보관한 과일 몇 개가 바닥에 뒹굴고 있다. 크고 잘생긴 놈을 하나 골라 내 온다. 저걸 집에 가져가는 것은 엄두조차도 못 내겠다 싶어 마당에 있던 사람들과 함께 할 요량이다.

잠시 후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바나나 잎을 따든 아저씨가 나타나는 가 싶더니 교복을 입은 학생을 비롯해 꼬마들이 몰려드는데 어림짐작으로 봐도 서른 명은 너끈하다. 마치 미리 대기하고 기다리던 엑스트라 배우들 같다. 커다란 바나나 잎을 척 까니 그대로 잔칫상이다.

박을 타듯 타니 노랗게 익은 과육 사이로 울콩 같은 씨앗이 듬성듬성 박혀있다. 잔치의 주빈이 되어버린 내게 제일 먼저 한쪽을 잘라 건네는데 먹는 게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씨앗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결이 나있는데 쭉쭉 찢어 먹으니 쫄깃하고 달다.

지금 생각해보니 몇 개 더 사서 푸짐하게 나누어 먹었어도 좋았을 걸 싶다. 그 당시에는 갑자기 모여들던 사람들, 식탁보 같던 바나나 잎, 과일에 대한 호기심 등에 신바람이 나서 생각할 여가가 없었다.

돌아와 현지인 친구에게 그 곳을 스케치해 보여주니, 이곳이 에덴이었던 걸 어찌 알았냐며 박장대소했다. 아담과 이브가 백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아담과 이브는 흑인이었단다.

과일 한 통이면 즉석에서 축제가 열릴 수 있는 이곳.

늘 축제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마음을 열면 어디서든 천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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