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엔가 서울인문포럼에 초대받아 간 적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진 포럼은 굉장했다. 세계적인 전문인들의 강의가 여러 강의실에서 이어졌고 주제들 또한 충분히 흥미로웠다. 당시 나는 공학과 심리학과 고전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마침 뉴욕대학교 교수들과 서울대학교 교수들의 "AI 시대에 심리학"이라는 주제 관련 토론이 열리는 방이 있었다. 1시간 정도 열린 토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미로웠다. 토론의 요지는 간단했다.
심리학 교수들은
"시대가 흘러 아무리 AI 가 사람 일을 대신하는 세상이 온다고 해도 사람의 경험치를 대신하지는 못 한다."였고
공학 교수들은
"사람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로봇이 나오는 세상이 반드시 온다."였다.
결론에는 공학과 심리학이 조화롭게 공조하여야 한다는 것으로 토론은 마무리가 되었다.
당시 나는 심리학 측 주장에 동요가 일었었다. 나 역시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의 근성에는 기계가 번접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사람만이 갖는 유일한 '혼'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앞으로 몇 년까지는 심리학 측 주장과 맞는 시대일 것이다.
얼마 전 티브이 예능프로에서 어느 한 연예인이 AI앱과 대화하는 것을 보고 9년 전 토론장이 다시 생각났다. 당시 주장했던 공학 박사들이 마치 미래를 예언하듯 공학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AI는 섣불리 감정을 건들며 대화하지 않았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도 재치 있게 넘겼고 상처 주지 않았다. 그렇게 적절하고 담백하게 대화를 이어갈 줄 아는 AI라면 나도 환영이다.
더욱 놀라웠던 건,
"2023년 연예대상을 누가 받겠냐?"는 질문에 AI는
"올핸 아무래도 '나 혼자 산다'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 활약을 보여준 '기안 84님'이 탈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MC들과 게스트들은 놀라워하면서도 박장대소를 했는데 연말 시상식에서 정말로 기안 84가 대상을 받았다.
AI의 놀라운 데이터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카페를 개업하고 싶은데 메뉴 선택을 도와달라는 질문에 이미지까지 보여주며 메뉴 추천을 해 줬다.
이쯤 되면 사람 마음까지 헤아리는 진정한 AI친구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 시대가 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 사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고등학교 때 교생선생님이 우리나라도 곧 물을 사 먹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해서 우린 콧방귀를 쳤더랬다. 개울물에는 1급수에서만 산다는 가제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가당치도 않는 말이었다. 그런데 우린 곧 물을 사 먹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
어쩌면 예언은 막연한 촉이 아니라 정확한 객관적 지식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I robot"이라는 영화가 있다. 무척 오래된 영화다.
감동적인 내용도 많았으나 그보다 잊히지 않는 영상은 로봇이 사람 마음과 생각을 읽어내는 장면이다. 로봇이 상대방 머리에 검지손가락을 대면 전파를 타고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전달되는 것이다. 당시는 영화라서 재밌게만 봤는데 충분히 현실적이겠다 싶은 것이다.
오늘 오랜만에 서점엘 들렀다. 마음훈련 관련 제목들이 대부분이다. 도서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그리고 "나" 관련 제목들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상처받고 있다는 것일 테고 위로받기를 바란다는 것일 테고 "나"를 찾겠다는 것일 테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사람에게 위로받고 싶지는 않다. 경험치로 봐서 온전한 위로를 기대하기 쉽지 않기에 상처가 덧대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이런 면에서 AI친구는 환대할만하다.
이런 생각을 해도 쓸쓸하거나 씁쓸하지 않은 이유는 나도 이미 그 AI친구가 궁금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